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종학(Johnny Lee)
요즘 서울에서 벗어난, 다소 외진 곳에 살기 때문에, 이렇게 리뷰를 위해 용산에 오는 것도 작은 여행에 속한다. 거창한 해외 여행을 꼭 언급하지 않더라도, 일단 여행이라는 타이틀이 붙으면 습관처럼 하는 행위가 하나 있으니, 바로 레코드 숍 탐방이다.
사실 요즘 레코드 숍 찾기가 쉽지 않다. 한국만 해도, 전성기인 1970년대에 전국에 2만여 개의 숍이 있었지만, 몇 년 전 통계로 200개가 채 되지 않았다. 지금은 더 줄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므로 나 같은 오랜 음악광이라도 방문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작은 사명감(?)도 갖고 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거의 전 세계적이라 할 수 있다. 정말로 많은 음반 가게들이 문을 닫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꾸역꾸역 찾아가서 최소한 몇 장의 CD를 사곤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일종의 수브니어(Souvenir)라 할 수 있다. 이렇게 구입한 CD를 듣기 위해서는 당연히 양질의 CD 플레이어가 필요하다. 워낙 고가의 제품이 즐비하지만, 이번에 소개할 TDL 어쿠스틱스의 제품은 가성비라는 측면에서 탁월한 부분이 있어 주목할 만하다.
본 기의 정식 모델명은 TDL-18CD다. 이미 여러 차례 소개가 된 바가 있어서 그리 새롭지 않을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본지의 리뷰 때 자주 사용한 바 있어서, 상당히 친숙한 느낌도 받는다. 그럼에도 이번에 새롭게 원고를 쓴 것은, 최근에 하이엔드급 제품들과 매칭해서도 상당한 실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그냥 가격대만 보고, 대충 미드 파이 정도로만 취급했던 내 자신에 대한 반성이라고 할까?
사실 많은 애호가들은 오디오 컴포넌트 중 스피커에 많은 관심을 갖는다. 그도 그럴 것이, 집안 인테리어에도 관계할 정도로, 스피커가 차지하는 비중이 막강하기 때문이다. 또 메이커마다, 모델마다 소리의 편차가 심해, 스피커 선정 자체가 상당한 고민과 방황을 유도하기도 한다. 그에 반해 본 기와 같은 소스기는 그냥 사두면 그만이라고 단정하는 편이다. 과연 그럴까?
개인적으로 여러 오디오 애호가들을 방문해보면, 진짜 고수는 따로 있다. 그들은 고가의 스피커나 앰프가 아닌, 소스기에 상당한 투자를 한다. 분리형 DAC를 따로 구매하거나, 전문적인 포노 앰프를 구비하는 등, 소스기에 대한 자세 자체가 다르다. 이 부분을 잘 모르는 애호가 집에 가면, 솔직히 좋은 음을 들은 기억이 없다. 따라서 음질 자체의 업그레이드만 도모한다면, 소스기에 대한 고민을 심각하게 할 필요가 있으며, 본 기는 아주 좋은 대안이라고 본다.
본 기의 기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정통적인 CD 플레이어로서의 기능과 PC를 이용한 기능이다. 전자로 말하면, 요즘 누가 CD를 사냐 반문하겠지만, 그래도 아직 그 효용 가치가 높다. 실제로 아무리 고음질 파일이 많다고 해도, 들을 만한 음원은 결국 돈 내고 CD를 사야 한다. CD를 베이스로 해서 이런저런 옵션을 더하는 것이 마땅한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TR 출력과 진공관 출력을 구분해서, 일종의 선택지를 제시한다는 점이다. 특히 진공관에 투입된 물량이 대단하다. 따로 진공관 출력단을 격벽으로 차단해서, 다른 회로에서 전달될 수 있는 노이즈를 사전에 방지하고 있다. 또 초크 코일을 사용하면서, 특수 탄소피막 열 저항과 골드 그레이드의 커플링 콘덴서를 투입하는 등, 최상의 퀄러티를 구축하고 있다.
한편 여기에 투입된 진공관은 독일 암페렉스의 6922다. 6922 하면 생소하겠지만, 또 다른 이름인 6DJ8이라고 표기하면 고개를 끄덕일 분들이 많을 것같다. 자연스럽고, 뉘앙스가 풍부하면서, 아날로그 느낌이 물씬 나는 내용을 갖고 있다고 보면 좋다.
이어서 PC 쪽은 USB를 통해 구현 가능한 바, 최대 24비트/192kHz까지 지원된다. 이쯤 되면, 어지간한 음성 신호는 상당한 퀄러티로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고급스런 마무리와 체리색 목재 사이드 패널의 도입 등 여러 면에서 믿음직스런 외관은 본 기의 가치를 더욱 높이고 있다.
본 기의 시청을 위해 콘래드 존슨의 ET3SE 프리앰프와 클래식 60 SA 파워 앰프를 동원했고, 스피커는 비엔나 어쿠스틱스의 최신작 리스트를 준비했다. 첫 곡으로 들은 정명훈 지휘,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 중 행진. 과연 음성 정보가 많고, 정위감이나 다이내믹스가 훌륭하다. 본격적인 하이엔드 제품에 거니, 본 기의 잠재력이 일거에 폭발한 느낌이다. 무엇보다 음색 자체가 아날로그적이면서 자연스럽고, 풍부한 뉘앙스도 특필할 만하다.
이어서 안네 소피 무터의 카르멘 판타지. 익히 들어온 곡이지만, 여기서는 각별하다. 우선 바이올린의 두께감이 적절하고, 빠른 패시지에서 전혀 힘들어하는 기색이 없다. 보잉할 때의 힘이나, 지판을 누르는 손가락의 움직임이 정교하게 묘사된다. 힘과 기교 면에서 최고의 컨디션일 때의 무터를 제대로 만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오스카 피터슨 트리오의 ‘You Look Good to Me’. 깊은 베이스 라인과 감각적인 피아노 터치, 착착 감기는 리듬감. 과연 소스기가 탄탄하면, 앰프와 스피커는 쉽게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다. 고음질 파일과 재조명된 LP의 틈바구니 속에서, 여전히 CD는 중요한 음악 소스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판매원 헤르만오디오 (010)4857-4371
가격 177만원 출력 레벨 2V USB 입력 24비트/192kHz 주파수 응답 20Hz-20kHz(±0.5dB) S/N비 92dB 이상 다이내믹 레인지 120dB 이상 채널 분리도 100dB 이상
크기(WHD) 44×10×35cm 무게 10kg
<월간 오디오 2016년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