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남
라디오만큼 남자들의 향수를 간질이는 기기가 또 있을까? 젊은 세대가 아닌 나는 지금 라디오라는 단어만 들어도 기분이 좋다. 방송 작가로 살아오면서 80년대까지 왕성했던 라디오 드라마를 엄청나게 집필했던 것은 치워 버린다고 쳐도, 어린 시절의 기억은 상당 부분 라디오와 뿌리가 닿아 있는 것뿐이다. 초등학생 때 학교에 계셨던 선친을 따라 남해안의 작은 해수욕장에 갔을 때 공대 교수 분이 만들어 가져온 라디오를 민박집 마루에서 틀었더니 그 소리를 들으려고 온 마을 사람들이 마당에 모여들었던 기억, 군대 시절 재산 목록 1호였던 파카 주머니의 트랜지스터 라디오, 지금도 빈티지로 비싸게 거래되는 제니스의 대형 라디오에 대한 선망 등 그 시절의 음악은 곧 라디오였다. 밤 깊어 어두운 천변 길을 혼자 걸어올 때 희미한 불빛의 어느 전파상 안에서 들려 나오던 코니 프란시스의 노래 <어라운드 더 월드>. 냇물 흘러가는 소리와 함께 멈춰 서 들었던 그 노래의 여운은 지금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베를린 필의 연주를 듣는다 해도 그 시절의 감동보다는 못할 것이다.
나는 라디오 한 대로, 세상에 대한 동경과 꿈을 함께 키웠던 세대였던 셈이다. 지금 이어폰을 꽂고 사는 세대는 라디오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갖고 있을까 궁금해지면서 나는 그들에게도 라디오를 권한다. 라디오를 들으면 여러 가지의 장점이 있다. 두뇌 개발에도 도움이 되고,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된다. 무슨 소리인가? 이것은 이미 과학적 분석이 나와 있는 것이지만 소개는 별로 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두뇌는 시각과 청각이 동시에 제공되었을 때와 청각만 제공되었을 때의 활성이 아주 다르다. TV 드라마만 보고 있으면 무기력해지고 두뇌의 활성화는 기준치 아래가 된다. 라디오만을 들려주었을 때는 그 수치가 상당히 다르다. 두뇌가 대사의 배경을 추측하면서 새로운 상상력을 연상시키기 위해 부단히 움직이는데, 거의 2배 이상의 활성화를 보여 준다. 라디오만을 듣고 사는 경우와 TV만을 보고 사는 경우 치매 발생률이 2배 이상이라는 주장도 있다. 라디오의 큰 장점은 뉴스도 듣고 음악도 듣고 DJ가 나오는 쇼도 들으면서 보통 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신문도 보고 책도 읽는다. 운전도 한다. TV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TV만 지켜보고 있으면 상상력이 퇴보한다. 상상력은 곧 창조력이다. 인류의 창조력이 점점 퇴보하고 심지어 위대한 작가나 작곡가의 맥이 끊어져 버린 것도 TV 때문이라는 주장도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가끔씩 바람이 불어 라디오를 듣기 시작하면 오디오에 대한 관심도 줄어든다. 스위치만 누르면 하루 종일 명곡, 명연주, 명창들이 이어지는데 뭐하려 귀찮게 오디오에 음반을 거느냐 하는 기분이 들어 당연히 경제적으로 큰 이득이 되는 것이다. 라디오를 한 대씩 장만하자. 머리맡에 그걸 놔두자. TV를 꺼 버리자. 확실히 새로운 일상이 열릴 것이다.
시청기는 가격도 싸고 만듦새며 모양도 그럴싸하다. 방 안 아무 곳에나 놔둬도 잘 어울린다. 이 회사는 빈티지 스타일을 모디파이해서 GPO 레트로라는 이름으로 여러 제품을 내놓고 있는데, 이 라디오를 비롯해서 턴테이블, 블루투스 스피커까지 있고, 이 회사의 복고풍 전화기는 이미 여러 군데서 본 적이 있다.
이런 라디오의 소리를 들으면서 저역이 어떻고 고역이 어떻다는 멍청한 평가를 한다는 것은 우습다. 그냥 두툼하고 들을 만하다. 편안한 소릿결이라 하루 종일 틀어 놔도 귀가 쨍쨍거릴 일 없는 수준이다. 전파 감도도 상당히 좋다. 실내 안테나만으로도 소리가 잘 잡힌다. 귀에 하루 종일 이어폰을 집어넣고 있는 세대들이 이어폰을 뽑아 버리고 라디오 곁으로라도 돌아온다면 심성도 좀더 선해지고 깊어질 터인데. 좀더 넓어도 지고….
수입원 사운드솔루션 (02)2168-4525
Winchester 가격 16만9천원 튜너 FM/MW 크기(WHD) 19.5×13×16cm 무게 2kg
Rydell 가격 8만2천원 튜너 FM/MW/LW/SW 배터리 지원 크기(WHD) 31×27×7cm 무게 1.5kg
<월간 오디오 2017년 2월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