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월간오디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꽃, 김춘수 -
이렇듯 이름은 사물이나 현상에 붙여서 다른 것과 구분 지어주는 말이다. 우리는 이름을 통해 어떤 존재의 아이덴티티를 파악하곤 한다. 예를 들면, 이름에 해물이 들어간 라면은 그 맛이 어떠하리라고 누구나 짐작할 수 있으며 이는 다른 분야에서도 비슷할 것이다.
오디오에 있어서도 비슷할까? 대개는 그럴 것이다. 브랜드 명칭이야 특정한 제작자 혹은 장소나 악기의 이름에서 가져오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모델명의 경우에는 제작자가 의도한 소리의 특성과 관련한 단어가 주로 선택되기 마련이다. 어떤 하이엔드 오디오의 모델명엔 딸과 아내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런 경우는 예외가 아닐까라고 묻는다면 필자는 소쉬르의 기표와 기의의 관계를 빌려 말해보고 싶다. 결국은 무의미한 기표를 사용하더라도 그 기호와 발음은 특정한 맥락 속에서 개념화되기 때문이다. 강철의 도터(Daughter), 순백의 도터, 혹은 하늘거리는 도터….
헤코의 신형 엘레멘타(Elementa) 300 북셀프 스피커를 입속에서 발음해 보면서 필자는 혀 속에서 맴도는 이 발음만으로도 어떤 봄바람과 같은 설렘을 느꼈다. 영어로는 요소, 성분, 원소의 의미를 지닌 라틴어 엘레멘타는 어의상으론 오소독스한 면을 담고 있으면서 특유의 음악적인 발음으로 끝나고 있다. 아마도 엔지니어링만 강조하는 무심상한 제작자였다면 영어나 독일어의 엘리멘트(Element)라고 하던지, 차라리 엘레멘툼(Elementum)이라고 했을지 모른다.
엘레멘타 300,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다
필자가 아는 한 헤코(Heco)는 최근 2-3년간 가장 부지런한 하이파이 오디오 메이커가 아닐까 싶다. 사실 웬만한 규모의 하이파이 회사에게 기존의 라인업에서 탈피한 완전히 새로운 모델군의 개발은 때론 도박과도 같은 중압감을 준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은 3-4년 주기로 후속 모델을 출시하면서도, 시장의 검증을 거친 기존 라인업의 후속 모델 위주로 제품을 출시하는 추세다.
이런 트렌드에 거슬러, 특히나 시장의 동향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양산형 라우드스피커 제작사가 근 3년간 제법 큼직한 배팅을 시도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그들에게는 다행히도 결과 역시 제법 성공적이었다. 블루투스와 USB DAC를 결합한 액티브 스피커인 아스카다 라인업을 비롯해 일반적으로는 잘 사용되지 않는 11인치 미드·우퍼를 장착한 레트로풍 다이렉트까지 과감한 변화의 시도는 독일은 물론이고, 글로벌 마켓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 내었다. 그리고 뜸들일 사이 없이 곧바로 이번에 소개할 엘레멘타 300 북셀프 스피커를 선보였다. 일반적으로 잘 사용되지 않는 실크 매트 마감에 정통적인 직방형 2웨이 박스형 패시브 스피커.
요즘 하이피델리티 오디오 역시 융합이 추세다. 와이어리스 액티브 스피커로 대변되는 단순함과 간결함이 트렌드가 되는 시대에 굳이 패시브 스피커를 사용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제법 쓸 만한 사운드를 듣기를 원한다면 간편함을 버리고 케이블링의 거추장스러운 매칭과 세팅의 미로를 헤맬 필요가 있다.
엘레멘타 300은 엘레멘타 라인업에 속하는 높이 368mm, 6.5인치 미드·베이스의 미들 사이즈 북셀프 스피커이다. 그리 크지 않지만 울림새(Loudness)는 제법 우렁차다. 큰 사이즈는 부담스럽지만 풍성한 음장감을 원하는 유저라면 꽤 높은 점수를 줄 만큼은 나온다. 28mm 직경의 실크 컴파운드 돔 트위터는 45,000Hz라는 넓은 고역 커버리지를 갖추고 있다.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고음역의 부드러움을 구현하는 데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매끄럽게 떨어지는 롤오프를 통해서, 또 하나는 입력 신호의 소실점까지 남김없이 트랜스듀싱시켜서 소리 끝이 하늘거리도록 만들어 버리는 것. 어느 쪽이 훨씬 더 하이테크라는 점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와이드 레인지이면서 힘 안 들이고 고음역대를 소화한다는 점은 칭찬해줄 본 기의 ‘요소’이다.
그럼에도 전체적으로는 모국인 독일이나 유럽보다는 오히려 북미쪽 성향이라고 말하고 싶다. 즉, 중음이 강조되고 질감 있는 부드러운 음색이라기보다는 스트레이트하고 힘 있게 질러주는 타입이기 때문이다. 단단하면서 묵직함이 느껴지는 저음에 이 시원스러운 고음이 조합되면 아마추어 록커인 필자의 어깨와 몸은 절로 들썩일 수밖에 없다. 클럽 사운드를 선호하는 젊은 리스너로부터, 흥을 좋아하는 열정파의 나이 지긋한 오디오파일까지 누가 들어도 이 스피커는 신나게 내달리게 하는 재주가 있다.
꽤 단단하고 양감 있는 저역과 다이내믹스를 구현하는데, 앰프 밥을 많이 먹지 않는다는 ‘요소’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자질. 100만원대 최고의 스피커라고 해도 300만원대 이상의 앰프를 매칭해야 제 소리가 나온다면 아무리 좋게 말해도 범용적인 스피커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듯.
청음, 지루할 틈이 없는 완급력
끝으로 본 기에 대한 필자의 청음 노트를 요약해보고자 한다. 필자는 결단코 록, 메탈, 팝 마니아이다. 스트레이트한 음색을 선호하는 필자에게 대부분의 스피커는 지루하기 짝이 없다. 웬만하면 시니컬하게 반응하는 필자에게 엘레멘타 300은 오랜만에 붓을 들게 만들었다! 레인보우의 ‘Stargazer’는 코지 파웰의 파워풀한 드럼 인트로를 제대로 표현한다. 갑작스럽게 치고 달려 나가는 드럼 비트를 놓치지 않으면서 스네어, 탐, 킥의 콤비네이션 또한 명확히 구분해 준다. 노래의 백미인 리치 블랙모어의 히스테릭한 기타 솔로 부분에서는 역량이 부족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몽환적인 멜로디와 마이너한 감성을 전달해 주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한마디로 엘레멘타 300 북셀프의 완급력을 엿볼 수 있었다.
경쾌한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Mirrors’의 8분짜리 원곡을 듣는 내내 결코 지루하지 않았다! 스트링과 패드 사운드가 뒤섞인 인트로를 가볍게 지나친다 해도 누구도 뭐라 하지 않을 테지만, 엘레멘타 300은 선명한 해상도로 악기 음색의 감미로움을 명료하게 채색한다. 평소 주의 깊게 듣지 않았던 이 사운드를 위해 작곡가, 프로듀서, 엔지니어가 얼마나 고생했을지 짐작해 볼 수 있다. 트랙이 풍성한 전반부와 달리 후반부에는 보컬에 집중되어 볼륨감이 대폭 줄어들지만 엘레멘타 300은 이 공백을 유려한 배음감으로 살려낸다. 자칫 의미 없는 공백이 여운으로 재탄생하는 순간이다.
수입원 (주)다비앙 (02)703-1591
가격 128만원 구성 2웨이 2스피커 인클로저 베이스 리플렉스형 사용유닛 우퍼 17cm, 트위터 2.8cm 재생주파수대역 32Hz-45kHz 임피던스 4-8Ω 출력음압레벨 90dB/W/m 파워 핸들링 150W(최대) 크기(WHD) 22.6×36.8×32.5cm 무게 7.5kg
<월간 오디오 2017년 5월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