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편
지난해 여름~가을, 필자는 한달에 4-5일을 경기 성남에 있는 올닉(Allnic) 본사에서 보냈다. 처음에는 오디오 애호가로서 진공관의 작동 원리라든가, 진공관이 트랜지스터보다 음질적으로 나은 이유, 10kHz 방형파(Square Wave) 구현이 앰프 증폭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까닭 등을 박강수 대표로부터 직접 듣는 즐거움이 컸다. 물론 직열 3극관인 300B를 싱글 구동(T-1500)해 말러의 교향곡을 그야말로 ‘빵빵’하게 들을 때의 쾌감도 대단했고, 신형 5극 빔관 KT150을 푸시풀 구동해 100W 출력을 얻어낸 올닉 T-2000의 구동력 또한 가슴을 저미게 했다.
그러다 지난해 늦가을부터 필자가 관심을 갖게 된 것이 올닉의 케이블이었다. 사실 필자는 경제적 여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하이엔드 케이블 구매에 주저해왔다. 스피커 케이블은 기존에 쓰던 50만원짜리 오디오급이면 충분해 보였고, 돈이 생기면 차라리 스피커나 앰프에 투자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파워 케이블에 대해서는 더욱 인색했다. 길어도 채 2m가 안되는 파워 케이블을 바꿔봐야 에어컨, 냉장고, 다리미, 형광등, 온열기 등 온갖 가전 제품을 돌고 다닌 전기의 품질은 오십보백보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박강수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온갖 미신과 불신, 논리적 비약이 팽배한 이 오디오 케이블 세계도 명백한 과학적 원리와 뚜렷한 설계 철학으로 접근하면 될 것이라고 믿었다. ‘증폭된 음악 신호를 손실 없이 전해주고’(스피커 케이블), ‘교류 전기를 오디오 기기에 손실 없이 전해주면’(파워 케이블) 그뿐이라는,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케이블의 기본 책무에 올닉은 올인했고, 필자는 그 개발 과정을 누구보다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다.
필자가 파악하기에 올닉은 오디오 케이블에서 3가지 ‘방해요인’을 없애는데 주력했다. 쉽게 말하면, 케이블에서 발생하기 마련인 3가지 저항을 0%에 가깝게 최소화하는 데 모든 노력을 쏟아부은 것이다. 그것은 바로 선재(도체) 자체의 저항(Wire Resistance), 단자의 접촉 저항(Contact Resistance), 그리고 단자와 선재의 연결 저항(Linkage Resistance)이다. 올닉이 자체 케이블 제작 기술을 통칭해 ‘Zero Loss Technology’라 명명하고, 스피커 케이블이나 파워 케이블 모델 이름에 ‘ZL’을 붙인 이유다.
우선 올닉은 선재 자체의 저항을 최소화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봤다. 2-3년 전만 해도 국내외 케이블 제작사들이 ‘단결정 구조’나 ‘표피 효과’, ‘99.99999% 무산소동선’ 등을 강조했는데, 이는 케이블에 수반되는 하나의 저항값을 줄이려는 노력에 불과했다고 올닉은 파악했다. 대신 올닉은 케이블의 각 접점 부분을 눈여겨봤다. 애써 이룩한 고순도 선재와 첨단 차폐 기술로 선재 자체의 저항을 줄였어도, 접점 부분의 저항값이 그대로여서는 ‘별 무소용’일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그래서 올닉은 1)단자의 접촉저항과 2)단자와 선재의 연결저항, 이 2가지 저항을 최소화하는데 모든 기술력을 쏟아부었다. 물론 올닉에서는 4.0스퀘어 이상의 초고순도 동 케이블에 니켈 등을 섞은 도금을 한 선재를 사용함으로써 기본 중의 기본이라 할 선재 저항을 최소화했다. 이 밖에 순동 재킷을 통해 차폐 효과를 극대화했으며, 내부에 실리콘이 들어간 두랄루민 하우징으로 제진 대책에도 만전을 기했다.
접촉 저항의 최소화 = 올닉 파워 케이블 ZL-3000의 경우, AC 플러그(수컷)에 머리가 좀더 큰 6분할 베릴륨 동 플러그를 쓰고 그 안에 다시 고탄성 고무를 집어넣음으로써 벽체 콘센트 혹은 멀티탭(암컷)과 파워 케이블의 체결력을 최대로 높였다. 한마디로 한 번 들어가면 웬만해선 안 빠지는 플러그를 탄생시킨 것이다. IEC 단자(암컷) 역시 상자형 설계를 도입, 오디오 기기의 인렛에 들어 있는 금속봉(수컷)을 사방에서 움켜쥐게 만들었다. 기존 2차원 라인(Line) 접촉에서 3차원 표면(Surface) 접촉으로 바꿈으로써 접촉 저항을 최소화시킨 것이다.
좀더 들여다보자. 올닉 파워 케이블 ZL-3000에 사용된 AC 플러그는 일반 플러그와 달리 플러그의 끝단이 6등분돼 있다. 기존 무분할 플러그가 콘센트나 멀티탭의 ‘암컷’ 단자의 탄력에만 의지하는 반면, 이 6분할 플러그는 ‘수컷’도 탄력적으로 일을 한다는 개념이다. 또한 이 여섯 개로 쪼개진 플러그 내부에는 고탄성 고무가 들어가 있어 이 분할된 플러그를 외부로 밀어낸다. 한마디로 내부 탄력과 6개로 분할된 플러그를 통해 플러그의 더 많은 면이 ‘암컷’과 더 많이 접촉하게 된다는 원리다.
올닉에 따르면 ZL-3000에 채용된 핵심 기술이 바로 이 탄성을 만들어 내는 것인데, 앞서 언급한 고탄성 고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6분할 플러그가 고탄성 베릴륨 동을 열처리해 제작(로듐 도금 및 극저온 처리), 단자의 반발력을 최대한 끌어올렸다는 것. 이처럼 플러그의 내부 탄성을 이용한다는 것은 기존에 없던 개념이라 올닉에서는 6분할 AC 플러그를 특허출원했다. 참고로 일반 플러그가 황동을 사용하는 것과 달리 올닉에서 베릴륨 동을 사용한 이유는 베릴륨 동 소재 자체가 반영구적으로 탄성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라고 한다.
IEC 단자에도 기발한 발상이 여럿 담겼다. 기존 파워 케이블의 IEC 단자를 분해해본 오디오 애호가들이 꽤 많을 것이다. 보통 IEC 단자는 3개의 구멍이 있고 그 안에 오디오 기기 인렛단과 맞물리는 클립이 1개씩 들어가 있다. 그리고 이 클립에 Hot(Live), Cold(Neutral), 접지선(Ground)이 각각 연결되는 구조다. 어쨌든 기존 파워 케이블 IEC 단자의 핵심은 오디오 기기와 클립형으로 결합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클립형 체결 방식의 최대 단점은 오디오 기기 인렛단 내부에 있는 금속봉과 IEC 단자 내부의 클립이 극히 일부분만 접촉한다는 것. 금속봉의 좌우 2면만, 그것도 끝부분 일부만이 클립과 접촉됨으로써 완벽한 전기 전달이 태생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ZL-3000의 IEC 단자는 내부에 일반 클립식과 달리 상자 스타일의 단자를 삽입, 좌우뿐만 아니라 상하 방향으로도 인렛의 금속봉을 단단히 움켜잡는다. 단자 자체도 금속 소재 중 가장 탄성이 좋은 티탄 동을 사용, 체결력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여기에 ‘ㄷ’자형 강철 스프링이 이 상자형 단자를 바깥에서 감싸고 있기 때문에 탄성이 2배 이상 늘어났다. 이로써 올닉 파워 케이블 IEC 단자는 인렛단 금속봉의 4면에 모두 접하게 돼 접촉 저항을 최소화한 것은 물론, 케이블 무게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IEC 단자의 이탈을 근본적으로 막아준다.
연결 저항의 최소화 = 올닉 스피커 케이블에 투입된 노하우가 그대로 투입됐다. 케이블 선재(구리)에 납땜을 하게 되면 내부 저항은 약 18배 가량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아무리 좋은 선재를 사용하더라도 납땜을 한 케이블은 내부 저항으로 인해 전류 흐름을 어렵게 만든다. 납을 사용하지 않는 클램핑 방식도 있지만 이는 공기에 노출되기 때문에 산화라는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올닉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용접이라는 방식을 택했다. 두 개의 개체를 저항이 존재하는 매개체 없이 하나로 만들어 주는 용접이야말로 ‘Zero Loss’를 위한 유일한 해답이라 본 것이다. 즉 단자와 선재(초고순도 동 케이블)를 1000도 이상의 초고온 열용접 방식으로 융합, 하나의 개체로 만든 것. 이를 통해 케이블과 단자를 한 몸으로 만들어 대전류 전송에 대한 그 어떤 저항과 손실을 없애는 데 성공했다.
이처럼 케이블의 ‘저항’을 줄이는 일은 파워 케이블의 세계에서는 더욱 중요하다. 왜냐하면 파워 케이블에는 대전류가 흐르고 교류 저항이라 할 임피던스는 측정이 불가할 정도로 매우 낮기 때문에, 케이블 내 직류 저항(DC 저항)은 스피커 케이블보다 더욱 낮아야 한다.
청음은 올닉 파워 케이블 ZL-3000을 100만원대 타사 케이블과 비교해 듣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두 경우 모두 인티앰프에 물렸다. 청음 환경은 오포 BDP-105(소스기) + 올닉 D-5000(DAC) + 올닉 T-1800(인티앰프) + 올닉 ZL-3000(스피커 케이블) + 탄노이 턴베리 GR(스피커). 똑같은 3곡을 먼저 올닉 파워 케이블(A)로 듣고, 이어 타사 제품(B)으로 들은 뒤, 다시 올닉 파워 케이블(A)로 듣는, A-B-A 방식이다.
A. 올닉 파워 케이블 ZL-3000 청음
다이애나 크롤의 ‘A Case Of You’ = 라이브 녹음다운 활기가 넘치는 가운데 느닷없이 출몰하는 크롤의 보컬. 그 대비가 좋다. 피아노 타건음은 힘 있고 명료하며 퍼지지 않는다. 보컬은 리퀴드(Liquid)하다. 음이 사람 몸에서 나오는 메커니즘이 눈에 그려질 정도로 선명하다. 기척 묘사가 좋다는 얘기다. 이 곡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S/N비가 아주 높다는 것이다.
샤를 뮌쉬 지휘의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 4악장 = 팀파니가 저 멀리서 이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오는 보폭이 넓다. 그만큼 사운드 스테이징이 넓고 깊다는 것. 금관의 찬란한 음색과 그 뒤로 들리는 팀파니의 타격음 구분이 선명하다. 레이어(Layer)가 좋다. 여러 음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그리고 입체적으로 들린다. 총주 시에도 각 음들이 뭉개지지 않고 선명히 다 들린다. 특히 심벌즈의 타격 때 느껴지는 전체 시스템의 과도 응답(Transient Response) 특성이 좋다. 역시 이 악장은 오디오적 쾌감이 대단하다.
오스카 피터슨 트리오 ‘You Look Good To Me’ = 무엇보다 베이스가 마구마구 덜덜 떨어대는 맛이 좋다. 트라이앵글은 낭랑하고 울림의 여운이 꽤 오래간다. 저역은 탄력적으로 들리며 양감은 만족할 만한 수준이다. 드럼 심벌의 ‘스톱 & 고’가 대단하다. 드럼 각 파트의 소리들이 이날따라 동시다발적으로 잘 들린다.
B. 100만원대 타사 파워 케이블 청음
다이애나 크롤의 ‘A Case Of You’ = 라이브 느낌이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동글동글해진 느낌? 한마디로 날것 그대로의 맛이 부족하다. 크롤이 발음을 대충대충 한다. 시스템이 갑자기 세밀하게 묘사를 못하는 것이다. 공간감이 아까 A 때보다 적게 느껴진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B도 만족스럽다. 올닉을 먼저 듣지 않았다면 그 차이를 이렇게 집어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샤를 뮌쉬 지휘의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 4악장 = 팀파니의 보폭이나 타격감이 아까 A와 비슷하게 느껴진다. 확실히 구분이 쉽지 않다. 과도응답 특성의 경우 아까 A와 비교해 나으면 나았지 못하지는 않는 것 같다. 오스카 피터슨 트리오 ‘You Look Good To Me’ = 트라이앵글의 ‘챙’ 하는 소리는 아까 A 때보다 더 맑게 들린다. 하지만 베이스의 떨림은 약해졌다. 드럼의 ‘스톱 & 고’도 A 때보다 그 규모가 작아졌다. 곡 중간에 접어들면 갑자기 어수선한 느낌이 든다. 사운드 스테이지는 가운데로 좁혀든 느낌이다.
A. 올닉 파워 케이블 ZL-3000 재청음
오스카 피터슨 트리오 ‘You Look Good To Me’ = B의 청음 결과를 A와 더 빨리 비교해보기 위해 이 곡부터 다시 들었다. 처음 A 청음 때, 그리고 B 청음 때는 몰랐다. 이 정도로 베이스 현들이 ‘불안하게’ 긁혀지고 있다는 것을…. 이는 저역 재생 실력이 좋은 덕도 있지만 무엇보다 전체 시스템의 S/N비가 급격히 상승한 덕분으로 보인다. 적막한 가운데 갑자기 들리는 드럼의 존재감, 그리고 베이스의 느닷없는 펀치력, 이 모든 게 S/N비와 맞물려 있다. 오른쪽 베이스 워킹의 리듬감은 늘었고, 드럼 심벌즈의 ‘스톱 & 고’는 더 박력이 있어졌다.
다이애나 크롤의 ‘A Case Of You’ = 피아노의 건반을 누르는 압력이 처음부터 느껴진다. ‘쿵쿵’ 이 정도로까지 들린다. 처음 A 때는 놓쳤던 것이고, 아까 B와 비교하니 더 두드러지는 양상이다. 피아노 음들은 명료하며 단단하다. 요즘 유행하는 단어인 ‘공기감’의 재현이 대단하다. 크롤의 입 모양까지 자세히 보인다. 보컬 성량 자체가 더 크게 들리는 것 같다. 크롤이 눈을 감았다가 떴다, 이런 식의 기척마저 상상이 간다.
샤를 뮌쉬 지휘의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 4악장 = 팀파니가 아예 리스닝 포인트까지 다가왔다. 조용할 때 조용하고 음들이 돌아다닐 때 확실히 돌아다니니 오디오적 쾌감이 급상승한다. 사운드 스테이지가 커졌다.
인티앰프에 들어가는 1.8m짜리 파워 케이블을 바꾼 것만으로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 것은 왜일까, 자문해본다. 우선 올닉이 내세운 ‘Zero Loss Technology’를 통해 앰프에 에너지가 충분히 공급됨으로써, 앰프가 비로소 제 역할을 온전히 다 하게 됐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안정적인 파워서플라이는 곧 노이즈와 디스토션의 감소로 이어지며, 이는 다시 S/N비 상승과 정위감의 극대화로 이어졌을 것이다. 높아진 정숙도는 다시 저역의 타격감을 두드러지게 하며 그동안 묻혀서 안 들리던 음의 가닥수를 대폭 늘려줬다. 또한 정위감의 극대화는 개별 악기의 음색과 소릿결을 온전케 하는 동시에 사운드 스테이지 자체를 넓고 깊게 만들어낸 것으로 보인다.
총판 오디오멘토스 (031)716-3311
가격 125만원(1.8m)
<월간 오디오 2016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