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낯섦’의 저항 극복할 수 있어야
한은혜 2017-12-04 09:58:19

많은 혁신이 실패하는 이유는 소비자는 기존 제품의 가치에 대해 과대평가하고 기업은 혁신 제품의 가치를 과하게 평가하기 때문이다. 소비자는 기존 제품을 준거점(reference point)으로 두고 주관적으로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 기업 역시 혁신을 창조하는 과정에 몰입해 있으면 혁신이 준거점이 되어 혁신이 가진 이점에 대해 과도하게 가치를 부여하고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에 빠져들게 된다. 혁신을 바라보는 양쪽의 시각 차이가 혁신 실패의 중요한 원인이 될 수 있다.

 

 

빅뱅파괴

 

많은 혁신이 실패한다. 카테고리마다 다르지만, 신제품은 40~90%라는 놀라운 비율로 실패한다. 미국 소비재 기업 은 매년 3만 개의 제품을 출시하나 그 중 70~90%는 12개 월 이상을 버티지 못하고 매대에서 사라진다. 국내 시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국내 제조업체들이 출시한 신제품 실패 율은 평균 80%에 달한다.

 

혁신 수명도 짧아지고 있다. 과거에 등장한 혁신 기업은 그들이 달성한 업적을 통해 적어도 한 시대를 풍미할 수 있었다. 워크맨을 개발한 소니가 그랬고, 휴대전화를 발 명한 모토로라가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혁신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과실을 누리기도 전에 새로운 혁신으로 시장이 재편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를 미국의 경영전 략가인 래리 다운즈(Larry Downes)와 폴 누네즈(Paul F. Nunes)는 빅뱅 파괴(big-bang disruption)라는 개념으 로 설명한다. 이는 기존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선하는데 그 치지 않고 시장을 새롭게 창조하는 동시에 순식간에 기존 제품을 없애버리는 새로운 혁신을 의미한다. 빅뱅 파괴가 발생하면 동시다발적으로 붕괴와 창조가 일어나 기업과 제품의 수명은 매우 짧아진다.

 

올해로 출시 10년이 된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한때 혁신 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많은 제품이 사라지고 있다. 2007 년 스티브 잡스가 세상에 내놓은 아이폰으로 인해 MP3플 레이어, 내비게이션, 디지털카메라 등이 우리 곁에서 멀어 지고 있다. 지난 9월 토이저러스의 파산 역시 스마트폰에 빠진 아이들이 더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지 않기 때문이라 는 것을 보면 기발한 혁신은 산업의 경계를 넘나들며 파 괴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자동차 산업도 내연기관 자 동차를 생산하는 완성차 기업 대신 자동차 산업의 변방에 있던 부품, 전장, 정보통신(ICT) 업체들이 중심부로 자리 를 옮기고 있다. 자율주행차, 순수전기차 등 미래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 변화는 전통적인 자동차업체가 아닌 구글, 테슬라 등이 이끌고 있다. 구글 모기업 알파벳의 자율 주행차 부문 웨이모가 몇 주 전 공공도로에서 처음으로 운 전석에 사람이 앉지 않는 완전 자율주행 차량을 선보였다. ICT 업체들이 기술로 시장을 이끌면서 100년을 이어왔던 전통적인 자동차 업체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경영 환경의 구조적 변화

 

이처럼 빅뱅 파괴가 예전보다 빈번히 일어나는 이유는 혁 신이 싹을 틔우고 결실을 볼 수 있는 경영 환경의 구조적 변화에 기인한다. 변화를 가져온 핵심 동인으로는 첫 번째, IT 및 인프라의 발전으로 혁신적 아이디어 및 기술을 사 업화하는 데 필요한 초기 자본과 개발 리스크가 크게 줄어 들었다는 데 있다. 두 번째로 기업을 지원하는 투자자들과 투자 기법이 늘어나면서 사업화에 필요한 자본 조달이 매 우 용이해졌다. 과거에는 혁신적 아이디어가 있어도 자금 조달이 어려워 사장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지 금은 크라우드 펀딩, 벤처 캐피털 등을 통해 자금 조달이 용이하다. 세 번째는 혁신 수용 주기의 단축을 들 수 있다. 래리 다운즈와 폴 누네즈에 따르면 최근 혁신 기술을 수 용하는 양상은 에버렛 로저스(Everett Rogers)가 혁신 확 산 이론에서 구분한 5단계에서 2단계로 크게 줄었다. 최 초 수용자들이 제품의 성능을 빠르게 테스트하고 이후 다 수자들이 받아들인다는 개념이다. 정보기술을 익숙하게 다루는 소비자가 늘어나면서 최초 혁신 수용자들이 페이 스북, 트위터 등의 SNS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면 다수자들 이 이를 통해 제품에 대해 학습함으로써 빠른 확산이 발생 한다는 것이다. 오랜 기간 공들인 혁신이 실패하고 혁신의 과실을 누리기도 전에 혁신 수명이 다하는 것은 기업에 너 무 가혹한 일이다. 그럼에도 기업의 혁신은 지속되어야 한 다. 빠른 적응과 혁신이 기업의 생존과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혁신의 속도가 빨라진 요즘 초기에 소비 자에게 수용되지 않으면 제품이 시장에서 사장되어버릴 위험이 크다.

 

 

혁신 저항

 

기업이 혁신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시장에서 혁신이 수용 되는 과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혁신 수용과 확산에 관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이론은 에버렛 로저스의 혁신 확 산 이론(diffusion of innovation theory)이다. 그에 따 르면 혁신은 ‘이를 채택하는 개인이나 집단이 새롭다고 인 식하는 아이디어, 관행, 사물’이다. 그리고 혁신 수용 정도 는 혁신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개인이 어떻게 인지하느냐 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모든 혁신이 다 수용되는 것은 아니다.

 

마케팅 교수인 쉐스(Jagdish N. Sheth)는 혁신 저항 (innovation resistance)이라는 개념을 최초로 제시하며 로저스의 이론을 비판하였다. 그는 기존 혁신 연구는 모든 사람이 혁신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혁신이 모든 사람 에 의해 수용된다는 가정 하에 이루어졌다는 점을 문제로 제기하였다. 친 혁신적 편향(pro-innovation bias) 관점 에서 연구가 이루어져 왔다는 점을 비판하며 혁신 저항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혁신 저항은 ‘혁신 수용 시 수반되는 변화에 대한 소비자 저항’으로 정의된 다. 즉 혁신을 수용할 때 야기되는 변화에 대한 부정적 태 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혁신 그 자체에 대한 부정적 태도가 아니라 ‘혁신이 야기하는 변화에 대한 저항’이다. 따라서 혁신 저항은 혁신 수용의 반대 개념이 아니며 정도의 차이 가 있을 뿐 수용 과정에서 소비자가 겪게 되는 자연스러운 심리 상태이다.

 

소비자의 심리적 부담감 이해해야

 

과거 기업 성공의 핵심이 ‘운영 효율성’이었다면 지금은 ‘창의와 혁신’이다. 변화의 속도가 빨라졌기 때문이다. 인공 지능, 자율 주행차, 드론, 3D 프린터, 사물인터넷(IoT), 나노기술, 양자컴퓨터, 가상현실(VR) 및 증강현실(AR) 등 빅뱅 파괴의 잠재력을 지닌 신기술이 우리의 생활과 산업 을 크게 변혁시킬 것이다.

 

많은 혁신이 실패하는 이유는 소비자는 기존 제품의 가치 에 대해 과대평가하고 기업은 혁신 제품의 가치를 과하게 평가하기 때문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소비자는 기존 제품을 준거점(reference point)으로 생각하고 주관적으 로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

 

기업도 마찬가지이다. 혁신을 창조하는 과정에 몰입해 있 으면 혁신이 준거점이 되고 혁신이 가지고 있는 이점에 대 해 과도하게 가치를 두고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에 빠져들 게 된다. 혁신을 바라보는 양쪽의 시각 차이가 혁신 실패 의 중요한 원인이 될 수 있다. 현재 제품보다 객관적으로 우월한 성능을 가진 혁신 제품을 개발하면 충분히 소비자 의 구매를 유도할 것이라는 암묵적 가정은 진실(truth)이 아닌 근거 없는 믿음(myth)이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QWERTY 자판기보다 속도는 빨라 지면서 동시에 타자수 부담을 덜어주는 Dvorak 자판기가 개발되었음에도 QWERTY 자판기에 익숙해진 소비자들 은 이를 외면했다. 객관적으로 더 나은 가치를 제공함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데는 여러 가지 부담이 있기 때문이다.

 

신기술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아 생소한 일반 소비자는 혁 신을 거부하고 저항할 수 있다. 기업은 혁신을 시작할 때 부터 이를 받아들일 소비자 입장에서 이해하고 저항을 극 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혁신 저항은 급격한 기술 발전 에 따라 사용자들의 심리적 부담감이 높아진 상황에서 혁 신 수용의 결정요인으로 중요성이 더 부각될 것이다.

 

많은 기업이 혁신 실패의 원인을 기술적인 열등함이나 경 쟁 열위, 시장 환경 등에서 찾는다. 하지만 뚜렷한 이유 를 찾지 못했다면 혁신을 수용하는 소비자 관점에서 들여 다볼 필요가 있다. 4차 산업 혁명으로 앞으로 상상을 뛰 어넘는 혁신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기업에서는 영향력이 큰 혁신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잘 만들어 진 혁신이 시장에서 빛을 보기 위해서는 혁신 제품을 사 용하는 소비자의 심리를 이해하는 노력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월간 기계산업 2017년 12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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