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장현태

하이엔드 오디오 브랜드 중 제품 규모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를 찾는다면 그리폰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최근 이들 제품 콘셉트를 살펴보면 초대형 제품들이 유난히 부각되고 있는데, 스피커뿐만 아니라 앰프의 경우도 더욱 거대한 제품으로 재탄생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최근 하이엔드 오디오 브랜드들이 점차 크기를 줄이고, 가격까지 낮추고 있는 추세인데, 그리폰은 자신만의 확고한 의지로 이들과는 정반대의 노선을 걷고 있는 것이다. 더욱 큰 사이즈로 설계하고 가격에 대한 고민 없이 최고 스펙과 성능에만 집중하자는 것, 그것이 최근 그리폰의 제품 철학이다. 이런 그들의 뚝심을 기반으로 탄생된 제품들은 더욱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창업자이면서 제품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는 플레밍 라스무센 씨가 2m에 가까운 거구라는 점은 제품의 개발 콘셉트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어쨌든 바이킹의 후손답게 스케일이 큰 제품을 꾸준히 개발하며, 그리폰만의 전통성을 만들어가고 있다. 어느덧 그리폰은 30년의 세월을 넘어섰고, 동사는 변함없이 최고의 제품을 만들기 위한 노력한다.
동사가 항상 강조하는 이념 중 하나는 ‘처음부터 최고를 목표로 만들자’는 것이다. 덕분에 새롭게 전체를 재개발하기보다는 기존 성능을 보완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특히 안틸레온은 소개된 지 벌써 15년 정도 되었는데, 아직도 그리폰을 대표하는 파워 앰프로 회자될 만큼 성능과 품질 면에서 인정받고 있다. 이번 신제품인 안틸레온 EVO는 완전히 새로운 제품이라기보다는 기존 모델의 연속성의 의미를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 마치 유럽 명차가 세대를 거듭하면서 초기 콘셉트를 유지하고 더욱 완성도를 높이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안틸레온 EVO를 살펴보겠다.

첫 번째로 1세대 안틸레온의 이미지를 간직한 디자인이다. 파격적인 변화보다는 과거 안틸레온의 유전자를 유지한 채 더욱 큰 덩치의 위용을 강조하는 디자인이다. 더욱 거대한 사이즈로 확장됨에 따라 서두에 언급한 규모의 승리를 재차 확인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메피스토 파워 앰프를 연상케 하는데, 과거 사각 플레이트에서 원형 플레이트로 변경되어, 조금은 부드러운 이미지를 포함하고 있다.
두 번째로 클래스A 증폭 방식에 대한 그리폰의 무한 사랑이 느껴진다. 필자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그리폰이 30년 넘게 파워 앰프에 클래스A 증폭 방식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총 40개의 고 전류 바이폴라 트랜지스터가 장착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채널당 출력은 150W까지 내줄 수 있다. 그리폰 파워 앰프가 자랑하는 0.5Ω의 낮은 임피던스의 대응은 어떤 스피커를 만나더라도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최고의 장점 중 하나이다. 그리고 신호 입력부에는 새롭게 개선된 울트라패스트 J-FET가 적용되었는데, 풀 디스크리트 방식의 밸런스 회로로 완성도 높은 아날로그 사운드를 완성시켜 준다.
세 번째는 강력한 전원부를 통한 넘치는 에너지와 순발력 있는 저역 구동력이다. 과거 안틸레온도 마찬가지였지만, 스테레오 버전임에도 완전한 독립 방식의 전원부를 채용, 전원 케이블이 연결되는 AC 인렛 단자와 파워 스위치까지 채널 별로 분리 설치되어 있다. 실제 내부 회로 구성을 살펴보면 최종 출력단까지 모두 듀얼 모노럴 구성으로 설계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전원부에는 1,500W 용량의 대형 토로이달 트랜스포머를 두 개 장착하고 있으며, 총 670,000㎌의 엄청난 커패시터 용량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원부는 마치 사람의 심장과 같기 때문에 여유 있는 용량과 충실한 회로 구성에 따라 저역의 구동력을 결정짓게 되는데, 안틸레온 EVO는 그리폰이 추구하는 전원부의 노하우를 잘 반영해 주고 있다. 이 밖에도 금도금된 구리바를 바인딩 포스트에 연결하고 있다. 또한 음질의 손실을 막기 위해 릴레이도 장착시키지 않았고, 주요 부품들은 문도르프 커패시터와 타크만 REY 메탈 필름 저항이 사용되는 등 최고 등급의 부품을 적용시키고 있다. 덕분에 재생 주파수 범위는 최대 350kHz까지 가능한 광대역 재생 능력을 보여준다.

이번 시청에서는 대형 스피커인 ATC SCM300 타워와 그리폰의 아테나 프리앰프의 매칭으로 청취가 이루어졌다. 첫 곡은 여성 보컬 곡으로 채리스 펨핀코가 부른 ‘I Have Noting’을 선택했다. 라이브 버전으로 재생한 만큼 압도적인 스테이지와 공간감을 만날 수 있었다. 특히 호소력 강한 채리스의 고역 처리는 소름 돋을 정도인데, 고역 처리가 매끄럽고 리얼하게 표현되어 그녀의 매력에 다시 한 번 빠져들게 했다.
재즈곡으로 오스카 피터슨 트리오의 ‘You Look Good to Me’을 선곡한다. 저역 컨트롤이 잘 된 앰프를 만날수록 콘트라베이스 활의 움직임에 집중하게 되는데, EVO는 이를 인식한 듯 깊이 있는 콘트라베이스의 통 울림과 에너지로 장악하는 활의 움직임을 명확히 전달해 주었다. 그리고 임팩트 있는 간결한 스네어 드럼의 울림은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켰다.
대편성곡으로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0번 중 2악장을 안드리스 넬슨스가 지휘하는 보스턴 심포니의 연주로 들어 보았다. 압도적인 대편성의 재생 능력을 첫 음에서부터 느낄 수 있다. 공간을 가득 채워주는 웅장함을 시작으로 금관 파트의 응집력 넘치는 에너지에 단번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역시 대편성에서 다이내믹한 사운드와 함께 안틸레온 EVO의 기량은 100% 발휘되었는데, 오랜만에 마음까지 시원하게 뚫리는 듯한 파괴력을 만날 수 있었다.
안틸레온 EVO의 가장 큰 매력은 넘치는 저역의 구동력과 자극 없이 자연스럽게 쏟아내는 중·고역의 밸런스다. 그리고 그리폰의 컬러를 정확히 재생해 주었기 때문에 완전체로 부활한 안틸레온 EVO는 더욱 만족도가 높다고 할 수 있다. 오디오적인 감성과 음악적인 감성을 더욱 충만하게 함으로써 과거 안틸레온의 명성을 다시 되돌아보게 만드는, 그 존재 가치가 확실한 주목할 만한 신형 파워 앰프이다.

수입원 D.S.T.KOREA (02)719-5757   가격 3,950만원   실효 출력 150W(8Ω), 1200W(1Ω) 
주파수 대역 0-350kHz(-3dB)   S/N비 -78dB 이하   다이내믹 레인지 111dB 
디스토션 0.06% 이하(50W)  게인 +31dB   입력 임피던스 20KΩ   출력 임피던스 0.04Ω 이하 
전원부 커패시터 335,000㎌   크기(WHD) 57×26×60cm   무게 84kg

<월간 오디오 2015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