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종학(Johnny Lee)
참 많은 스피커 디자이너를 만났지만, 이번에 소개할 롤랜드 가우더 씨는 여러모로 특별하다. 우리가 흔히 스피커에 대해 갖고 있는 상식을 대부분 깨 버리기 때문이다. 크로스오버를 적극적으로 쓴다거나, 수학과 물리학의 활용 등 여러 면에서 유니크한 이론으로 무장하고 있고, 실제로 독일 본국에선 대학 강단에 설 정도로 평가가 높다. 최근 방한을 계기로 특별한 만남을 가졌으므로 그 내용을 정리해 본다.
반갑습니다. 예전에 이소폰을 주재할 때 잠깐 뵌 적이 있죠?
네. 이 부분을 잠깐 설명해야겠군요. 1992년에 제가 스피커 회사를 설립하면서, 독일 내에 이소폰의 위상이 높았으므로 그 이름을 빌려서 사용한 바 있습니다. 또 이때 이소폰에서 만든 드라이버를 쓰기도 했고요. 그러다 2013년에 독립하면서 제 이름을 건 가우더 어쿠스틱을 설립했고, 또 제가 만든 드라이버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스피커의 바탕이 되는 이론이나 수학, 물리학 등의 기본은 변함이 없습니다.
회사가 슈투트가르트에 있던데 이곳은 벤츠와 포르쉐 박물관으로 유명하죠.
실제로 두 전시장 사이에 저희 회사가 있어서 손님이 오면 자주 데려갑니다. 저는 이곳에서 출생해서 쭉 자랐고, 지금도 살고 있습니다. 슈투트가르트 토박이죠. 벤츠와 포르쉐뿐 아니라 이 도시에는 멋진 쳄버 오케스트라가 있고, 뛰어난 발레단도 있습니다. 며칠간 방문해서 관광한다면 상당한 매력을 느낄 것입니다.
그렇군요.
전 대학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전공했습니다. 물론 스피커에도 관심이 높아 이미 대학에 다닐 때 틈틈이 전문 스피커 회사에 설계를 보낼 정도였습니다. 그 당시 스피커 관련 이론으로 유명한 것이 틸레-스몰이었습니다. 이것을 살펴보고는 이 정도 이론이라면 내가 더 낫게 만들어 볼 만하다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사실 벤츠에서 일자리 제의가 왔지만, 이소폰과 관계를 맺고 본격적으로 제 이론을 다듬고 또 제품을 만들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가우더 어쿠스틱을 창립하면서 독자적인 드라이버를 개발했는데, 이소폰 제품과 뭐가 다르죠?
사실 이소폰은 70-80년대에 만들어진 구시대의 유물입니다. 우리는 진동판부터 마그넷, 서라운드 등 모든 면에서 현대적인 소재와 장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진동판만 해도 알루미늄에 여러 물질을 혼합해서 공진을 적극적으로 억제하는 방식을 쓰고 있는데, 더 투명하고 반응이 빠르며 디테일 묘사가 뛰어납니다.
사실 이소폰 시절부터 아큐톤 드라이버를 적절하게 쓴 것으로 기억합니다. 가우더 어쿠스틱을 창립하면서 이전과 다른 독자적인 기술력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사실 이 부분을 가지고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아큐톤은 이미 정평이 난 세계적인 드라이버니까 따로 설명이 필요 없고, 크로스오버도 제가 가진 기술력은 누구도 쫓아올 수 없는 수준입니다. 예를 들어 저역과 고역이 만나는 부분을 한 번 살펴보죠. 대개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일정 부분이 겹칩니다. 이런 오버랩되는 부분이 넓어질수록 음이 혼탁해지고 또 애매해집니다. 사실 대개의 디자이너는 6-12dB 정도 수준으로 설계할 뿐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미 시작할 때부터 25dB를 실현했고, 지금은 60dB까지 가능합니다. 남들은 크로스오버를 필요악이라고 하지만 제대로 만들면 좋은 음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수학과 물리학의 지식이 풍부해야 합니다.
대개 크로스오버를 필요악이라고 그러는데 실상은 전혀 다르군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착안한 것은 캐비닛입니다. 어떻게 하면 공진을 막고, 최고의 음을 구축할 수 있을까 하다가 립 컨스트럭션(Rib Construction)을 실현했습니다. 이것은 마치 사람의 몸과도 같습니다. 갈비뼈가 위아래로 층을 이루는 가운데, 이것들을 척추가 지탱합니다. 그리고 앞에 몸체가 붙여집니다. 바로 거기에 착안해서 타원형의 립을 층층이 쌓아올리고, 그것을 척추 역할을 하는 바(Bar)로 잡아 주면서, 석재와 여러 물질을 혼합한 프런트 배플과 드라이버라는 몸체가 덧붙여지는 것입니다. 단, 립은 적층을 하는 과정에서 중간 중간에 댐핑재를 삽입합니다. 그래서 일체 잡공진이나 진동이 없는 것이죠. 이전에는 목재로 만들다가 다크(DARC) 시리즈로 오면서 알루미늄으로 제조하기에 이릅니다.
요즘 알루미늄 인클로저가 유행인데, 통 알루미늄을 쓰면 좀더 편리하지 않을까요?
그 부분은 이미 1990년대 초에 실험한 바 있습니다. 그럴 경우 문제는 링잉 현상입니다. 금속재 인클로저의 약점이죠. 이를 보완하려고 여러 실험을 해 봤다가 두 손을 들었습니다.
이런 방식을 쓰면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좋아집니까?
기본적으로 저는 음이라는 것이 긴 파장을 가진 사인파가 아니라 짧은 간격으로 계속 몰아치는 임펄스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정확히 표현해야 제대로 음악을 재생할 수 있습니다. 이 방식은 그 점에서 탁월합니다.
그렇군요. 이번에 다크(DARC) 시리즈를 런칭했는데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리겠습니다.
과연 알루미늄을 캐비닛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없을까 늘 고민해 왔습니다. 내부 보강재를 가득 심거나 안쪽에 댐핑재를 잔뜩 바르거나 혹은 목재를 적절히 투입하면 어떨까 하며 이런저런 시도를 해 봤는데 늘 뭔가 부족했습니다. 그러다가 립 컨스트럭션을 개발하고, 이 기술을 베를리나 RC에 투입한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단, 베를리나는 목재입니다. 이것을 알루미늄으로 해 보니 몰라보게 음이 좋아졌습니다. 아하, 이것이구나 싶더군요. 사실 메탈 소재는 음의 전달이 무척이나 빠릅니다. 예를 들어 기차 레일에 한 번 귀를 대보면 저 멀리서 기차가 오는데도 그 진동이 바로 귀까지 전달이 됩니다. 이 부분을 효과적으로 처리하다 보니 립 컨스트럭션에 다다른 것입니다.
알루미늄 립을 만드는 것은 제가 봐도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외주를 주어서 해결하고 있는데, 원 재료의 90%는 버릴 정도로 비정상적인 방식입니다. 또 한 번에 몇 개를 주문하기 힘든 상황이라 최소 주문량이 1,000개 정도 됩니다. 또한 이것은 모델별로 사이즈가 차이가 나서 초도 주문량만 해도 엄청납니다. 그것을 가지고 다시 닦고 다듬고 광내고 하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스피커 하나 만들기 위해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랍니다.
그렇군요. 현재 다크 시리즈는 총 다섯 개가 있습니다. 그중 세 개 정도만 집어서 소개해 주시죠.
우선 다크 80이 있습니다. 얼핏 보면 미드·베이스 두 발의 2웨이로 알기 쉬운데, 실은 2.5웨입니다. 중간에 있는 드라이버가 미드·베이스, 그 밑에 있는 것이 순수한 우퍼 역할을 하고 있죠. 따라서 사이즈 대비 정말 깊은 저역을 재생합니다.
2.5웨이는 좁은 용적과 사이즈를 가진 스피커에서 효과적인 저역을 끌어낼 때 유용하다고 생각합니다.
다크 100의 경우 본격적인 3웨이로 더블 우퍼 사양입니다. 특히 중역대가 뛰어납니다. 빠르고 또 강합니다. 해상도와 다이내믹스도 나무랄 데 없고, 어떤 장르의 음악이든 가리지 않고 다 재생합니다.
그렇군요. 그럼 플래그십 모델인 다크 250은 어떤가요?
개인적으로 스피커 역사에서 하나의 획을 그은 제품이라고 단언하고 싶습니다. 4웨이 사양으로 만들었으며, 우퍼는 저희가 개발한 드라이버를 썼습니다. 더블 우퍼 사양이죠. 미드레인지는 두 발을 썼는데, 로우(Low) 부분은 세라믹, 하이(High) 부분은 다이아몬드를 썼습니다. 당연히 트위터도 다이아몬드고요.
드라이버 구성부터 입을 쩍 벌리게 하는군요. 아낌없이 물량 투입을 한 모델로 보입니다. 기회가 되면 꼭 들어 보고 싶습니다. 아무튼 알루미늄 인클로저 전쟁이라 할 만큼 많은 회사들이 이 소재를 가지고 씨름을 하고 있는데, 립 컨스트럭션을 개발한 가우더 어쿠스틱은 상당히 유니크하고 또 빼어나다고 생각합니다. 장시간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월간 오디오 2018년 8월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