‘남달라’ 박성현(23·넵스)은 확실히 남달랐다. 박성현은 남들과 똑같아서는 세계적인 선수가 될 수 없다는 생각에 자신의 캐디백에다 ‘남달라’라고 새겨 넣고 다닌다. 그의 팬클럽 이름도 ‘남달라’다. 지난 1월 동계 훈련차 미국으로 갔다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3개 대회에 연속 출전하느라 국내 대회 출전이 늦어진 박성현의 샷을 보려고 갤러리들이 몰려들었다.
이는 전인지를 비롯한 많은 여자 골퍼들이 LPGA에 진출한 후 현재 박성현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의 최고의 흥행 카드임을 보여주는 단면이었다. KLPGA의 ‘장타여왕’ 박성현은 LPGA 무대에서 파운더스컵 공동 13위, 기아클래식 공동 4위, 메이저 대회인 ANA 인스피레이션 공동 6위에 오르는 등 성적도 좋았다. 특유의 장타력에다 전지훈련에서 약점이던 쇼트게임과 퍼팅을 집중적으로 연마했다. 그 바람에 몸무게는 2∼3kg 줄었다고 했다.
글 방제일 기자 사진 싱가포르 오픈 공식 홈페이지
지난해 한국여자오픈(6월) 이후 4승을 거둬 ‘신데렐라’로 떠오른 박성현은 지난 4월 15일 경기도 안산시 대부도 아일랜드 골프장(파72·6658야드)에서 열린 KLPGA투어 삼천리 투게더 오픈(총상금 8억원) 1라운드에서 버디 8개에 보기1개로 7언더파 65타를 쳐 리더보드 맨 윗자리를 꿰찼다. 파5홀 4곳에서 모두 버디를 낚는 장타력을 과시했다.
드라이버 티샷은 어김없이 265야드에서 270야드씩 날아 페어웨이에 꼬박꼬박 떨어졌다. 파3홀을 제외한 14개홀에서 티샷이 페어웨이를 벗어난 것은 두 번뿐이었고, 그것도 두 번째 샷을 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린 적중률이 무려 88.9%에 이른 박성현은 버디 찬스 16번 가운데 절반을 성공했다. 단점이라던 퍼팅은 지난해와 다르게 정교해졌다. 이날 퍼팅 수는 28개에 불과했다. 박성현은 “미국에서 훈련한 효과가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특히 퍼트 때 백스윙을 클럽헤드 하나 정도 더하니 볼터치감과 거리 감각이 좋아져 효과를 톡톡히 봤다”고 말했다. 10번 홀에서 출발한 박성현은 전반에 버디 3개를 낚아 기세를 올린 뒤 1번홀(파4) 4 버디와 2번홀(파5) 3버디를 연달아 성공시켰다. 박성현은 3번홀(파3)에서 3파 퍼트를 놓쳐 주춤했지만 이후 버디 3개를 보태 단숨에 단독 선두로 올라섰다. 지난해 이 대회 1라운드에서 80타, 2라운드 73타를 친 뒤 컷 탈락한 박성현은 1년 만에 괄목상대한 모습을 보였다.
박성현 우승 세리머니 두 번 한 사연
박성현과 김지영의 연장전에선 보기드문 일이 있었다. 박성현이 20㎝ 거리 파 퍼트를 남기고 볼 마크를 했고, 김지영은 파 퍼트를 놓친 상황이었다. 그런데 김지영이 박성현의 볼마커를 들어 컨시드(concede·다음 샷을 홀인으로 인정하는 것)를 줬다. 매치플레이가 아닌 스트로크 방식의 대회에선 낯선 모습이었다.
KLPGA 관계자는 “이런 전례가 없었다”고 했다. 박성현은 고개를 갸웃했고 갤러리들도 웅성였다. 결국 경기위원의 지시로 김지영은 박성현의 볼 마커를 원래 자리에 갖다 놨다. 그제야 박성현은 챔피언 퍼트를 성공시켰다.
하지만 이는 김지영의 잘못은 아니었다. 최희숙 KLPGA 경기팀장은 “규칙에 따르면 두 선수가 연장전에 간 경우 한 선수가 패배를 인정하면 승자가 굳이 홀 아웃을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우승자를 예우하는 차원에서 박성현이 챔피언 퍼트를 할 수 있도록 경기를 진행했다는 해명이었다. 졸지에 챔피언 퍼트를 할 기회를 놓친 박성현은 어리둥절한 표정이다가 금세 환한 얼굴로 김지영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린을 벗어났다. 우승 세리머니가 연장전 상대와 가벼운 어깨동무에 그친 격이었다.
최희숙 경기팀장이 황급하게 그린을 벗어나던 박성현에게 다가왔다. 최 팀장이 박성현에게 뭔가를 말하자 박성현은 다시 그린으로 돌아가 원래 볼이 있던 자리에 볼을 내려놨다.
퍼터로 툭 쳐서 홀에 공을 집어넣은 박성현은 그제야 두 팔을 들어 올리며 우승의 기쁨을 마음껏 표시했다. 동료 선수들이 그린으로 달려 들어와 박성현의 머리 위에 꽃잎을 뿌리며 축하했다.사실 박성현은 챔피언 퍼트를 굳이 할 필요는 없었다. 골프 규칙 33조6/3은 스트로크플레이 방식 대회라도 연장전에서 한 선수가 패배를 시인하면 우승 선수는 홀아웃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최 팀장은 “박성현의 홀아웃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챔피언 퍼트를 마치고 우승 세리머리를 하는 게 우승자에 대한 예우라고 여겨 홀아웃을 하도록 권했다”고 설명했다. 김지영은 “아마추어 때 연장전 나가서 이긴 적이 있는데 그때 상대 선수가 졌다고 볼마크를 집어준 적이 있다”면서 “그래서 그렇게 했다”고 말했다. 박성현은 “볼마크를 집어주길래 엄청 당황스러웠다”면서 “신인인 김지영 선수가 긴장한 탓에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연장 접전 끝에 시즌 2승째를 거머쥔 박성현
박성현은 우승 후 공식 인터뷰에서 “오랜만에 국내 대회에 나와서 팬들을 뵙게 됐는데 우승을 하게 돼서 너무 기쁘다. 목표에 한발 다가가는 것 같아 제일 기쁜 것 같다”고 밝혔다.
박성현은 올 시즌 목표에 대해 “5승을 하는 것이다. 이번 대회까지 2승을 했는데 앞으로 3승 더 하는 것이 목표”라고 덧붙였다. 박성현은 루키 김지영과 연장전까지 간 끝에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 2015시즌 ‘롯데 칸타타 여자 오픈’에선 마지막 18번 홀 1미터 퍼트를 놓쳐 연장전에 간 끝에 이정민(24 BC카드)에게 패배, 자신의 KLPGA 정규 투어 첫 우승을 놓친 바 있다.
그래서 이번 연장전 우승이 더욱 의미 있다. 박성현 역시 “일단 연장전갈 때 칸타타 대회가 생각이 났다.
그땐 져서 2위를 했는데 이번엔 연장 가서 이겨서 더 값진 것 같다. 정말 열심히 쳤다”고 밝혔다. 이날은 바람이 불어 박성현도 2타를 잃었고 선두권에서 언더파를 기록한 선수는 1타를 줄인 김민선(21 CJ오쇼핑)뿐이었다. 박성현은 “바람의 영향이 제일 컸던 것 같다. 바람이 세니 집중력이 흐트러진 것도 사실이긴 한 것 같다. 스리 퍼트도 많이 나왔다.
그래도 매 상황마다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 했다”며 “보시는 분들도 답답했을 것 같다. 캐디가 인내하자고 다독여 줬다. 그 덕분에 연장까지 갈 수 있었고 연장에서도 이길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캐디에게 공을 돌렸다. 또 박성현은 그린이 매끄럽지 않았던 부분도 있었다. “생각보다 라이를 덜 먹기도 하고 더 먹기도 해서 스리 퍼트도 많이 나왔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박성현은 “아무에게도 말 안 했는데 대회전부터 목감기로 고생을 많이 했다. 정상 컨디션에서 70퍼센트 정도였던 것 같다. 하지만 다른 선수들도 감기로 많이 고생을 하더라. 이 정도는 누구나 가지고 가는 부분이라고 생각하며 대회에 임했던 것 같다”고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음을 알리기도 했다. 박성현은 LPGA에서 보고 배운 것에 대해서도 소상히 털어놨다. 가장 먼저 스케줄 관리 방법에 대해선 “(LPGA는) 워낙 대회도 많고 이동 거리가 길기 때문에 많은 선수들이 체력적인 부분을 많이 고려해서 대회에 출전하더라. 중요하겠다고 생각했다. 작년에는 한 개 대회만 불참했는데 올해는 일본도 가고 미국도 갈 예정이라 일정에 대해서는 계속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작년보다 많은 경험을 했고 다양한 선수들과 함께 플레이를 한 경험들이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것 같다. 작년보다 더 나아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듯”이라는 박성현은 “코스 매니지먼트나 이런 부분은 크게 차이 안 나는 것 같지만 순간순간 상황에 대처하는 판단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캐디와 상의하면서 풀어나가면 해결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리디아 고(18 뉴질랜드) 선수와 함께 플레이하면서도 정말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또 수잔 페테르센(35 노르웨이)과 함께 동반 플레이했던 것이 많이 생각난다며 “장타 치는 선수라고만 생각했는데 쇼트게임도 너무 잘하더라. 많이 배웠다”고 설명했다.
한편 박성현은 오는 5월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 메이저 대회 ‘월드레이디스 챔피언십 살롱 파스 컵’에 출전한 뒤 7월까지 계속 국내 대회에 매진한다. 7월엔 LPGA 투어 메이저 대회 ‘US 여자 오픈”, ‘리코 위민스 브리티시 오픈’에 출전할 계획이다.
<월간 골프가이드 2016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