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기인
스위스의 다빈치 오디오는 주로 턴테이블, 고성능 톤암과 MC 스탭업 트랜스포머를 생산하는 메이커다. 스위스의 정밀 기계 공학과 시계의 메탈 재료 공학에 힘입어 초고가의 제품들을 스위스라는 이미지에서 어긋나지 않게 초정밀 가공해 상품화한다. 필자는 이미 다빈치의 MC 스탭업 트랜스를 리뷰한 바 있는데, 모양새도 특이하고 소리도 좋았지만 초고가라는 씁쓸한 뒷맛을 여운으로 남겼다.
다빈치 암도 동일하게 모든 것을 거의 다 갖추고 있지만, 가격 면에 있어서만큼은 양보가 없다. 최고의 초정밀 제품을 스위스제 명품 시계 하나를 장만하듯 무겁고 신중하게 뛰어들어야만 손에 넣을 수 있는 톤암이기 때문이다.
다빈치 암을 구매하면 우선 압도되는 것은 톤암이 포장된 우드 박스이다. 자작나무 케이스에 고급 우레탄 도장을 입히고, 금박으로 회사명과 모델명을 프린팅했는데, 고가의 시계 박스보다도 더 품위 있어 눈길을 끌었다. 내부 포장 세팅도 초정밀 기계제품의 수납답게 정확하고도 세밀하게 안착시켜 놓았는데, 부품의 세팅 역시 한 치의 오차도 없어 웬만한 지진에도 움직임이 없을 것 같은 안정감을 준다.
그랜데자는 다빈치의 9인치, 10인치, 12인치 모델 중 최상급 롱 암으로, 그들의 플래그십 모델인데, 각 파트별로 여러 재료를 선발해 복합적 튜닝을 한 특징이 있다. 특히 암 파이프는 코코보로 우드(Cocobolo Wood)를 사용하는데, 이 목재는 장미목과 같은 윤기를 내지만 고탄력 고강성 나무이며 중미에서 생산되는데 고급 권총이나 기관총 등의 손잡이 나무로 사용되는 재료라고 한다. 경년 변화에 강하고 충격 완충 역할을 하면서도 탄력이 뛰어난 특징 때문에 암의 공진 계수를 낮출 수 있어 선택되었는데, 그 가공 과정은 무척 복잡하고 시간이 걸리는 일이어서 다빈치 오디오 사 스스로도 무척 애를 먹고 있다는 뒷이야기가 있다.
사실 우드 암의 시초는 MC 카트리지 설계 특허를 가지고 있는 미국 그라도 사이다. 그들의 우드 암은 옆으로 넓적한 장미목을 사용하는 심플한 다이내믹 밸런스 암이었다. 그러나 사용상에는 여러 가지 제한이 따라 별로 호응을 얻지 못했지만 독특한 울림으로 온화한 사운드를 들려주어서 나름 애호가도 있었었다. 그 이후로도 여러 회사들이 우드 암을 발매했지만 딱히 성공한 예가 없다. 그것은 나무라는 아날로그적으로 좋은 재료를 톤암이라는 정밀 제품에 적용함에 있어 발생하는 어려움 때문이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우드 암에 도전하는 톤암 회사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나무가 톤암 재질로 적절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적당한 완충 능력, 낮은 공진 계수 등 장점이 많다. 특히 나무가 갖는 따뜻한 음색은 무엇보다도 장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랜데자는 이 모든 특징을 재료 공학과 정밀 공학으로 매치시켜 놓았는데, 베어링 블록은 동과 철의 합체이며, 헤드셸은 동, 후면 카운터웨이트는 동과 텅스텐 합금, 상하 좌우 지지 피봇은 강화 텅스텐, 그리고 이중 수평 유지 루비 베어링을 사용해 특별한 아지무스 조정이 필요 없도록 설계한 후 필요 파트를 24K 금도금했다. 특히 다이내믹 안티스케이팅을 위해 자력 댐핑 구조를 사용하는데, 매우 정밀해 초정밀 세팅을 요하는 부분이다. 상하 좌우 축에 사용되는 루비 베어링은 정밀 시계공이 수공 연마한 초정밀 제품으로 그랜데자의 디테일과 투명도를 보장해 주고 있는 핵심 부품이다. 그러나 충격에 약해 깨질 수 있어 이동이나 사용 시 충격이 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내부 톤암 심선은 고순도 동선의 연선 리츠 케이블로 애나멜 도금 후 면사로 절연시켜 놓았다. 연결된 RCA 핀은 WBT의 초고급 모델로 카트리지 출력과 같은 초미세 신호 흐름에 적격화되어 있다.
카트리지는 고에츠 오닉스 플래티넘 카트리지와 V.D.H. 프로그를 연결해 시청했는데, 세팅에 큰 어려움은 없었고, 다만 안티스케이팅은 안티스케이팅 디스크로 초정밀 조정을 여러 번 했다. 댐핑이 너무 세면 내부 그루브에서 못 넘어가는 현상도 생겨 20분 이상 반복 교정했다.
가장 큰 음색 특징은 따뜻하면서 음장 전개가 사실적이며 초점이 정확한 데 반해 디테일은 거부 반응 없는 자연스러운 음상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넓고도 깊은 하부 저역을 형성시켰고 특히 중역의 음색이 매력 있었다. 세팅하면서 새삼 느꼈지만 묵직하면서도 초정밀 가공에서 오는 동작 안정감이 필자의 손에 전달되어 마치 라이카 필름 카메라를 다루던 옛 시절의 추억을 되새기게 한다. 소리를 떠나서 톤암 자체의 기계적 완성도에서 이러한 충족감을 느껴 보기는 최근 들어 처음이었다.
<월간 오디오 2016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