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불황 극복한 일본 중소기업, 무엇이 달랐나 장기불황 극복한 일본 중소기업, 무엇이 달랐나
공작기계 2015-08-06 10:05:29

20년 이상 일본을 괴롭힌 장기불황. 이로 인해 일본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비해 더 큰 피해를 입었다. 내수부진과 함께 엔고가 진행되면서 경쟁력을 상실했으며, 제조업 공동화에 따른 지역경제 위축이라는 이중고를 겪었다. 저출산과 인구고령화 역시 중소기업의 인력난을 가중시키고 각종 소비재 시장을 위축시키는 압력으로 작용했다. 제조업의 공동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99만 개가 넘는 중소기업이 사라졌다. 그러나 일본에는 여전히 수많은 강소기업들이 포진해 있다. 오랜 불황에도 자신이 가진 강점을 유지및 발전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LG경제연구원에서 발행한 보고서 ‘20년 장기불황 극복해 온 일본 중소기업 무엇이 달랐나’를 통해 그 이유를 살펴보자.
자료제공 : LG경제연구원 | 편집 : 송해영

 

장기불황, 중소기업에게 더 매서운 바람


대기업에 비해 낮은 중소기업의 체감경기
일본 정부의 법인세 인하, 엔저 유도 등 각종 기업 지원정책에 힘입어 일본 대기업의 수익이 개선되고 있다. 일본 거대 제조기업들이 고수익을 기반으로 임금 인상에 나서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체감경기지수가 회복되고 기업 부도 건수가 감소하는 등 전반적으로 기업 경기가 호조를 보이고 있지만, 중소기업의 체감 경기는 전반적으로 대기업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일본 내에서는 일본경제의 든든한 기반이 되었던 중소기업이 1990년대 이후 20년 이상의 정체기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인지 정책적 관심의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장기불황과 함께 일본 중소기업들이 겪게 된 어려움은 저출산과 인구고령화에 따른 시장 위축, 신흥국 기업 추격 등 복합적인 요소에 기인한다. 이와 같은 일본 중소기업의 어려움은 앞으로 낮은 성장률과 저출산·고령화 환경에서 우리 기업들이 직면하게 될 상황이기도 하다.


중소기업은 이전부터 일본의 소재 및 부품 산업의 토대가 되었으며, 동시에 대기업이 캐치업 경영에서 벗어나 이노베이터로 도약하는 데 기여해 왔다. 독일의 히든챔피언에 버금갈 정도로 특정한 기술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유지·강화하면서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중소기업들이 일본에는 여전히 많이 있다. 이들이 장기불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고민했던 전략들은 우리나라 중소기업뿐만 아니라 대기업 역시 눈여겨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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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적 불황업종 확대와 제조업 공동화
일본 중소기업 수는 1990년대 말과 2012년 사이에 99만 개, 20% 이상 감소했다. 장기불황으로 부도가 확대 되고 창업이 부진을 보이면서 일본 경제의 각 제조거점에서 공동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특히 섬유 등 경공업 분야의 타격이 컸다. 예를 들어 섬유산업의 경우 1985년 기준으로 66,174개를 넘던 사업체 수가 2010년에는 15,902개로 감소했으며 같은 기간 종업원 수도 115만 명에서 30만 명으로 크게 줄었다.
산업과 지역경제의 공동화 현상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협업하는 산업단지에서도 진행되었다. 대기업이 경영악화를 극복하기 위해 생산거점을 해외로 이동하는 바람에 지역 내 중소기업의 생산 기반이 약해진 것이다. 특히 섬유와 함께 전기전자 산업의 매출 및 생산감소 충격이 컸다. 이는 일본 전자조립 기업의 공장 폐쇄가 각 지역 하청 중소기업의 경영을 압박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PDP TV 사업을 주도하던 파이오니아의 경우, TV 조립공장을 단계적으로 폐쇄할 때마다 공장 주변의 하청 중소기업들도 함께 위축되었다.
1990년대 버블 붕괴의 영향이 점차 심각해지면서 은행부실채권 문제가 악화되어 중소기업 대출이 부진을 보인 것도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2000년대 중반에 일본의 부실채권 문제가 거의 해결된 이후에도 디플레이션과 함께 통화량과 대출이 둔화되면서 중소기업의 재무 상태를 압박하는 현상은 이어졌다. 중소기업 대출은 2000년대 중반 이후에도 정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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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고령화가 중소기업 경영 압박
장기불황의 배경이기도 한 저출산·고령화 문제는 중소기업 경영을 직접적으로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지방 중소기업들은 좋은 인력을 확보하지 못해 신흥국 기업과의 경쟁 전략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일본에서 장기불황이 계속되고 있을 때 세계적으로는 IT화가 빠르게 진행되어 현장 기술자도 제품 설계나 제조 가공 과정에서 IT 기술 등 새로운 노하우를 축적할 필요가 있었으나, 중소기업의 인력구조가 고령화되면서 이러한 대응이 어려웠다. 인력 부족 심화로 인해 주문 받은 생산량을 달성하지 못하면서 흑자 도산하는 사례도 늘어났다. 중소기업이 가진 특수 기능이나 지식을 젊은 인재들이 계승하지 못하는 경향도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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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청의 조사에서도 각 중소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경제의 과제로서 인구의 감소 및 저출산·고령화 문제가 50%의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구 증가율이 둔화되는 가운데 지방에서 대도시로 젊은 층의 인구이동이 계속되었기 때문에 대도시보다 지방의 인구감소가 상대적으로 빠르게 본격화되었다.

 

장기불황을 극복한 중소기업 사례


대기업과 함께 프로덕트 이노베이션
이처럼 어려운 상황 가운데에서 경쟁력을 잃지 않고 성과를 거두고 있는 중소기업도 적지 않다. 일본 중소기업의 불황 극복 사례를 보면 우선 기존 대기업과의 협력 관계를 단순한 하청거래 관계에서 공동기술개발, 공동제품개발 단계로 발전시켜서 성과를 거둔 경우가 눈에 띈다. 일본의 장기불황은 기존의 공정혁신, 개선활동을 중심으로 한 프로세스 이노베이션의 한계(신흥국의 프로세스 이노베이션 캐치업으로 인해 발생)를 의미하는 것으로 불 수도 있다. 결국 이러한 한계를 타파할 수 있는 프로덕트 이노베이션에서 대기업과 협력하면서 성과를 거둔 중소기업 유형이 두각을 나타냈다.


프로덕트 이노베이션을 위해서는 기초기술에 대한 연구개발이 중요한데 이러한 투자는 중소기업에게 여간 부담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기초기술부터 투자해 원천적인 기술력을 확보할 경우 경쟁우위를 다양한 제품 분야에 적용할 수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수익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실제로 매출액 연구개발 비중이 높은 일본 중소기업일수록 수익성이 지속적으로 높게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반도체 제조 장치 산업은 일본제 반도체의 세계시장 점유율 하락과 함께 노광장치 등 핵심 장치분야에서도 점유율이 하락했지만 중소형 기반기술 기업과 장치업체 간 협업을 통한 제품개발 성과가 높은 세정 및 건조기기, Coater·Developer, CMP 분야는 40~90%에 달하는 압도적인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일본 산업계가 세계에서 가장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수소 관련 기술 및 제품개발의 경우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공동개발이 성과를 보이고 있다. 수소 관련 각종 기술특허를 보면 대기업-중소기업의 공동개발에 의한 특허가 대기업-대기업 공동개발 특허에 비해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전문화와 글로벌화로 도약한 틈새시장의 강자
두 번째 유형으로는 대기업과의 하청관계를 통해 제품 및 기술력을 높인 다음에 점차 독자적인 경쟁력을 가진 글로벌 틈새 시장의 강자(GNT, Global Niche Top)로 부상한 경우다. 이들은 전문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일본 대기업이나 해외기업과의 거래관계를 강화하며 세계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일본 시즈오카현에 위치한 도카이전자(종업원 89명)는 1979년 창업 이후 대기업 시계업체의 하청 조립 사업을 해왔으나, 대기업 생산거점의 해외이전과 장기불황에 대처하기 위해 자체 제품개발에 주력했다. 이 회사는 2002년에 호흡으로 음주측정 여부를 감지하는 업무용 알코올 측정기를 개발했다. 디지털시계 조립과정에서 축적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조율 노하우를 활용해 단시일에 시제품 개발에 성공한 것이다.

기존의 음주 측정기는 대형의 초정밀기계이거나 소형의 저성능 제품이었던 데 반해, 도카이전자는 소형이면서 고성능 기기를 개발해 버스, 택시 등 영업용 차량을 운행하는 기업의 운전사 관리 수요 개척에 나섰고 단시일에 시장 개척 효과를 거두었다. 이와 같이 전문분야 혹은 특수 분야의 기술력을 높여 프로덕트 이노베이션에 성공한 일본 중소기업의 경우 대부분 파괴적인 기술보다는 현장 근로자의 숙련된 기술력을 축적하면서 제품을 개량하고 새로운 니즈를 개척하고 있다.

GNT 기업으로 인정받는 중소기업들은 우선 소재 및 부품 등 B2B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좁은 업계에서 명성을 구축한 다음 다양한 고객과 상대해 다양한 제품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기술력을 높이는 패턴을 보였다. 다양한 고객의 니즈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가공기술, 공업디자인, 설계 능력을 높여 브랜드 파워와 함께 차별화된 경쟁우위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술력을 기반으로 대학 등과의 산학연계를 통해 기초기술의 공동개발을 하는 경우도 많다. 

GNT 기업을 포함해 독자적인 제품개발력으로 성과를 거두고 있는 일본 중소기업은 전략적 제휴나 공동개발 등 외부경영자원과의 협력이 활발한 편이다. 일본 중소기업청 조사에 따르면 연구개발에 주력하고 있는 중소기업은 고객과의 협업을 가장 중시하고 있으며, 다음으로는 대학 및 고등교육기관과의 협력에 적극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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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비즈니스 트렌드 활용한 성장 경로 전환
일본의 장기불황 과정에서 많은 산업이 위축되고 매출이 감소했지만, 어떤 분야가 축소됨으로써 다른 분야가 성장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오프라인의 각종 도소매 매출이 감소한 반면, 온라인 전자상거래가 급신장세를 보였다. 장기불황으로 기존 제품 혹은 기업이 어려움을 겪을 때 시장에 일종의 틈새가 생김으로써 신규비즈니스나 신규사업자가 진출하게되는 경우도 있다.
전세계적으로 IT혁명 트렌드를 잘 포착한 중소형 벤처기업 중에서 초거대기업으로 성장한 사례가 있듯이 장기불황에도 불구하고 IT혁명, 친환경 그린 비즈니스화, 고령화 등의 트렌드들은 뉴비즈니스 기회를 포착한 중소기업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되었다.


일본의 우량 중소기업의 경우, 소재 및 부품에 대한 강점을 시대 트렌드에 맞게 조정해 성과를 거두고 있는 사례들이 적지 않다. 예를 들면 일본 중소기업의 상당수가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의 확대 트렌드에 맞게 자사의 기술을 개량하면서 새로운 성장영역을 개척하는 패턴이 확대되었다.
또 저출산과 고령화는 장기불황의 원인으로 작용했지만 이를 역으로 활용하는 경우도 나타났다. 고령자는 50대, 60대, 70대별로 생활패턴이나 원하는 서비스도 다르기 때문에 일본 중소기업은 고령층 시장에 세밀하게 대응하면서 비즈니스를 개척하고 있다.

 

지역적 강점을 활용하다
장기불황기에 매출감소로 쇠약해진 지방 중소기업들이 지역 차원의 강점을 활용해서 신흥국 기업 제품과의 차별성을 강화하는 노력도 전개되었다. 일본의 각지역경제는 공동화가 진행되는 가운데서도 각종 소재, 부품, 기계 등의 숙련된 가공 능력을 가진 기업들이 밀집해 있다는 강점이 남아 있다. 이러한 지역강점은 고부가가치 제품의 개발로 연결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었다.
일본은 기존의 분업 생태계에서 구축해 왔던 고도의 기술과 숙련 기능을 활용하는 한편, 보다 개방적인 오픈이노베이션을 모색하면서 지식의 집약기능을 강화하는 클러스터 구조로의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소재 및 부품 등 뿌리 산업의 중소기업을 활성화시키고 연구 및 제품 개발에 능한 지역경제의 강점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시사점


협력 통해 극복한 장기불황
일본은 세계 어느 나라 못지 않게 중소기업이 강한 나라 중 하나다. 일본 정부도 중소기업의 육성과 지원에 많은 경험을 갖고 있으며 또 적극적이다. 그러나 지난 20여 년 간의 일본 중소기업의 성적표와 정부정책의 성과를 성공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중소기업의 성적표는 대기업보다 나빴고, 수많은 기업들이 사라져갔다. 그러나 앞에서 보았듯이 일본 제조업과 중소기업의 강점이 소멸된 것은 아니다. 일본 제조업의 경쟁력은 여전히 각종 조사에서 최고 수준을 달리고 있다. 일본에는 여전히 많은 강소기업들이 산업계 전반에 포진해 있다.


일본 중소기업이 장기불황에서 겪은 고전과 그 극복사례를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몇 가지 시사점을 고려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오랜 장기 불황에도 자신의 강점을 유지 및 발전시켜온 일본 중소기업의 네 가지 유형에서 거의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요소로는 협력을 들 수 있다. 특히 일본 중소기업이 고객인 대기업이나 대학연구기관과의 공동 연구를 통해 기술력과 제품력을 높여 온 사례가 많다.

공동연구는 중소기업뿐만 아니라 대기업의 경쟁력 기반을 강화하는 데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산업의 지식집약화 기반을 강화하고 클러스터로 발전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정책은 많은 나라에서 추진하는 정책이다. 실리콘 밸리와 구글 캠프, 최근 우리나라의 창조경제혁신센터도 크게 보면 이 범주 안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일본의 경우 업종 분야가 좁고 상당히 작은 지역에서 이런 활동이 활발하게 나타난다는 특징이 있다. 우리나라는 일본만큼 지역 생산기반이 강하지 않기 때문에 무리하게 일본을 따라가기는 힘들겠지만 중소기업 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기업과 정부 간 실질적인 협력과 교류, 지원을 원활히 할 수 있는 장을 활성화하는 것은 매우 중요해 보인다.

 

<출처 월간MTM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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