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yphon Antileon EVO Mono, 거인의 불꽃은 다시 피어오르고… 거인의 불꽃은 다시 피어오르고…
월간 오디오 2016-02-03 13:55:20

글 | 오승영




 미국계 하이엔드 앰프들에 대적할 만한 유럽계 브랜드로서 그리폰을 떠올리는 일은 80-90년대를 활동해 온 오디오파일에게는 매우 자연스러운 반응일 것이다. 지속적인 계보로 축적되어 온 패밀리 브랜드 포트폴리오, 사이즈와 제조원가를 의식하지 않는 음질본위의 설계, 그리고 ‘그리폰 블랙’으로 대별되는 강렬한 색감과 조형미 등은 여전히 미국에는 없는 그리폰적(的) 영역이다. 그래서 그리폰 30년 역사를 관통하고 있는 독보적인 시리즈로서 안틸레온(Antileon)의 생명력과 지위는 가히 그리폰 가문의 정신적 유산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필자가 헤아려 보니 최신판 안틸레온 에보는 안틸레온 라인업의 4세대 모델이다. DM100에서 기원한 그리폰 파워 앰프의 주력 모델인 안틸레온은 3세대 모델인 시그너처 버전에 이르러 전면부 핸들이 사라지기 시작했고 전원부와 회로 구성, 출력 수치 등에서 현재 안틸레온 에보의 틀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게 벌써 15년 쯤 전의 얘기니까, 안틸레온 에보는 ‘포스트 시그너처’가 되기 위한 많은 숙고를 거친 결과물로 짐작된다.
안틸레온 에보에 결정적인 영감을 준, 불을 지핀 제품은 그리폰 창사 25주년 기념으로 기획된 메피스토였다고 생각된다. 공룡과 같은 자사제 스피커들과 대규모 편성의 인티앰프 등이 출현하면서 상호자극과 요구 속에 개발된 메피스토는 시그너처 버전 출시 이후 10년 이상 휴면 중이던 안틸레온을 자극했을 것이며, 그 결과 그리폰의 롱런 스테디셀러에 또 한 번의 진화(Evolution)를 가져올 수 있었다.
안틸레온 에보 모노블럭 버전은 안틸레온 시그너처 이래의 175W 출력의 A클래스 증폭 회로의 포맷을 계승해서 탑재하고 있다. 고유의 풀밸런스 입력단과 전압 증폭단(Voltage Amplifier Stage; VAS)을 기본 플랫폼으로 해서 디자인되었으며, 브리지 모드로 작동하는 것이 아닌 패러럴 커플링을 통해 채널 별로 작동하는 완벽한 모노블록으로 설계되어 있어서 댐핑 팩터와 전류 전송을 두 배로 확장시킬 수 있다는 데 가장 큰 핵심이 있다. 스피커의 임피던스의 변동에 따라 정수비로 반비례해서 반응하는 뛰어난 선형 증폭 방식으로 퓨어 A클래스로 종종 일컬어지는 이 구동 품질은, 안틸레온 시그너처 이래 왜 그리폰이 대형 스피커들의 킬러 앰프로 추대되곤 하는지 시청을 통해 쉽게 이해될 수 있었다.
구동력의 핵심으로서 안틸레온과 상위 제품들이 가장 많이 배려를 한 부분은 전원 트랜스이다. 에보의 전원 트랜스는 토로이달 특주품인데, 별도 언급된 부분을 찾지 못했지만 별다른 이유가 없다면 홀름그렌이 설계한 트랜스를 사용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시그너처 버전에서는 사각형 케이스에 좌우로 채널을 구분해서 수납한 데 비해, 마치 아이언맨의 심장처럼 원형의 쳄버로 제작한 에보에서는 상하 적층으로 듀얼 구성해서 수납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전원 트랜스 하우징은 본체로부터 완벽히 차폐되어 있기도 하지만, 내부에서도 주변을 에폭시로 댐핑 처리해서 하우징으로부터의 2차 차폐는 물론 외부 진동을 원천 차단하도록 디자인되어 있다.




안틸레온의 전 시리즈가 그래왔듯이 에보 또한 풀밸런스 회로 구성으로 되어 있다. 알려진 바, 그리폰의 원래 회로 구성 콘셉트가 좌우 채널 및 +/- 신호를 완벽히 분리시켜 전송하는 데 있었으며, 자사제 프리앰프는 물론이고 가능한 한 시그널의 발생 이후의 경로가 풀밸런스 설계된 제품을 사용했을 때 뛰어난 정숙도와 위상일치 등의 효과는 배가될 것이다. 참고로 본 제품은 뒷 패널 하단에 있는 그린 바이어스 링크(Green Bias Link)로 그리폰의 프리앰프와 연결하게 되면 신호의 상태를 스마트하게 모니터해서 바이어스를 자동으로 조절하도록 제작되어 있다. 로딩 바이어스는 전면 패널에 있는 3개의 바이어스(L, M, H) 버튼을 사용해서 수동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했는데, 사용자가 자신의 스피커와 시청 음원에 따라 선별적으로 사용하기에 편리할 것 같다. 예컨대 낮은 볼륨으로 다이내믹스가 크지 않은 곡들을 주로 시청한다면 L(Low)을, 연속 다중 악기 구성의 곡을 대음량으로 시청한다면 H(High)를 선택해서 시청하면 될 것 같다.
제품의 뒤쪽으로 배치한 4개의 대형 전해 콘덴서의 모습은 기존 안틸레온이나 메피스토와는 달리, 90년대 플래그십이었던 레퍼런스 원의 레이아웃을 많이 닮아 있다. 기타 파워 서플라이에 디커플링용으로 사용한 문도르프의 PP 재질 커패시터, 타크만의 REY 저항, 전압 증폭단에 사용된 제텍스의 트랜지스터, 프리 드라이브단에 사용된 도시바의 트랜지스터, 금을 임베딩한 은선 와이어링, 양면 도금한 메인보드 등 용도에 따라 서로 다르게 편성한 그리폰의 프리미엄 부품들은 본 제품의 요소요소에 투입되어 있다.
에보에서 빠뜨릴 수 없는 부분이 디자인이다. 안틸레온 시그너처가 직선으로 일관했었다면, 에보는 원형과 곡면, 사선 등을 복합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필자가 보기에는 여태껏 그리폰에서 제작된 앰프 중에서 가장 뛰어난 구조물이다. 미술과 그래픽을 전공한 플레밍 라스무센의 관록이 잘 누적된 결과물로 보인다.
제품의 시청은 ATC의 SCM50 스페셜 에디션인 S50을 통해서 진행했는데, S50이 다소 작게 느껴질 만큼 앰프의 드라이브에는 여유가 있어 보였다. 지면관계상 곡목별 시청기를 언급할 지면이 되지 않아서 일괄하자면 빠른 속도로 강력하게 통제되어 반응하는 베이스와 그리폰 특유의 매끈한 중·고역이 정확한 위상으로 조합되어 실로 자연스러운 프레젠테이션이 펼쳐졌다. 어느 장르를 시청해도 원래 음원 속에 있는 정보가 여과 없이 정확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대편성에서는 무대 속 입자들이 선명한 구간으로 분리되어 입체적으로 조망되고, 솔로 악기에서는 공간의 사이즈와 연주자의 컴팩트한 이미징 등이 정밀한 어쿠스틱 정보와 함께 전달되었다.
예를 들어, 텔락에서 발매한 차이코프스키 슬라브 행진곡에서의 베이스와 팀파니의 아티큘레이션은 특히 눈에 띄었다. 낮은 대역을 운행하는 저현악기의 동작이 미세한 부분까지 피치를 높인 연속 상태에서도 혼탁해지지 않고 또렷하게 들려와서 감탄스러웠다. 금관 악기의 짧고 미세한 조음이 선명하게 부각되면서도 따뜻하다. 벅차오르는 앰비언스의 느낌, 이 부분을 상하 대역에 걸쳐 이렇게 들려주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오스카 피터슨 트리오의 ‘You Look Good To Me’에서의 찰랑거리는 하이햇은 자체적으로도 정교하지만 무대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를 매끈하고 정밀한 그러데이션으로 그려주고 있다. 만일 이미지처럼 확대해서 볼 수 있다면 짧고 작은 구간에서도 겹선이 아닌 선명하고 굴곡이 분명한 선들의 조합이 될 것 같다.
안틸레온 에보에서 감동을 느꼈던 부분은 기존 시그너처의 사운드 콘셉트를 유지한 채로 확장시켰다는 점이다. 귄위적으로 위력적이지만 침착하다. 반드시 주니어 버전으로서가 아니라, 전능한 콘셉트의 상급기 메피스토와는 다른 스타일의 그리폰으로 재현되어 있다. 탄력 있는 베이스와 열려진 공간의 느낌, 그렇지만 음이 없을 때의 고요한 정적 등 음악을 듣는 재미를 어느 스피커에서도 구현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앰프로서 안틸레온의 행진은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수입원 D.S.T.KOREA (02)719-5757   가격 7,900만원   실효 출력 175W(8Ω), 1400W(1Ω)
구성 클래스A   주파수 대역 0-350kHz(-3dB)   다이내믹 레인지 111dB
디스토션 0.06% 이하(50W)   입력임피던스 10㏀   출력임피던스 0.02Ω 이하   게인 +31dB
크기(WHD) 57×26×60cm   무게 84kg


<월간 오디오 2016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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