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사냥 금지, 흰긴수염고래의 개체수가 증가하지 않는 이유
이명규 2014-07-28 10:2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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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KISTI 미리안 자료
출처. KISTI 미리안 『글로벌동향브리핑』>

 

고래사냥 금지에도 불구하고 흰긴수염고래의 개체수가 증가하지 않는 이유

 

인간은 더 이상 흰긴수염고래를 사냥하지 않지만, 새로운 방법으로 `멸종 위기에 처한 고래(endangered cetaceans)`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여기서 새로운 방법이란 - 끔찍하게도 - 선박으로 고래를 들이받는 것을 말한다. 지난 15년간 미국의 해안에서 배회하는 171마리의 흰긴수염고래를 위성으로 추적한 결과, 과학자들은 (국제적 보호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흰긴수염고래의 개체수가 증가하지 않는 이유가 `고래와 선박 간의 충돌사고 때문`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번에 과학자들이 추적한 171마리의 고래는 북태평양 동쪽에 서식하는 흰긴수염고래 집단(the eastern North Pacific population)에 속하는 고래들이다. (참고로, 전세계에는 약 10,000마리의 흰긴수염고래들이 살아 있는데, 그중 북태평양 동쪽에 서식하는 흰긴수염고래 집단은 2,500마리다.) 이번 연구는 1993년, 오리건 주립대학 해양포유류연구소(MMI)의 브루스 메이트 박사(고래생물학)가 인공위성용 태그를 수염고래의 등에 부작하는 방법을 개발한 후에 시작되었다. 수염고래 중에서도 흰긴수염고래(Balaenoptera musculus)는 지금껏 지구상에 살았던 동물들(가장 무거운 공룡 포함) 중 가장 큰 것으로 유명하다. 몸길이가 30미터, 몸무게가 170톤인 흰긴수염고래도 있다. 그러나 이처럼 큰 덩치에도 불고하고, 흰긴수염고래의 이동범위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메이트 박사는 같은 MMI 소속의 래드 어바인 박사(연구자)와 함께, 캘리포니아 해안에서 발견된 흰긴수염고래에게 태그를 붙인 후 그 이동경로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흰긴수염고래의 이동경로 외에도 궁금한 것이 또 하나 있었다. 그것은 "1966년 국제포경위원회(International Whaling Commission)가 일부 고래종(種)에 대한 산업적 사냥을 금지한 후, 같은 지역에 서식하는 다른 수염고래들의 개체수는 극적으로 증가했는데도 불구하고, 유독 흰긴수염고래의 개체수만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이유"였다. 예컨대 미 수산청(National Marine Fisheries Service)에 의하면, 북태평양에 서식하는 혹등고래(Humpback whales)는 포경금지 조치 이후 1,400마리에서 20,000마리로 크게 증가했다고 한다.

메이트 박사와 어바인 박사가 이끄는 연구진이 부착한 태그는, 매일 또는 격일로 고래의 위치정보를 전송하도록 설정되어 있었다. 석궁을 이용해 고래의 몸에 발사된 태그는 평균 58일 동안, 공기총을 이용해 발사된 태그는 평균 85일 동안 작동했는데, 한 고래의 등에 부착된 태그는 무려 504일 동안 작동하기도 했다. 연구진은 이렇게 하여 수집한 고래의 이동에 관한 데이터를 7월 23일자 PLOS ONE에 발표했다. 연구진의 분석 결과, 흰긴수염고래는 매년 여름 샌타바버라와 샌프란시스코 근해의 용승지역(upwelling zones)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곳은 해저의 심층수가 솟아올라오는 지역으로, 고래들이 좋아하는 크릴새우가 풍부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흰긴수염고래가 몰려드는 곳은 LA와 샌프란시스코의 항구에 가까운 곳이어서, 많은 선박들이 지나다니는 길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불행한 우연(unhappy coincidence)이다. 2007년 캘리포니아의 채널제도(California’s Channel Islands)에서 실시된 2주간의 조사에서, 3마리의 흰긴수염고래가 선박과의 충돌로 사망한 것으로 밝혀진 바 있다"고 어바인 박사는 말했다. 북태평양 동부의 흰긴수염고래 중 정확히 몇 마리가 선박과의 충돌로 희생되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또한 선박과의 충돌이 흰긴수염고래의 개체수 증가를 막는 주요 원인인지도 분명치는 않다. 그러나 선박과의 충돌이 흰긴수염고래의 개체수 증가를 가로막는 주요 원인 중 하나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연구진은 다른 지역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고가 발생할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불행중 다행인 것은, 한 가지 훌륭한 모델 케이스가 있다는 것이다. 북아메리카의 대서양 연안에 있는 펀디만(Bay of Fundy)의 경우, 1990년대에 이와 비슷한 문제로 고래들이 수난을 겪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1년 전, 해운업체들이 나서서 자율적으로 주요 항로를 변경하고 입항 및 출항 속도를 늦추기로 결정함으로써, 문제를 간단히 해결했다고 한다. "일출항 속도를 늦추면 고래들이 선박을 피해 달아날 수 있다. 그 결과 선박과의 충돌로 인해 희생되는 고래의 수가 약 80% 감소했다"고 미 국립 해양포유류 연구소의 필립 크래펌 박사(해양생물학)는 말했다.

연구진은 펀디만의 사례를 참고하여, 고래가 몰려드는 시즌(매년 7월~10월)에 채널제도와 샌프란시스코 연안을 통과하는 화물선의 항로를 조정하고, 8월~11월에는 샌프란시스코만을 드나드는 북부항로를 폐쇄할 것을 권고했다. 연구진은 "코끼리보다 25배나 무거운 고래가 선박과 충돌한다면, 선박에게도 이로울 것은 없다"며, 미 해양대기청(NOAA: National Oceanic and Atmospheric Association)과 해운업계의 결단을 촉구했다.


■ KISTI 미리안 『글로벌동향브리핑』 http://mirian.kist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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