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종학(Johnny Lee)
턴테이블을 제대로 구사하기 위해선, 당연히 상당한 내공과 노하우를 필요로 한다. 오버행이니, VTA니, 아지무스니 낯선 용어들을 만나야 하고, 세팅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어야 하며, 해당 제품이 지향하는 음이 대체 뭔가 여러 모로 따져봐야 한다. 게다가 턴테이블에, 톤암에, 카트리지에, 포노 앰프에, 승압 트랜스에, 아무튼 이 복잡한 매칭 관계도 무시할 수 없는데, 이래저래 골치가 아프고, 품이 많이 드는 분야인 것이다. 다행히 요즘에는 초보자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제품들이 많이 나오고 있고, 그중에는 빼어난 음질을 자랑하는 것도 있다. 이번에 만난 골드 노트의 발로레 400도 그중 하나다.
참고로 골드 노트는, 금으로 만든 지폐라고나 할까? 말하자면 대량으로 지폐를 찍어낼 때 기본 틀을 제공하는 존재라 하겠다. 갤럭시 노트의 금박 버전도 골드 노트로 통하기도 한다. 또 발로레(Valore)라는 이탈리아어는, 영어로 밸류(Value)에 해당한다. 즉, 저렴한 가격에 최상의 퀄러티를 추구한다는 뜻이다.
동사가 소재한 곳은 피렌체 근교의 몬테스페르톨리라는 작은 마을이다. 하지만 르네상스의 산실인 피렌체를 뒤로 하고 있기에, 이들은 과감히 자기 브랜드 밑에 ‘The Renaissance of Technology’라는 말을 쓰고 있다. 그만큼 자신의 기술력에 대한 프라이드가 상당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아날로그만 보면, 턴테이블뿐 아니라, 저 까다로운 톤암, 카트리지, 심지어 포노 앰프까지 직접 만든다. 어디 그뿐인가? 디지털 소스기부터 앰프, 스피커, 케이블, 액세서리까지 모두 만든다. 오디오에 관한 한, 모든 제품을 다 커버하는 것이다. 그만큼 자부심이 높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실 턴테이블은 모터 시스템이나 플래터의 재질, 또 베이스 등 여러 요소들이 잘 어우러져야 하고, 또 그 음을 들어보면 이런 물성이 정확히 반영이 된다. 그런데 발로레 400의 경우, 이런 편견을 남김없이 파괴하고 있다. 분명히 가볍고, 심플한 구조인데 반해, 여기서 나오는 음은 매우 진득하고, 스케일이 크며 또 빠르다. 상당한 중량급 소재들이 동원된 턴테이블에서나 가능한 음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여기서 잠깐 본 기의 구성에 대해 살펴보자. 우선 흔히 우리가 베이스라고 칭하는 플린스를 보면, 30mm 두께의 MDF를 사용했다. 이 부분은 그리 독특하지 않다. 단, 래커 옵션이 여럿이라, 이번 시청에는 블랙 버전을 썼지만, 화이트도 가능하고, 이탈리안 래더로 감쌀 수도 있다고 한다. 과연, 미적 센스는 역시 이탈리아.
플래터의 경우, 20mm 두께의 아크릴을 사용했다. 여기서 특이한 것은, 통상의 벨트 드라이브 방식이 모터의 축과 스핀들을 연결해서 돌리는 반면, 본 기는 아크릴 플래터를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모터의 진동을 상당 부분 플래터가 흡수한다는 장점이 있다. 당연히 트래킹 에러를 줄일 수 있다. 이 부분에 뭔가 노하우가 있지 않을까 판단이 된다.
한편 모터는 AC 싱크로너스 모터를 사용해서, 본체와는 분리된, 별도의 박스에 담았다. 여기서 속도 변경도 이뤄진다. 이 부분 또한 전기적인 영향이 일체 본체에 가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
참고로, 본 기엔 동사의 톤암과 카트리지가 함께 장착되어 있다. 톤암은 동사가 자랑하는 B-5.1을 축소한 B-5SC가 동원되었고, 카트리지는 MM형 바벨레(Babele)가 쓰였다. 사실 톤암과 카트리지도 상당히 전문적인 영역인데, 이 부분까지 커버하고 있다는 것은, 아날로그의 A부터 Z까지 모두 훑었다는 말도 된다. 역시 흥미를 유발시킨다. 덕분에 동사에서 만드는 포노 앰프도 궁금해진다.
본 기의 시청을 위해, 다소 호화로운 라인업이 동원되었다. 앰프는 크렐 에볼루션 시리즈로 통일. 222 프리에 600 모노블록, 그리고 포노 앰프는 프라이메어 R32, 여기에 스피커는 듀에벨의 플래그십 시리우스다. 과연 처음에 들은 아드리안 볼트 지휘의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3번에서부터 압도적인 기세가 느껴진다. 사실 리빙 스테레오 전성기의 녹음인 바, 대역이 넓고, 음성 정보가 풍부하다. 그 골 깊은 곳까지 쭉 훑는다고 할까? 또 전 대역에 일체 파탄이 없고, 빠르게 반응하는 부분도 탄복할 만하다. 쫀득쫀득 질기면서 풍부한 질감을 자랑한다.
이어서 스토코프스키 지휘, 리스트의 헝가리 랩소디 2번. 역시 리빙 스테레오 녹음으로, 마치 최근에 녹음한 것처럼 신선하다. 날렵한 현악군에 깊고 빠른 저역. 과연 모든 악기가 일체감을 갖고 흐트러짐이 없이 움직인다. 무섭도록 기민한 반응에서 거듭 탄복했다. 펀치력이나 해상도 면에서 상당한 중량급의 턴테이블을 듣는 듯한 착각을 준다.
마지막으로 해리 벨라폰테의 전설적인 카네기 홀 라이브 중 ‘Sylvie’를 골랐다. 풍부한 공간감에 전면 가득 리얼하게 다가오는 보컬. 사실 단출한 밴드 구성이라 좀 허할 수도 있는데, 여기서는 전혀 그런 면이 없다. 특히, 보컬의 마이크로 다이내믹스가 풍부하게 재현되어, 새삼 아날로그의 진면목에 감탄하고 말았다. 정말 외관만 보고는 도무지 알 수 없는 내공 가득한 제품이라, 시청 와중에도 계속 제품을 살펴보고 말았다.
수입원 지언전자 (010)9349-0914
가격 145만원 와우 & 플래터 0.04% 럼블 -76dB 속도 33-1/3rpm, 45rpm
크기(WHD) 40×12×36cm 무게 8kg
<월간 오디오 2016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