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진(21, 요진건설)이 드라마틱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의 첫 우승을 했다. 자신의 생일날 올린 값진 우승이었고, 캐디로 나선 아빠의 안타까운 실수와, 우승을 예감한 어머니의 길몽까지 전해져 풍성한 이야기들이 함께 했다. 투어 2년차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의 김예진은 친한 동료들의 연이은 우승 소식에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었다. 내년 시드 걱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극적인 우승을 해내며 자신만의 골프를 해 보이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글 김백상 기자 사진 PGA 공식 사이트
김예진은 8월 28일 강원도 정선 하이원컨트리클럽(파72, 6634야드)에서 열린 KLPGA 투어 2016 하이원리조트 여자오픈(총상금 8억원) 마지막 4라운드에서 더블보기 1개, 보기 3개, 버디 3개로 2타를 잃었다. 그러나 최종합계 5언더파 283타를 기록하며, 3언더파 285타로 2위를 차지한 김해림(27, 롯데)을2타차로 따돌리고 우승을 차지했다.
2라운드부터 시작된 강한 바람은 3라운드에 다소 주춤 하는듯 싶더니 파이널 파운드에는 비와 함께 거세게 몰아쳤다.
선두권선수들은 초반부터 비바람의 영향으로 타수를 잃어가며 어려운 시작을 보였다. 더욱이 2번홀 3번홀이 마지막 날 가장 어려운 홀로 세팅이 되며 초반 라운드를 어떻게 지키며 시작하느냐가 우승 향방을 가늠하는 기준이 되었다.
비가 내리고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는 등 궂은 날씨 속에서 대부분의 선수들이 타수를 줄이지 못했다. 이날 타수를 줄인 선수는 전체 62명 중 3명에 불과했다.
처서가 지나자 마자 급변한 날씨는 선수들의 플레이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가을을 재촉하는 비와 강한 바람은 선두권 선수들의 플레이에도 영향을 미치며 우승의 향방을 안개 정국으로 몰아 가기에 충분했다.
초반 3개홀의 어려운 세팅과 함께 4번홀부터 연이어 플레이 하게 될 파5 두개 홀도 어렵게 플레이 되며 많은 선수들이 초반 고전을 면치 못했다. 대회 마지막 날 고진영과 김예진이 공동 선두로 김해림과 함께 챔피언조에서 경기를 시작했다.
공동 선두로 시작한 김예진과 고진영은 첫 홀부터 크게 희비가 엇갈렸다. 프로데뷔 2년차 김예진은 첫 홀 보기를 하며 타수를 1타 잃었지만, 고진영은 1번홀 티샷을 두 번이나 아웃오브바운드로 보내며 쿼드러플 보기를 범해 어려운 라운드를 예고했다. 더욱이 어려운 2번홀 김예진은 까다로운 파퍼트를 성공시키며 2위와의 간격을 점차 벌이기 시작했다.
한 홀에서 OB 두 번을 범한 고진영에 대해 SBS 고덕호 해설위원은 ‘Snow man can’t never win.’ 이라며, 골프 명언을 언급하여 힘든 상황을 단적으로 비유했다.
선두권 선수들이 어려운 초반 많은 타수를 잃는 반면 김예진은 5번 6번홀 두 홀 연속 버디를 추가하며 2위 그룹과 5타차로 타수를 벌이며 우승에 한 걸음씩 다가갔다.
김예진 본인 생일이기도 했던 대회 마지막 날 경기전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생일날 부모님께 태어나게 해서 감사하다는 선물로 우승컵을 드리고 싶다.” 는 다짐이 점차 현실로 다가왔다.
전반을 4타차 선두로 끝낸 상황 10번홀 플레이를 앞두고 KLPGA경기위원으로부터 7번홀 파퍼트 할 때의 2벌타 상황을 전해 듣고 순식간에 2위와 2타차로 간격이 좁혀졌다. 더군다나 2위 김해림이 전반 마지막 홀 버디에 이어 후반 첫 홀 버디를 성공 시키며 1타차까지 압박하며 생일날 생애 첫 우승에 대한 희망이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경기 후 생일케이크의 촛불을 끄고있는 우승자 김예진(21, 요진건설)
2벌타 상황을 극복해 내며 극적인 우승 해내, 아빠에게 공 돌려…
벌타 상황에 대해 단독 선두를 달리던 김예진은 7번 홀(파4)에서 2벌타를 받았는데, 당시 캐디인 아버지가 퍼팅하는 김예진이 비를 맞지 않도록 계속 우산을 씌워줬기 때문이었다. 골프규칙 제14조 볼을 치는 방법 14-2A에 따르면 경기하는 선수는 물리적 원조를 받거나 자연 현상의 비바람을 피하기 위해 다른 사람으로부터 보호를 받아서는 안 된다.
김예진은 이를 어겼기에 벌타를 받은 것이다. 생각지도 못 한 벌타였다. 김예진은 "경기 나가기 전에 날씨를 검색해봤는데 낮 12시부터 비가 안 온다고 돼 있더라. 제가 뚜껑없는 모자를 즐겨 쓰는 편이어서 그 모자를 쓰고 나갔는데 비가 계속 오는 것이다. 아버지가 걱정이 돼서 우산을 씌워 주셨던 건데, 7번 홀에선 파 퍼팅이 워낙 가까운 거리여서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챔피언 조이고 우승을 바라보는 입장이다 보니까 볼에만 집중하고 주위를 못 둘러봤다. 제 잘못이 너무 컸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하지만 김예진은 아버지의 실수로 인해 우승컵이 날아가게 되는 상황을 허락 하지 않았다. 이내 11번 홀 짧지않은 5미터 거리의 버디퍼트를 홀 컵에 떨어트리며 김해림과의 타수를 2타로 벌여갔다. 여기가 승부처였다. 김예진은 "약 5미터 거리의 버디 퍼팅을 남겨놨다. 제가 라이를 읽으면서 긴가민가하고 있으니까 아빠가 확신을 주시면서 길을 알려주셨다. 아빠가 알려 주신 쪽으로 쳤는데 버디가 됐다. 그것이 터닝 포인트가 된 것 같다."고 아버지에게 공을 돌렸다.
김예진은 "벌타를 받았다는 것을 인식한 이후로 오히려 독기가 생겼다. 내가 벌타 때문에 우승을 못 하는 것처럼 보이면 안 되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결국 김해림을 2타 차로 따돌리고 생애 첫 우승을 차지한 김예진은 챔피언 퍼팅을 한 뒤 울먹이면서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벌타 통보를 받고 난 뒤 아버지가 절 못 보시더라. 그전까진 제가 긴장하고 있으니까 아빠가 장난치면서 플레이를 했는데, 후반엔 오히려 제가 아빠한테 장난을 치면서 괜찮다고, 할 수 있다고 격려했던 것 같다." 며 웃음을 터뜨린 김예진은 "아빠가 감정 표현을 잘 안 하신다. 눈물이 많은 타입도 아니신데 제가 우승을 확정 지으니까 같이 울먹거리면서 등을 두들겨 주셨다. 거기서 감정이 다 전해졌던 것 같다. 우승해서 정말 다행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첫 우승을 얼마나 하고 싶었는 지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 한다."는 김예진은 "루키 시즌이었던 작년부터 우승을 너무 하고 싶었다. 2014년 루키선수들이 두각을 많이 나타냈기 때문에 2015 루키들에게도 늘 우승이 관심사였다. 그 관심에 미치지 못한 것 같아서 작년 시즌을 끝내고는 아쉬움도 많았지만 이제라도 할 수 있어서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밝혔다.
시드 걱정이 앞선 루키 김예진, 이번 우승으로 2018년까지 시드 확보
2015시즌 루키로 KLPGA 투어에 데뷔한 김예진은 신인상 포인트 2위(1,581점)으로 2015년을 마무리 지었다. 2015시즌엔 톱 10도 10번이나 달성할 정도로 성적이 좋았다. 하지만 올 시즌엔 이상할 정도로 잘 풀리지 않았다. 4월 '넥센 세인트나인 마스터즈'에서 6위를 기록한 것이 톱10의 전부였다. 컷 탈락도 9번이나했다. 불과 일주일 전에 열렸던 'BOGNER MBN 여자 오픈'에서도 컷 탈락을 했다.
김예진은 "제가 상반기에 성적이 너무 안 좋아서 시드 걱정하기 급급했다. 최근에 다시 골프를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생각을 했더니 생각지 못한 우승이 갑자기 찾아온 것 같다."고 밝혔다. 김예진은 이번 우승으로 오는 2018년까지 KLPGA 시드를 확보했다.
"시드 유지하는 것에 정말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김예진은 "저도 우승하기 전까지 상금 랭킹이 50위권대였다. 작년엔 상금 랭킹이 20위였다 보니까 작년엔 생각하지 않았던 시드 걱정을 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첫 우승을 한 뒤 2승 째가 중요하다는 말을 한다.
김예진도 빠른 시일 내에 2승을 하고 싶지만 그렇다고 조급하게 생각하진 않는다. 김예진은 "새로운 코치님께 배우면서 제 문제점을 너무 많이 알아버렸다. 이젠 시드가 확보됐으니까 처음부터 제 문제점을 고쳐 나가면서 오히려 더 기초를 탄탄하게 하고 싶다. 좋은 선수가 되면 좋은 결과도 같이 따라온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성현의 기권, 그리고 투어 베테랑 선수들의 선전
2014년부터 새롭게 시작한 본 대회는 많은 스타플레이어를 배출하며 골프 팬들의 큰 사랑을 받아왔다. 초대 우승자 서희경(30)을 비롯해 유소연(26,하나금융그룹), 안신애(26,해운대비치골프앤리조트), 장하나(24,비씨카드) 등 쟁쟁한 우승자들이 이 대회를 통해 더욱 성장 하는 계기도 됐다.
주최사인 하이원리조트는 지난 해부터 예선전 제도를 도입하여 선수들의 참가 기회를 확대했다. 이번 대회에는 예선전을 통해 프로 12명, 아마추어 3명이 추가로 출전권을 확보함으로써 더욱 치열한 우승경쟁을 펼쳤다.
2016 KLPGA 투어는 ‘남달라’ 박성현(23,넵스)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었다. 박성현은 지난 7월 21일 막을 내린 ‘BOGNER MBN 여자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시즌 6승이자 통산9승을 신고하며, 이번 대회에서 우승을 추가한다면 신지애(28,ThreeBond)가 세운 한 시즌 최다승(9승)과 김효주(21,롯데)의 한 시즌 최다상금(1,208,978,590원) 기록에 한걸음 더 다가서게 된다.
박성현은 “하이원리조트 여자오픈은 작년에 스코어 오기로 실격했던 대회라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하지만 현재 샷 감이나 퍼팅감이 좋기 때문에 이번에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 자신한다.” 며 의지를 다졌다. 대회가 열리는 하이원리조트컨트리클럽 코스에 대해서도 “페어웨이도 좁고 분명히 쉽지 않은 코스다. 캐디와 호흡을 더욱 맞춰가며 홀별 특징을 고려한 코스 공략에 더욱 집중해야한다.”고 평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대회 첫날부터 오버파를 치며 우승 경쟁에서 멀어지더니 급기야 대회 2라운드 기권을 하며 대회를 접었다. 캐디의 발목부상이 대회 기권의 이유였지만, 대회 2틀간 보여준 플레이는 그간 보였던 박성현식 플레이와는 다소 거리가 먼 부진한 결과를 내보였다. 첫 째날 4오버파에 이어, 둘 째날 전반에만 더블 보기 1개, 보기 4개로 6타를 잃어 컷 통과가 사실상 불가능해 보였다.
박성현의 독주를 견제할 시즌 2승의 고진영(21,넵스), 장수연(22,롯데), 조정민(22,문영그룹)을 포함하여, 이승현(25,N H투자증권), 오지현(20,KB금융그룹) 등 KLPGA 최고 기량의 선수들도 함께 출전해 우승컵을 향한 치열한 승부를 펼쳤다.
3라운드 공동 선두를 유지한 고진영은 마지막 날 10개 오버파를 치며 순위가 16위까지 곤두박질 쳤고, 장수연은 최종 6오버파를 치며 공동 25위에 만족해야 했다. 오히려 투어 베테랑인 김해림, 김보경 등이 경험과 운영을 앞세워 2위 3위를 차지하며 대회를 마감했다.
<월간 골프가이드 2016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