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종학(Johnny Lee)
케이블에 대한 기사는 가장 쓰기 어렵다. 만일 전문적으로 파고 들어가면 골치가 아플 정도로 많은 용어와 개념이 등장하고, 반대로 아우트라인만 훑는다고 하면 알맹이가 빠지기 십상이다. 그래도 실텍(Siltech)에서 내놓은 이번 제품은, 여러모로 흥미진진한 내용을 갖고 있어서 비교적 접근이 쉽다고 하겠다.
사실 오디오 역사를 둘러보면, 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케이블이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무방했다. 그냥 스피커와 앰프, 앰프와 소스기기를 연결하는 액세서리 정도라고나 할까? 없어서는 안 되지만(연결이 안 되면 아예 작동 불능이니까), 그렇다고 굳이 신경을 쓸 내용은 없다, 라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하긴 지금도 케이블의 효과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분들이 적지 않은 만큼, 40여 년 전에는 대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갈 것이다.
그러다 70년대 말에, 노엘 리라는 분이 등장한다. 더 두툼한 동선을 심선으로 한 제품을 발표하면서, 일약 이 분야의 신데렐라로 떠오른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무엇보다 음질의 개선이 현격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 많은 메이커들이 등장하면서 선재의 연구나 효과적인 실딩, 완벽한 차폐 등을 추구하면서, 다양한 성과를 쌓아올리기 시작한다. 그래서 지금은 케이블 하면 액세서리류가 아닌, 일반 컴포넌트로 취급되고 있다. 예전에는 오디오 구입의 전체 예산에서 10% 정도면 족하다고 봤지만, 지금은 그 비중이 더 커진 상태다.
1980년대에 설립된 실텍으로 말하면, 여러 분야에 걸친 심층적인 연구로, 이미 업계에서 그 능력을 확실히 인정받은 메이커다. 그 주재자는 에드빈 판 데어 클레라는 분인데, 의료와 항공업 분야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체계적으로 케이블의 역할을 연구하면서 숱한 걸작을 탄생시켰다.
이번에 만난 제품은, 클래식 애니버서리 550L이란 이름을 갖고 있는데, 전체적으로 보면 G7, 그러니까 7세대 째에 해당한다. 즉, 무려 7번에 걸친 개량의 결과물인 것이다. 또 시리즈만 놓고 보면 전작인 클래식 시리즈의 개량형으로, 현행 4개의 시리즈 가운데 두 번째에 해당된다. 또 오로지 스피커 케이블만 따지면, 330L, 550L, 770L 등 세 종류가 있는 바, 그중 두 번째 등급에 해당한다.
외관을 보면 푸른 하늘을 연상케 하는 빛을 띠고 있는데, 컬러의 경우 여러 선택 사항이 있다고 한다. 한편 가운데 두툼한 심선이 자리 잡고 있고, 그 안에는 공기를 적절히 삽입해서 최적화된 인슐레이션을 이루고 있다. ePTFE 폴리이미드 에어 FEP E-실리콘을 소재로 한 피복은 보기에도 믿음직스럽다.
한편 플러스와 마이너스 단자를 따로 분리해서 연결하도록 만들었는데, 그 각각의 심선이 두 개의 선을 꼰 형태, 이른바 트위스티드 트윈으로 만들어졌다. 선재를 꼬느냐 혹은 그냥 쭉 펴느냐에 따라 음도 달라지고, 성격도 달라진다. 이 부분에선 동사만의 노하우가 숨어 있다고 판단하면 좋을 듯싶다.
선재의 경우, 실버/골드 알로이를 쓰고 있다. 여기서 은은 분해능이 좋은 반면 골드는 음악성이 뛰어나다. 양자의 장점을 골고루 융합한 것으로, 메이커에 따르면 더 이상 좋은 선재는 지구상에 없다고 한다.
아무튼 그간의 숱한 연구와 시행착오 끝에 나온 본 기의 최대 장점은 깨끗한 배경 처리다. 즉, 블랙 백그라운드를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같은 가격대의 타사 제품과 비교하면, 무려 1만배 이상 더 깨끗하다고 한다. 이렇게 정숙성이 확보되면 음악성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그 결과물은 비교 시청을 통해 명확하게 파악되었다.
참고로 시청에는 비엔나 어쿠스틱스의 베토벤 베이비 그랜드에 뮤지컬 피델리티의 Nu-Vista 800, 그리고 노르마 레보 DS-1 CDP가 각각 동원되었다. 첫 곡으로 들은 것은 정명훈 지휘, 말러의 교향곡 2번 1악장이다. 역시 케이블 교체 시의 효과가 두드러진다. 더 스케일이 크고, 더 세밀하면서, 공간감이 멋지게 살아난다. 특히, 저역의 양이나 깊이가 몰라보게 달라져, 스피커의 급수가 하나 더 올라간 듯하다. 악기 위치가 더 명료해지면서 차분해지고, 다양한 음성 정보를 서두르지 않고 명료하게 처리하는 부분에서 과연 실텍이구나 납득이 되었다.
이어서 게이코 리의 ‘Night & Day’. 역시 베이스 라인이 더 단단하고 탄력적이 된다. 드럼의 펀치력도 더 강하다. 보컬의 경우, 뉘앙스가 더 풍부해지고, 세련된 느낌도 아울러 전달된다. 중간에 나오는 트럼펫 솔로는 마치 혼 타입 스피커처럼 이쪽에 강력한 에너지를 전달시킨다. 활력과 분위기 면에서 과연 특별한 업그레이드의 느낌이 든다.
마지막으로 피레스 & 뒤메이 콤비의 프랑크 작품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A장조. 고작 두 개의 악기가 나오지만, 전면 무대를 크고, 강력하게 장악한다. 다소 조심스러우면서 신비스런 느낌의 바이올린이 전면에 있고, 그 주변을 피아노가 은은하게 감싼다. 그러나 결코 하늘하늘하지 않다. 타건에 힘이 있고, 다양한 페달링까지 포착된다. 디테일과 힘 모든 면에서 만족스럽다. 무려 7세대에 이르는 끊임없는 개량, 그 멋진 결과물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수입원 디오플러스 (031)906-5381
가격 400만원(3m)
<월간 오디오 2016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