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월간오디오
이들의 이어폰을 알게 된 지는 사실 얼마 되지 않았다. 몇몇 제품은 사진으로 먼저 보았는데, 구성품이 화려하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사실 여러 종의 이어 팁을 명함 크기의 스테인리스 카드에 예쁘게 나열한 것뿐이었는데, 그 모습이 이상하게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괜히 하나라도 빼거나 잊어버리면 안 되겠다는 묘한 편집증까지 만드는 레이아웃이랄까.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수많은 이어 팁을 꽂은 스테인리스 카드가 이들 브랜드를 설명할 수 있는 핵심이라는 생각이다. 슬로건 역시 ‘Sound, Engineered’. 청자의 모든 취향에 맞게 부속품을 구성하고, 금속 가공에 일가견이 있는 회사. 이름부터 엔지니어적인 내공을 풍기고 있는, 새로운 이어폰 브랜드 영국의 RHA를 소개한다.
RHA는 사실 아직까지는 낯선 브랜드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이들 브랜드의 제품을 직접 접하는 것은 처음이다. 국내에서는 헤드폰·이어폰 쇼에서 출품되면서, 그 이름을 나름 알리기도 했는데, 당시 꽤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한다. RHA에는 제법 많은 이어폰 라인업을 가지고 있는데, 엔트리 모델 MA350을 시작으로, S500, S500i, MA600, MA600i, MA750, MA750i, T10, T10i, T20, T20i 순으로 그레이드를 올려간다. 참고로 i 버전은 리모컨 지원을 의미하며, 가격도 어느 정도 차이가 있다. 이들의 제품 중 처음으로 들어볼 이어폰은 플래그십 제품인 T20i이다.
제품을 받고 포장을 풀자마자, 가장 인상 깊었던 이어 팁 스테인리스 카드가 등장한다. 6조의 기본 이어 팁(S/M/L), 2조의 더블 플랜지 이어 팁(S/L), 2조의 메모리 폼 이어 팁을 제공하니까, 거의 모든 취향과 크기를 맞출 수 있어 보인다. 이어 팁을 장착한 스테인리스 홀더도 고급스러운데, 한쪽에 RHA 마크가 멋지게 음각되어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눈길을 끄는 부속품이 있다. 정말 독특하게도 무려 튜닝 필터를 따로 제공하는 것이다. 기본 레퍼런스와 베이스, 트레블로 자신이 원하는 사운드를 만들어낼 수 있다. 교환도 간편한 편인데, 나사를 돌리면 빠지고 결합된다. 굉장히 멋진 아이디어인데, 실제 이 필터를 조합하여 한층 더 흥미롭게 청음할 수 있었다. 사운드 변화는 제법 있는 편이니, 이어 팁과 필터를 조합하면, 자신의 취향과 가장 걸맞은 스윗 포인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들었을 때는 기본 버전이 밸런스가 가장 좋았다. 튜닝 필터 역시 작은 스테인리스 홀더에 부착되어 있는데, 값비싼 고급 음식을 담아낸 접시처럼 굉장히 인상적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 외의 부속품으로는 직사각형의 고급스러운 가죽 케이스가 포함된다.
T20i 이어폰의 금속 하우징을 보면 이들의 아이덴티티가 그대로 드러난다. 정밀한 사출 성형 및 가공으로 제작되었는데, 굉장히 유려한 마감과 질감을 보여준다. 크롬 마감과는 정반대의 묵직한 강철의 느낌이 눈과 촉감으로 전해진다. 스테인리스는 하우징 외에도 곳곳에 활용하고 있는데, 케이블 단자, 세퍼레이트 부분, 리모컨까지 적절히 적용되어 있어, 특유의 금속 실버 톤을 잘 살려내고 있다. 하우징에는 RHA 마크가 정밀하게 음각되었고, 로고 옆에는 소형 덕트가 그물망 처리되어 있다. 저역 컨트롤을 위한 설계인 듯한데, 실제 청음에서도 저음의 감각은 아주 훌륭한 편이었다. 오버 이어 후크로 귀에 거는 방식을 채용하고 있는데, 귀에 맞게 자유롭게 성형되는 부분에서 RHA가 독자적으로 특허를 출원하고 있다고 한다.
하위 모델과 가장 큰 차이로는 역시 듀얼코일 다이내믹 유닛의 채용이다. 다이어프램과 보이스코일을 내부와 외부로 2중 처리한 것인데, 실제 설계도를 들여다보면 마치 동축형 유닛을 보는 듯한 레이아웃을 가지고 있다. 각 대역에 따라 다어어프램이 다르게 반응하는 설계인데, 꽤 완성도 높게 엔지니어링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운드에 대한 이야기. 취향과 크기에 맞는 적절한 이어 팁을 고르고, 음악을 듣게 위해 귀에 꽂자마자 금속의 차가움이 그대로 전달된다. 역시 여름이니까, 꽤 기분 좋은 차가움이다. 그리고 곧 수준 높은 사운드가 전달된다. 머릿속으로 대략 얼마 정도의 사운드일까, 소리의 가격이 스쳐 지나간다. 대략 50만원대의 경쟁 모델이 떠오른다. 나중에 확인한 것이지만 30만원대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확실히 가격대 이상의 사운드였다. 중·고역은 정말 매력적으로 담아내고 있으며, 과하지 않은 저역은 전 대역의 플랫함을 보여주는 듯하다. 해상력은 이 가격대에서 최고의 퀄러티를 가지고 있었으며, 무대는 제법 넓게 펼쳐내는 호쾌한 공간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편집증적으로 몇 번을 고민하고, 소리의 포인트를 핀셋으로 정교하게 집어낸 듯한 사운드가 시종일관 펼쳐졌다.
수입원 소비코AV (02)525-0704
가격 38만원 유닛 타입 듀얼코일 다이내믹 드라이버 임피던스 16Ω 음압 90dB 주파수 응답 16Hz-40kHz 무게 41g
<월간 오디오 2016년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