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메리카에 결핵을 옮긴 것은 유럽인들이 아니라, 바다표범
이명규 2014-08-28 11:4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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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KISTI 미리안 사진자료
출처. KISTI 미리안 『글로벌동향브리핑』>

 

남아메리카에 결핵을 옮긴 것은 유럽인들이 아니라, 바다표범

 

오리나 돼지는 인간에게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다. 그리고 요즘 한창 문제가 되고 있는 에볼라바이러스도 박쥐에게서 유래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런데 1,000년 된 페루의 미라에게서 채취된 세균의 DNA를 분석한 결과, 유럽인들이 남미에 발을 딛기 훨씬 전에 남미인들에게 결핵(tuberculosis)을 옮긴 것은, 놀랍게도 - 인간이 아니라 - 바다표범이었다고 한다.

"이번 연구는 `신대륙에 결핵이 퍼진 이유`에 대한 새로운 설명을 제시함과 동시에, 바다의 포유류가 결핵를 전세계에 퍼뜨리는 주역이 될 수 있음을 일깨워 줬다"고 유니버시티 칼리지 더블린의 스티븐 고든 교수(미생물학)는 말했다. 또한 이번 연구에 의하면, 결핵이 인간의 질병이 된 것은 생각만큼 오래 전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결핵은 전세계에서 매년 100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가지만, `결핵 및 결핵균(Mycobacterium tuberculosis)이 인간에게 처음으로 침투하여 번져나간 시기가 언제인가?`라는 의문은 아직도 풀리지 않은 상태다. 초기의 생각 중 하나는 "결핵은 비교적 신생질병이며, 지금으로부터 10,000년 전(석기시대)에 소(牛)에게서 인간으로 옮겨졌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 결핵균의 DNA를 분석한 연구에서는, "전세계(특히 아프리카)의 결핵균들은 매우 다양한 DNA를 보유하고 있디"는 결론이 나왔다. 최근의 연구결과에 대한 독일 튀빙겐 대학교의 요하네스 크라우제 교수의 해석은, "결핵이 처음 발생하여 전세계로 퍼진 것은, 10만 년 전 인류의 조상이 아프리카를 떠날 때였다"는 것이다.

결핵의 기원뿐만이 아니라, 결핵이 아메리카에 처음 들어온 때가 언제인지에 대해서도 설(說)이 구구하다. 서반구의 결핵균(M. tuberculosis)은 모두 현대유럽의 결핵균과 동일한데, 이는 초기 유럽의 탐험가들이 결핵균을 퍼뜨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콜럼부스가 신대륙에 발을 딛기 전에 살았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미라를 분석해 본 결과, 뼈에서 결핵에 의한 변형의 징후가 발견되어, "결핵은 유럽인들보다 먼저 아메리카에 들어왔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왔다.

10년 전,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헬렌 도노휴 교수(의료 미생물학)가 이끄는 연구진은 미국 와이오밍주에서 발견된 17,000년 전의 들소뼈 화석에서 결핵균의 DNA를 검출했다. 그러나 그 뼈의 다른 부분을 검사했던 다른 연구진은 아무런 세균의 DNA도 검출하지 못해, 도노휴 교수의 연구결과는 의심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뒤이어 영국 버밍엄 대학교 데이비드 민킨 교수(유기화학)는 동일한 뼈와 다른 대형 포유동물의 화석에서 결핵균의 지질(lipid) 분자를 발견했다. 이에 민킨 교수는 "고대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마스토돈, 들소, 기타 대형 포유동물들을 잡아먹음으로써 결핵에 감염됐으며, 이 동물들은 베링육교를 통해 결핵을 아메리카에 전달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크라우제 교수는 이번에 새로 발표한 논문에서, 마침내 아메리카 대륙의 결핵에 얽힌 수수께끼를 풀었다. 그가 이끄는 연구진은 다양한 연령대의 고대 남미인의 뼈 68점을 분석한 결과, 결핵을 암시하는 파손과 변형의 징후를 발견했다. 나아가 뼈에서 채취된 DNA를 시퀀싱한 결과, 3명의 다른 사람들의 뼈에서 결핵균의 DNA를 발견하여, 그들이 결핵 환자였음을 확인했다. 심지어 연구진은 결핵균의 유전체를 상당 부분 복원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번 연구는 `결핵이 유럽인들보다 아메리카에 먼저 들어왔다`는 사실을 확실히 증명했다"고 이스라엘 공대의 루스 허시버그 교수(진화 미생물 유전체학)는 논평했다. (허시버그 교수는 이번 연구에 참가하지 않았다.)

크라우제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3명의 남미인 미라에서 나온 결핵균의 유전체를 200년 된 헝가리의 미라에서 검출된 결핵균의 유전체, 그리고 현대 결핵균의 유전체(인간에게서 검출된 250개 이상의 種)와 비교해 봤다. 비교 결과, 연구진은 결핵균의 돌연변이 속도를 추정할 수 있었고, 이를 이용하여 "모든 결핵균의 공통조상이 존재했던 시기는 5,000~6,000년 전"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우리는 결핵균의 돌연변이 속도가 지금껏 생각했던 것보다 약 10배 빠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연구진은 말했다. 연구진은 이상의 연구결과를 정리하여, 8월 20일 네이처에 발표했다.

그렇다면 결핵은 어떻게 아메리카 대륙에 들어왔을까? 연구진은 이 질문에 답변하기 위해, 다양한 동물들에게서 채취된 결핵균 유전체들의 스펠링(염기)에서 차이가 나는 것들을 하나씩 세기 시작했다. 차이나는 글자가 적을수록 유연관계가 가깝다는 것을 뜻한다. 그 결과 페루의 미라에서 검출된 결핵균 유전체의 시퀀스와 가장 가까운 것은 해양 포유동물에게서 검출된 결핵균의 유전체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연구진은 다음과 같은 추론을 하게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1,000년 전, 바다표범이나 바다사자를 사냥하던 페루인들이 사냥감의 고기를 먹다가 결핵에 감염되었다. 이 바다표범과 바다사자들은 아프리카의 미확인 동물에게서 결핵에 감염된 후, 대서양을 건너 남아메리카로 왔다. 후에 유럽인들이 병독성 강한 결핵균을 지니고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하면서, 해양 포유류에게서 유래한 결핵균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연구진이 제시한 결핵균의 해양침투 경로는 합리적이며 설득력이 있다"고 스위스 연방공대의 스튜어트 콜 교수(미생물학)는 말했다. "남미의 한 동물원에서 테이퍼(중남미와 서남아시아에 사는, 코가 뾰족한 돼지 비슷하게 생긴 동물)가 바다표범으로부터 결핵에 감여된 사례가 보고된 적이 있다. 인간이 바다표범으로부터 결핵에 감염된다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파리 자연사박물관의 티에리 워스 박사는 말했다. 워스 박사는 유전체를 이용하여 감염질환의 역사를 추적하고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서반구에 결핵이 퍼진 경로는 다양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결핵균이 물소나 인간을 통해 베링육교를 건넜을 것이라는 가설은 여전히 유효하다. 남아메리카 전체의 결핵이 불과 1,000년 전에 도입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나 큰 비약이다. 연구진이 그렇게 주장하려면 더 많은 지역에서 발굴된 더 많은 미라의 샘플들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도노휴 교수는 거들었다. 연구진은 결핵이 처음 인간에게 감염된 시기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연구진은 `결핵의 역사는 10만 년`이라는 최근의 학설을 뒤집었다. 그러나 연구진은 돌연변이율 계산방법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고 비판자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그러나 이상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번 연구는 후속연구자들에게 좋은 연구과제를 제시했다"라고 고든 교수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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