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승우
배경의 정숙성 역시 각종 노이즈 및 진동의 완벽한 차단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인데, 미세한 정보와 섬세한 표현을 위해서는 반드시 확보되어야 하는 음향적 특징이다. 입체적 사운드 스테이지와 투명한 배경 속에서 음반에 담긴 정보들이 섬세하고 정확하게 재현될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완벽에 근접한 아날로그 사운드의 재생이 아닐까?
실로 오랜만의 제품 리뷰이다. 사실 개인적인 사정으로 거의 리뷰 일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크게 관심 있는 제품에 대한 리뷰로 한정해서 진행하고 있는데, 이렇게나마 가끔씩 독자 분들과 만날 수 있는 시간을 즐겁게 생각하며 금번 리뷰를 진행하려고 한다. 이번 리뷰 제품은 현재 필자가 사용 중인 것으로, 자택 시스템에서의 데모 시청 후 바로 구입을 결정한 제품이라는 것을 미리 알려둔다.
리뷰 제품은 아날로그 시스템 중 톤암이다. 사실 톤암의 정확한 리뷰는 평소 자주 듣던 레퍼런스 아날로그 제품에 직접 장착하지 않고는 평가가 어려운 특성을 갖고 있다. 실제로 저명한 해외의 오디오 잡지 리뷰를 보더라도 리뷰어들의 시스템에 직접 장착해서 듣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금번 리뷰 역시 필자가 사용 중인 턴테이블에 직접 장착하여, 정교한 세팅 후 시청했는데, 정확하고 객관적인 리뷰의 조건은 완벽히 갖춘 셈이다.
이웃나라 일본을 보면 오디오 취미를 가진 필자의 입장에서 항상 부러운 생각이 든다. 상대적으로 침체된 국내의 음반 및 오디오 시장에 비해, 아직도 일본은 두터운 고객층을 보유하고 있고, 수많은 관련 업체들이 신제품들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아날로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데, 전문성을 갖춘 업체들의 제품들이 지금도 활발히 개발·판매되고 있다는 것은 분명 놀랄 만한 일이다. 이번 리뷰 제품인 그란츠(Glanz)라는 브랜드 역시 국내에서는 생소한 업체인데, 일본의 아날로그 톤암 전문 회사로 명성 높은 곳이다. 필자는 평소 하이엔드 제품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 일본 잡지나 해외 리뷰 등을 통해 그란츠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당시 국내 수입원이 없어 필자가 직접 사용하게 될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
그란츠는 하마다 씨가 창업한 수제 톤암 전문 메이커인데, 이번에는 이들 제품 중 최상위 2번째 제품인 MH-124S라는 12인치 롱암을 리뷰하도록 한다. 외형적으로 약간은 빈티지 스타일의 금속제 톤암이지만, 투입된 물량 및 내용을 살펴보면 최첨단 하이엔드 톤암의 면모를 자랑한다. 여러 기술적 내용 중 필자가 가장 주목했던 부분은 바로 재질이다. 이들이 사용한 스테인리스 스틸은 원가에 대한 부담과 정밀 가공의 용이성 측면에서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의 톤암 업체들이 쉽게 채용하지 않는 재질이다. 특히 본 톤암에 채용된 스테인리스 스틸은 동일 재질 중 강도가 가장 강한 계열인데, 이는 정밀 가공에 대한 자신감이 없다면 결코 쉽게 채용할 수 없는 재질로 판단된다.
다음으로 필자가 주목한 부분은 이것이다. 메인 축으로 3중 구조에 의한 설계, 외관만으로도 기존 톤암과 확연히 구분되는 중량급 만듦새로 진동의 원천 차단, 그리고 트레이싱의 정확도를 높인 구조적 특징 등이다. 과거의 명기 중 FR이라는 회사의 톤암들이 있다. FR은 스테인리스 스틸 계열의 재질을 전면 채용했던 유일한 제품인데, 필자가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모든 구성 부품을 동 재질로 사용한 톤암은 FR 이후 본 제품이 최초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FR은 아직도 애용자가 많을 정도로 최고의 톤암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데, 이는 비록 빈티지 톤암이지만 스테인리스 스틸 가공이라는 당시로는 파격적 시도가 오늘날까지 최고의 제품으로 평가 받게 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물론 구조적인 부분과 디자인적인 차별성이 있지만 본 제품은 FR의 향기가 나는 듯한 외관과 구조로 독특한 매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시대에 따른 재질의 발전과 가공 정밀도의 획기적인 향상은 FR과 그란츠 톤암의 직접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업그레이드되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원가나 제작 용이성의 고려 없이, 일체의 타협 없이 제작된 것이 바로 본 리뷰 제품인 MH-124S라는 판단이다.
톤암은 카트리지를 장착하고 소리 골을 트레이싱하며 카트리지에서 읽은 신호를 전송하는 역할을 갖는다. 즉, 정확한 트레이싱·진동 방지·퓨어한 신호 전송, 바로 이 3가지의 단순한 요소가 톤암의 퀄러티를 결정하는 핵심이다. 하지만 이상적으로 완벽한 트레이싱 능력을 갖는 톤암은 리니어 트래킹 이외에는 불가능하며, 진동 제어 역시 1kg 남짓한 톤암의 전체 무게로 완벽히 차단하기에는 불가능하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본 제품은 강성과 진동 차단 능력이 가장 뛰어난 재질 중 하나인 스테인리스 스틸을 채용했고, 수작업을 통한 정교한 제작을 중심에 두었고, 메인 축 부분의 압도적 만듦새를 통해 트레이싱 능력을 향상시켰다. 그리고 최고급 은선을 투입하기까지 했다. 결국 앞서 이야기한 톤암의 성능을 결정짓는 3가지 요소에 완벽하게 근접한 만듦새를 갖추고 있으며, 톤암의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을 정확히 이해한 제작자가 설계한 아주 심플하며 기본에 충실한 구조라는 것이다.
시청은 필자의 메인 아날로그 시스템인 테크다스 에어 포스 원 턴테이블에 미야지마 랩스의 마다케 카트리지, 컨스틸레이션 오디오의 페르세우스 포노 앰프 조합을 통해 이루어졌다. 지난 한 달 동안의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그란츠 MH-124S의 사운드적 특징들을 정리하도록 하겠다.
하이엔드 아날로그 시스템의 퀄러티는 ‘사운드 스테이지의 형성’과 ‘배경의 정숙성’, 이 두 가지가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매우 중요한 음향적 특징이다. 최근 리이슈를 통해 재탄생되고 있는 고음질 LP와 디지털 LP, 그리고 아날로그 전성 시대의 초반 등 질 좋은 LP들의 경우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많은 정보량이 음반에 담겨 있다. 초 저역부터 초 고역까지 수록된 넓은 주파수 대역의 정보량을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다면, 당연히 이는 녹음 당시 환경과 정확히 일치하는 입체적인 사운드 스테이지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런 사운드 스테이지 확보 없이 하이엔드 아날로그 사운드 재생은 불가능하다.
배경의 정숙성 역시 각종 노이즈 및 진동의 완벽한 차단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인데, 미세한 정보와 섬세한 표현을 위해서는 반드시 확보되어야 하는 음향적 특징이다. 입체적 사운드 스테이지와 투명한 배경 속에서 음반에 담긴 정보들이 섬세하고 정확하게 재현될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완벽에 근접한 아날로그 사운드의 재생이 아닐까?
이외에도 여러 사운드적 특징들이 존재하지만, 필자가 설명한 음향적 특징의 완벽한 재현은 하이엔드 아날로그 사운드의 필수이자 기본으로 판단된다. 이런 측면에서 본 리뷰 제품은 소재의 우수성, 정밀 가공, 완벽한 설계의 이점들이 그대로 재현되는 하이엔드 톤암으로서의 사운드적 특징들을 보여준다. 특히 배경의 정숙성은 필자가 경험해 보지 못한 수준으로 압도적이라 할 수 있으며, 싱싱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맑고 투명한 사운드가 압권이다. 또한 저역의 정확성과 표현력 역시 기존의 하이엔드 톤암을 가볍게 능가하는 수준으로 인상적이었다.
톤암은 회로의 설계나 부품의 선별 등이 요구되는 CD 플레이어 혹은 앰프 등의 오디오 제품들과 달리 기구적 설계와 이를 뒷받침하는 정교한 가공과 제작이 사운드적 완성도 측면에서 가장 중요하다. 또한 전 공정이 하마다 씨라는 장인에 의해 수작업으로 진행되는데, 이런 철저함이 사운드적 특징에도 완벽하게 반영되는 것이다.
필자가 그동안 사용하던 하이엔드 톤암들 대비 한 차원 높은 사운드적 특징을 갖추고 있었고, 이런 음향의 우월성 때문에 인지도 관계없이 이 고가의 톤암을 구입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리뷰를 마무리 지으려 한다.
수입원 블루텍 (070)4214-5287
가격 950만원(커스텀 실버 라인)
<월간 오디오 2017년 8월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