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종학(Johnny Lee)
오디오 역사를 보면, 하나의 큰 획을 그은 제품들이 여럿 있음을 알게 된다. 그중, 영한사전만한 사이즈로, 저역은 물로 씻은 듯이 사라져버린, 어찌 보면 만들다 만 듯한 스피커 하나가 시대를 풍미한 적이 있다. 바로 BBC 납품이라는 인증을 갖고 세상을 놀라게 한 LS3/5a라는 모델이다. 사실 이것은 방송 검침용으로 만들어져서, 주로 성우의 목소리 재생에 주력하고 있다. 따라서 저역이 불필요했던 것도 사실. 그러나 중·고역의 중독성 넘치는 소리는 이내 애호가들의 입맛을 자극했고, 따라서 오랜 기간 숱한 만족과 방황을 동시에 선사한 마력의 스피커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
그 최초의 모델은 KEF에서 만든 것으로, 자사가 개발한 B110 미드·베이스에 T27 트위터 조합이다. 나중에 여러 회사들이 이 유닛을 사서, 자기 나름의 보이싱과 박싱으로 여러 방계 모델을 만든 바, 지금도 중고 시장에서 활발하게 거래되는 편이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가격이 오르는 기현상을 보이고도 있다.
그러나 1975년에 나온 이 모델을, KEF는 동사 창업 50주년을 기념해 새천년에 맞는 콘셉트로 새로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LS50이다. 당연히 전작의 장점을 계승하면서, 특히 부족한 베이스를 적절히 커버했다는 면에서 큰 화제를 몰고 온 바 있다. 이제 이 LS50이 또 한 차례 진화를 거듭했으니, 바로 이번에 만난 LS50 와이어리스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히 와이어리스 버전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야말로 최신 기술이 듬뿍 담긴, LS3/5a부터 소박하게 음악을 즐겨온 이들을 위한 일종의 선물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
여기서 한 가지 유념해야 할 것은, 최근 스피커 관련 시장의 변화다. 아무튼 다운로드 내지는 스트리밍 뮤직이 대세가 되고, 심지어 휴대폰에 담긴 음원을 사용하는 세상이 왔으므로, 메이커 측에서 전통적인 패시브 스피커만 고집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따라서 과감하게 스피커에 앰프를 담고, 필요하면 DAC도 담았다. 거기에 와이파이와 블루투스 기능까지 담는 지경에 온 것이다. 그러므로 본 기는 그냥 스피커라고 부르기엔 뭣한, 말하자면 일종의 오디오 세트라 해도 좋다. 실제로 사용한다고 하면 PC나 NAS와 같은 디바이스나 아날로그 소스기 정도만 필요하다. 정말로 오디오를 편하게 구사하는 시대에 온 것이다.
참고로 본 기는 하나의 아날로그 입력단과 더불어 여러 디지털 입력단을 제공한다. USB 타입 B의 경우, 24비트/192kHz 사양이 가능하며, 옵티컬의 경우, 24비트/96kHz까지 지원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와이파이와 블루투스에 강점이 있으니 사용상 매우 편리성이 높은 셈이다.
본 기의 전면 중앙에는 큼직한 드라이버 한 개가 장착되어 있다. 자세히 보면 동사가 자랑하는 Uni-Q 드라이버가 새롭게 개량되어 부착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130mm 구경의 미드·베이스 안쪽에 1인치 사양의 돔이 박혀 있는 것이다. 참고로 미드·베이스는 마그네슘/알루미늄 알로이 계열을 썼고, 트위터는 알루미늄 소재를 쓰고 있다. 진동판 주변을 감싸는 에지는, 동사가 Z-Flex라고 부르는 특수한 물질이 쓰이고 있다. 진동판의 움직임을 최대한 자유롭게 보장하면서 동시에 불필요한 진동을 억제하는 일을 담당한다. 한편 트위터엔 30W, 미드·베이스엔 200W의 파워 앰프를 달아, 액티브 스피커의 장점을 최대한 수용하고 있다.
사실 본 기에 투입한 여러 기술을 설명하자면, 책 한 권 분량은 족히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대략 LS3/5a의 유산으로 만들어진 제품이라고 보면, 본 기의 족보나 퀄러티에 대한 믿음이 자연스럽게 생기지 않을까 싶다. 본 기의 시청을 위해, 필자의 스마트폰에 담긴 음원을 와이파이로 이용해서 써봤다.
첫 곡은 보자르 트리오의 드보르작 피아노 소나타 둠키 중 3악장. 인트로에 나오는 피아노는 간결하면서 촉촉하다. 그 위로 길게 긋는 바이올린의 질감이 좋다. 첼로가 가세할 때, 저역의 양감이 이 정도면 훌륭하다. 확실히 액티브 스피커의 장점이랄까? 드라이버가 제대로 구동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또 해상도나 마이크로 다이내믹스라는 점에서, 꽤 인상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다.
이어서 샤데이의 ‘No Ordinary Love’. 일단 전면을 감싸는 강력한 베이스 라인에 깜짝 놀랐다. 확실히 중·저역 유닛이 제대로 반응하고 있다. 또 블랙 커피 느낌의 보컬은, 그 특유의 개성이 멋지게 살아있어서, 과연 샤데이의 노래를 듣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배후에 깔리는 아련한 신디사이저 음향은 묘한 신비감도 전달한다. 킥 드럼의 강력한 펀치력까지 고려하면, ‘와우, 심봤다!’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다.
마지막으로 아메리카의 ‘Ventura Highway’. 신선한 어쿠스틱 기타의 음향이 귀를 즐겁게 하는 가운데, 보컬의 생동감 넘치는 매력과 리듬 섹션의 멋진 질주가 잘 어우러지고 있다. 눈을 감으면 L.A. 외곽 벤추라 하이웨이를 컨버터블 승용차로 달리는 듯하다. 듣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기분이 좋아진다. 확실히 저 멀리 BBC 납품 시절부터 쌓아올린 내공이 본 기에 듬뿍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PC 파이든, 하이파이든, 여러모로 요긴하게 쓸 수 있는 제품이라 하겠다.
수입원 소비코AV (02)525-0704 가격 300만원 인클로저 베이스 리플렉스형 사용유닛 Uni-Q(13cm·2.5cm) 실효 츌력 200W(LF), 30W(HF) 재생주파수대역 43Hz-47kHz(Standard, -6dB) 디지털 입력 Optical×1, USB B×1 아날로그 입력 RCA×1 아날로그 출력 서브우퍼×1 출력음압레벨 106dB 블루투스 지원(Ver4.0, apt-X) 네트워크 지원 전용 어플리케이션 지원 크기(WHD) 20×30×30.8cm 무게 10kg
<월간 오디오 2016년 9월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