쭉 뻗어 주는 금관은 투명함이 강조된 고역으로 결코 거칠어짐이 없었다. 콘트라베이스와 팀파니의 깊은 저역 재생에서는 통 울림과 함께 시청 공간의 바닥을 가득 채우는 저역의 잔향을 만들어 주었는데, 대형기로서의 역량이 유감없이 발휘된 순간이었다.
글 | 정우광
탄노이는 이제 곧 창립 90주년을 맞이하게 된다. 1세기에 가까운 세월 동안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전통 스피커 브랜드라는 명성을 지녔다. 누구든지 탄노이를 상징하는 스피커를 이야기한다면 올드 모델인 오토그라프와 지금도 꾸준히 생산되고 있는 프리스티지의 플래그십 모델인 웨스트민스터 로열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만큼 이 제품들은 현재 탄노이의 입지를 유지시켜준 상징적인 대표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프리스티지 라인업에서 새롭게 선보인 GR(골드 레퍼런스) 시리즈를 통해 더욱 진화된 새로운 웨스트민스터 로열을 소개했다. 시대를 초월한 고풍스러운 멋은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화려하고, 탄노이의 품위가 느껴지며, 뛰어난 완성도와 사운드적 매력은 오디오 마니아의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본격적으로 웨스트민스터 로열 GR의 면모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먼저 외관에 대한 이야기. 장인의 손길로 탄생된 중후한 귀족풍의 매력, 스피커라기보다는 명품 가구 예술의 극한을 보여주는 하나의 작품이다. 기본 골격은 자작나무 합판을 사용하고, 패널과 인레이에는 고급 호두나무 무늬목으로 마감했고, 외장과 테두리는 호두나무 원목으로 마감했다. 어느 한 부분도 놓치지 않고, 디테일과 멋을 느낄 수 있는 오랜 노하우가 반영된 캐비닛이 단연 돋보인다. 여기에 컴파운드 혼과 복잡한 구조의 내부 베이스 리플렉션 구조까지 완벽한, 15인치 듀얼 콘센트릭 유닛의 재생을 위해 탄생된 최적의 설계들이 포함된 것이다. 이를 통해 530리터의 용적을 가진 대형 스피커가 완성되었는데, 덕분에 오랜 세월만큼이나 변함없이 유지되어 온 전통의 가치를 만끽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전면 배플에는 GR 각인을 새겼고, 금장의 네트워크 패널에는 올드 번개 마크까지 새겨넣어 소소한 곳에서도 GR 시리즈의 의미를 부여해 주고 있다.
다음으로 핵심 기술이 반영된 새로운 듀얼 콘센트릭 유닛을 빼놓을 수 없다. 전통적인 방식의 듀얼 콘센트릭 유닛은 우퍼와 트위터를 동축으로 결합시켜 저음과 고음이 마치 원 포인트 풀레인지와 같은 일체화된 자연스러운 사운드를 들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15인치 저음 유닛부는 킹덤 로열에 적용되었던 뮬러 사의 특제 멀티 파이버 페이퍼 콘과 고전적인 트윈 롤 하드 패브릭 에지로 제작되었으며, 마그넷부에는 기존 알니코 자석보다 3배의 자기 에너지를 가진 알코맥스(Alcomax) 3을 사용, 더욱 빠른 저역 반응과 중·저역의 분리도 향상, 그리고 또렷한 중역 재생을 추구하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소재들을 적용하여 콘의 반응이 빨라졌고, 에너지가 증가되고, 댐핑력도 향상되었다. 또한 최신 고출력 파워 앰프들과의 매칭을 고려하여 높은 파워에도 잘 견딜 수 있도록 보완되었다. 2인치 고음용 트위터부에는 알루미늄 마그네슘 합금의 역돔형 진동판을 사용하고, 새로운 구리 클래드 알루미늄 보이스 코일이 적용되었다. 다이어프램에 마일러 필름 에지를 채용, 혼 표면은 산화 방지 24K 금도금 처리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99dB의 높은 음압과 27kHz의 고역 재생이 가능하다. 그 결과 고역의 투명도가 좋아지면서, 자연스러운 고역의 존재감을 만들어 주고 있다.
크로스오버 네트워크 부에는 PTFE 코팅 실버 단선 리드 와이어를 투입했다. 내부 배선은 6N의 고순도 PCOCC를 채용하였다. 네트워크 조립 후에는 극저온 처리로 불리는 DCT(Deep Cryogenically Treated) 공정을 거쳤다. 이 밖에도 ICW 사의 최고급 클리어리티 캡 MR 커패시터를 채용하고, WBT사의 넥스트젠 WBT-0703 스피커 단자를 적용하는 등 최고품 부품들을 엿볼 수 있다.
첫 곡으로 말러 교향곡 5번 중 1악장을 클라우디오 아바도 지휘와 베를린 필의 연주로 들어보았다. 먼저 컴파운드 혼을 통한 울림은 무대의 깊이를 느끼게 만들어 주었다. 유닛 깊숙한 곳에서 울려 나오는 도입부의 금관은 인상적이며, 오케스트라가 일제히 울릴 때는 넓은 스테이지 전개에도 불구하고 쉽게 나서지 않았다. 그리고 쭉 뻗어 주는 금관은 투명함이 강조된 고역으로 결코 거칠어짐이 없었다. 콘트라베이스와 팀파니의 깊은 저역 재생에서는 통 울림과 함께 시청 공간의 바닥을 가득 채우는 저역의 잔향을 만들어 주었는데, 대형기로서의 역량이 유감없이 발휘된 순간이었다.
다음으로 나탄 밀스타인의 바이올린 연주로 바흐 무반주 파르티타 2번 중 ‘Allemanda’를 들어 보았다. 현대 스피커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고역의 밀도감이 느껴진다. 바이올린의 선율은 세련미와 함께 밀스타인의 기교와 활의 과감한 에너지가 융합된다. 바이올린의 통 울림까지 자연스럽게 재생되어 바이올린의 사운드에 압도당하는 느낌이다. 이어서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BWV1007 중 ‘Prelude’를 므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의 첼로 연주로 들어본다. 깊이와 여유를 더한 첼로의 넉넉함이 스피커와 일체된 듯하다. 첼로의 통 울림은 스피커의 통 울림과 잔향으로 전달되어 쉽게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기대했던 첼로의 깊이 있는 사운드를 경험할 수 있었다.
보컬 곡으로 슈베르트 겨울나그네 중 ‘Gute Nacht’를 테너 마크 페드모어의 목소리와 폴 루이스의 피아노 반주로 들어본다. 피아노는 둔탁함이 있지만, 감성 테너인 페드모어의 목소리는 감미롭고 정확히 스피커 앞을 가득 채워주고, 특유의 투명함이 돋보였다. 정확한 발음은 마치 공연장의 공간 잔향에서 울려 나오는 듯한 자연스러움으로 부각되고 있었다. 그리고 라이브 녹음으로 선택해 본 아델의 ‘Someone Like You’에서도 확장성이 뛰어난 혼의 성향이 반영되듯이 라이브 공간의 잔향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공간감이 강조된 리얼한 사운드가 돋보이는 순간이었다.
재즈곡은 오스카 피터슨 트리오의 ‘You Look Good To Me’를 선곡해 보았다. 우선 베이스 느긋함이 강조되었는데, 과도한 부밍 없이 안정적이고 절제력 있는 저역 통제 능력을 만날 수 있었다. 피아노는 다소 둔탁함이 있지만, 연주가 거듭될수록 특유의 투명함이 강조된 건반의 터치를 들을 수 있었다. 개성 넘치는 웨스트민스터 로열 GR의 깊이 있는 사운드 매력에 사로잡힌 기분이다.
정리하자면 탄노이의 올드 사운드 향기를 만끽할 수 있었다. 영국 귀족의 향기를 느끼게 하는 중후함을 갖춘 사운드로, 여러 장르 중에서 대편성에서 더욱 진가를 발휘하였고, 재즈와 라이브 음악에서 큰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고역 재생 능력 역시 부족하지 않은 느낌. 저역의 통 울림은 더욱 부각되어 있어 전통적인 웨스턴민스터 사운드를 잊지 않고 전달해 주었는데, 감미로운 고역과 자연스러운 중·저역을 통해 계속 음악을 듣게 만드는 마법과 같은 매력을 선사했다. 다만 대형기이고 컴파운드 혼 타입이기 때문에 충분한 공간에서의 재생을 권장하고 싶은데, 넓은 공간으로 갈수록 더욱 큰 매력과 감동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의 웨스트민스터 로열 중 가장 완성도를 높인 마치 보석과 같은 가치를 지닌 빛나는 제품이라 평하고 싶다.
수입원 사운드솔루션 (02)2168-4525
가격 4,900만원 사용유닛 듀얼 콘센트릭(38cm·5.2cm) 재생주파수대역 18Hz-27kHz(-6dB)
임피던스 8Ω 출력음압레벨 99dB/2.83V/m 권장 앰프 출력 20-350W 파워 핸들링 175W
크기(WHD) 139.5×98×56cm
* 월간 오디오 2015.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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