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장현태
최근 블루레이 영상을 통해 발레리 게르기예프의 지휘와 곡 해석을 보면서 더욱 그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다. 얼마 전 리뷰를 통해 소개했던 LSO와의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도 마찬가지였는데, 어느 때보다 그의 지휘봉은 열정이 넘치고 있는 것 같다. 이번에 소개할 두 장의 신보는 더욱 그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는 연주이며, 게르기예프의 장점이 가장 잘 드러나는 두 명의 작곡가들의 작품집이다. 바로 베를리오즈와 무소르크스키의 대표작들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 음반은 게르기예프가 LSO와 함께한 베를리오즈의 작품 세계다. 얼마 전 출시되었던 베를리오즈 환상 교향곡에 이은 후속편의 느낌이다. ‘이탈리아의 해롤드’는 독특하게 비올라 독주를 포함하고 있는 곡으로, 파가니니가 자신이 가진 스트라디바리우스 비올라를 위해 작곡을 의뢰했던 곡으로 알려져 있고, 바이런의 시 차일드 해롤드의 편력에 나오는 우울한 몽상가를 비올라에 비유한 곡으로, 쉽게 음반으로 접할 수 없는 비올라의 독주를 경험할 수 있다. 프랑스 출신의 앙트완 타메스티의 비올라 협연으로, 그의 기교를 중심으로 한 세밀한 연주도 함께 만날 수 있다. 곡의 분위기는 게르기예프의 음악적 성향과 어울렸는데, 비슷한 시기에 LSO와 실황 녹음을 했던 환상 교향곡의 후속을 듣는 듯한 열정 넘치는 연주다. 두 번째 곡 ‘클레오파트라의 죽음’에서는 메조소프라노 카렌 카길이 노래하고 있는데, 그녀의 목소리는 말러의 곡들에 익숙해져 있어 이 곡에서는 사뭇 새롭게 다가왔다. 두 곡은 모두 2013년 11월 바비칸 센터에서의 실황 녹음을 담고 있다.
두 번째 음반은 그가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무소르크스키의 작품 세계인데, 총 3곡의 무소르크스키 곡이 수록되어 있다. 무엇보다 전람회의 그림은 압권이다.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와 만들어 낸 연주로 다양한 표현과 함께 엄청난 에너지까지 만날 수 있다. 베를리오즈의 연주와는 달리 긴장감과 폭발적인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한 번에 몰아치듯 쉴 새 없이 전개되며, 특유의 극적인 표현까지 곁들여져 완성도 높은 연주를 들려주고 있으며, 주요 테마에서의 절정에 이른 연주는 압권이다. 그리고 쇼스타코비치의 오케스트라 편곡 버전으로 ‘죽음의 노래와 춤’과 ‘민둥산의 하룻밤’까지 포함되어 있는데, 불규칙적이고 변칙적이고 음습한 분위기의 표현은 역시 게르기예프의 지휘에서 탁월한 연주를 들을 수 있다. 죽음의 노래와 춤은 2010년 2월, 전람회의 그림과 민둥산의 하룻밤은 2014년 6월과 7월의 마린스키 극장에서의 녹음이다.
두 음반 모두 놓칠 수 없는 게르기예프 지휘봉의 예술을 만끽할 수 있는 명연주들이며, 두 작곡가의 연주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두 연주 단체 LSO와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골고루 만날 수 있는 기회다. 무엇보다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지휘하는 곡들은 사운드를 듣는 것만으로도 그의 빠른 손놀림과 함께 역동적인 그의 지휘 모습이 떠오르게 만들어 주는 열정적인 연주다.
Monthly Audio
2015.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