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남
일본의 진공관 전문 업체 트라이오드는 설립 20주년이 훨씬 넘는데, 세계 40곳에 대리점을 두고 있다. 아시아권에서도 중국을 비롯해 베트남, 말레이시아까지 대리점이 있으니 그 영역을 알 만하다. 이 정도로 사세가 뻗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성능에서 인정을 받고 있다는 증표나 다름없는 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다지 홍보가 되어 있지 않은 데도 입소문으로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 지금은 대단히 개성이 강한 기종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데, 제품군은 대부분 진공관 인티앰프이고 프리앰프와 파워 앰프, 포노 한두 기종, 그리고 진공관을 사용한 CD 플레이어도 한두 모델이 나와 있다. 본 기는 그중 상위 제품으로 가격은 그다지 높다고 할 수 없지만 묵직한 중량에서부터 고급기의 체취가 서린다.
트라이오드 제품들은 일본 내의 오디오 전문지에서도 평가가 좋아 가격 대비 성능으로는 이 제품을 능가하는 기기가 없다는 수식어가 자주 따라 다닌다. 굳이 가격대를 떠나서 농후하고 깊은 맛을 지니면서도 노이즈 플로어가 내려간 정숙한 음이라는 것. 저렴한 가격에 이처럼 매력 있는 소리는 정말 귀중한 존재라는 표현도 이어진다.
근래에는 비용 절감을 꽤 한 탓으로 가격이 더욱 착해졌다. 또 기본적으로 인티앰프를 시작으로 고가 정책을 쓰지 않으면서 성능 개선에 주력하고 있기 때문에 초심자부터 전문가까지도 공평하게 만족할 수 있는 제품도 여러 모델로 나와 있다.
본 기는 CD 플레이어로는 드물게 3개의 진공관을 사용한 본격 진공관 회로로 설계한 것으로, 보통 1개 정도만을 투입한 유사 제품과는 차이가 있다. 디지털 기기의 차가운 음색을 만회하기 위해서라는 목표 아래 출력단에 6DJ8을 좌우로 1개씩 투입했고, 전원 레귤레이터용으로 6N1을 1개 투입했다. CD 플레이어에 진공관을 사용한 경우가 더러 있지만 대부분 전원부를 위해 1개씩만을 투입한 경우가 많아서 소리의 차별이 그렇게 두드러지지 않고, 본 기처럼 정석 진공관 회로를 적용한 예는 그렇게 많지가 않는데, 반도체 앰프와 진공관 앰프와의 격차 만큼이나 소리의 차이가 심한 특성이 있다. 진공관 기기의 사용법은 전원을 오프한 뒤 다시 켜려면 약 15초 이상의 여유를 둬야 한다는 것이 기본이다. 또 진공관 회로와는 별도로 반도체 소리를 선택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반도체로 만든 출력 버퍼를 내장하고 있어 간단한 조작으로 2가지의 음색을 즐길 수 있도록 해 놓은 것도 장점의 하나. 서로의 음색이 상당히 다르다는 것은 몹시 재미있는 현상이다.
내장 D/A 컨버터는 명성 높은 버브라운의 PCM1792이고, USB 입력으로 24비트/192kHz 대응해 USB D/A 컨버터로 단독 사용이 가능하며, PC의 운영 체제가 윈도우라면 드라이버를 깔아야 한다. 그리고 동축, 광 입력으로 사용도 가능. 이렇게 본 기는 본격적인 진공관 설계이면서도 고전적 방식이 아니라 USB 입력에 대응하고 헤드폰 단자까지 만들어 놨다.
시청기는 기본적으로 취미성이 강한 음색을 가졌다. 아마 이 시청기만 들었더라면 그것을 발견하기가 어려웠을 텐데 타 기종과의 비교 시청 시에는 단박에 판별을 할 수 있었다. 시청기와의 매칭 기기는 국내 음향판 전문업체인 에코사운드에서 내놓은 첫 스피커 BSh-1065와 케인의 진공관 앰프 A-88T MK2. 매칭한 스피커는 대단히 밝고 해상력이 뛰어나 반도체 앰프보다는 다소 묵직하고 밀도감이 있는 5극관 앰프와 매칭 시 이득이 있을 것이라는 첫 느낌이 있었다. 그러나 앰프만으로는 그 효과가 별로 크지 않았는데, 본 시청기인 진공관 CD 플레이어와 연결하자 마치 소리의 수준이 몇 배쯤은 더 향상한 것 같은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진공관 출력단으로 연결하면 모든 소리가 묵직하고, 밀도의 증가와 함께 마치 음의 조미료를 첨가한 듯 맛깔스러운 소리로 변화하는 것이다. 반도체 쪽으로 돌리면 그 효과가 현저하게 줄어들어 담백하게 변한다. 민감하고 해상력이 좋으며 밝은 쪽의 소리를 내주는 스피커에서 그 효과가 절대적이다.
오디오에서 매칭이라는 것은 거의 학문이나 다름없는 세계인데, 그것은 이론으로는 되지 않는 특성이 있다. 이론적으로 볼 때 가장 좋은 방법으로는 메이커에서 제시하는 대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메이커에서 매칭 후 자체적으로 튜닝을 거쳐 제품이 출시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그것을 밝히지 않아 어렵다. 이는 터무니없는 매칭으로 튜닝한 경우가 있어서 권고하지 못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오디오 시장은 평준화라는 말이 화두가 되어서 어지간하면 대부분 소리가 괜찮다. 이런 상태에서 이제 매칭의 중요성이 좀더 강조되고, 이런 쪽으로 연구와 권고가 좀더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하는데, 제각기 단품 위주의 평가만이 판을 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단품 평가는 사실 소비자들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 시청기의 매력은 각별하다. 소릿결이 두툼하고 자연스러운 스피커에 사용하면 실패, 그 반대의 경우라면 성공의 확률이 높다. 원래 소스기기부터 바꾸라는 것이 오랜 경험자들의 충고인데, 그 반대로 스피커부터 바꾸는 경우가 지금도 대부분이고, CD 플레이어로 이처럼 극적인 소리의 변화를 맛보는 경우란 흔치 않은데, 들을수록 감탄스럽다. 고가의 CD 플레이어가 왜 필요한가 하는 의문을 다시 한 번 강력하게 떠올릴 수 있는 멋진 기종이다. 들어 보게 되어 기쁘다.
수입원 다웅 (02)597-4100
가격 295만원 사용 진공관 6922(6DJ8/E88CC)×2, 6N1×1 DAC 버브라운 PCM1792
디지털 입력 Coaxial×1, Optical×1, USB×1 디지털 출력 Coaxial×1, Optical×1
아날로그 출력 XLR×1, RCA×1 헤드폰 출력 6.3mm 스테레오×1
크기(WHD) 34×10.5×33cm 무게 8kg
Monthly Audio
2015.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