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코난
일곱 시가 한참 넘은 퇴근길에 단골 레코드숍은 항상 분주했다. 저마다 한 장, 두 장씩 손에 비닐백을 들고 레코드숍 문을 나섰다. 출근길에 눈이 내렸고, 낮에도 추위는 잦아들지 않아 저녁이 되자 인도는 마치 단단한 강철처럼 굳었다. 미끄러웠다. 장갑을 끼고 있었지만 자꾸만 손은 외투 주머니를 비집고 들어갔다. 지난 12월 서점에서 음악 잡지에 실렸던 특집 기사에서 다루었던 가수, 최근 안타깝게 숨을 거둔 그의 유작이 한 손에 들려 있었다. 한 달을 기다려 드디어 오늘 저녁 손에 넣은 CD를 집까지 고이 들고 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빙판 위에서 균형을 잡았다. 송년 특집호 잡지를 펴내 들고 읽으며 유작을 들었다. 상투적인 슬픔이나 비애보다는 음악에 대한 경외와 감동으로 마치 그가 다시 살아온 듯 행복했다.
CD가 컴퓨터 안으로 들어왔다. 잡지는 거의 모두 온라인이라는 거대한 회오리에 휘말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온라인에서 신보를 확인하려 했지만 모두 아이돌 음악 일색이다. 영문 알파벳을 네이버에서 확인해 정확히 검색해보니 온라인 데이터베이스 어딘가에서 툭 튀어나온 그때 그 뮤지션의 유작. 앨범에 대한 당시의 기사나 소개 자료는 전혀 없었고, MP3 열두 곡만 음식점 메뉴판처럼 건조하게 나열되어 있다. 음악 듣고 싶은 생각이 사그라졌다. 일목요연하면서도 가볍고 텅 빈 듯한 느낌이다. 직접 손수 주문해 만들었던 CD 장을 한참 뒤지다 구석에서 빛바랜 케이스의 CD를 발견했다.
지난번 칵테일 X40을 리뷰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CD를 리핑해 내부 SSD에 저장한 후 음악을 듣는 일이었다. PC에서 EAC 프로그램을 사용해 리핑하기도 하지만 하나의 독립된 기기에서 리핑을 하고 저장하는 일이 꽤 재미있었다. 마치 라디오 프로그램을 듣다가 DJ의 입에서 좋아하는 가수의 특정 곡 발음이 새어 나오기 무섭게 의자에서 튀어 올라 카세트 데크의 녹음 버튼을 누르던 고등학교 때의 일이 생각났다. CD의 음원은 FLAC으로 저장되었고 Freedb 프로그램이 메타데이터를 불러와 곡명은 물론 커버 이미지까지 디스플레이 창에 띄워주었다. 똑같은 디지털 도메인 범주에 있지만 PC에서 진행하는 프로세스와는 다른 색다른 경험이었다. 음악이 듣고 싶어졌다.
X40에 이어 두 번째로 접하는 칵테일 X 시리즈 X35는 더 손쉽게 음악을 들을 수 있게 해주었다. X40 등 상위 라인업 제품에서 갖추고 있는 여러 디지털 음원 재생 기능과 CD 리핑 기능에 더해 인티앰프로서의 기능까지 겸하고 있기 때문이다. X35에는 총 두 개의 D클래스 증폭 모듈을 탑재했다. 출력은 채널당 100W로 구동력 측면에서 구형 X30에 비해 더욱 향상된 모습을 보인다. 후면엔 좌·우 각 한 조의 스피커를 연결할 수 있는 바인딩포스트가 마련되어 있다.
디지털 섹션을 살펴보면 칵테일 오디오의 디지털 기술이 모두 집약되어 있다. 일단 X35의 심장엔 듀얼 코어 ARM Cortex A9 프로세서가 투입되어 전반적인 작동 및 소프트웨어 엔진으로서 기능한다. D/A 컨버팅 쪽으로 넘어가면 ESS 사브레 시리즈 중 레퍼런스급 칩셋인 ES9018K2M 칩셋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클록의 경우 TCXO 고정밀 오실레이터를 사용해 디지털 도메인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지터를 최소화하고 있다. 전원부의 경우엔 독자적인 절연 기술을 동원하고 토로이달 트랜스포머를 사용해 특별히 신경 쓴 인상이 역력하다.
X35는 현존하는 거의 모든 포맷과 비트·샘플링레이트에 대응한다. MP3, FLAC, WAV, ALAC, AIFF 등 다양한 손실·무손실 음원에 대응한다. 더불어 DSD의 경우 DSD256까지 처리 가능하며 DXD까지 대응하고 있어 재생하지 못하는 포맷이 거의 없다. 흥미로운 것은 디지털 포맷뿐만 아니라 아날로그 포맷에도 대응하고 있는 부분이다. X35엔 포노 앰프가 내장되어 있어 별도의 포노 앰프 없이도 턴테이블을 연결해 LP를 즐길 수 있다. 뿐만 아니라 A/D 컨버팅을 거쳐 192kHz까지 고해상도 음원 파일로 녹음·편집·저장할 수 있다. CD를 리핑하거나 LP를 녹음하는 일은 편리함이 오히려 감성의 결여로 이어질 수 있는 디지털 파일 플레이 과정에 신선한 경험을 제공한다.
디지털 인터페이스는 굉장히 광범위하다. 한마디로 현재 가용할 수 있는 모든 디지털 채널과 연계가 가능하다. 이더넷 전송을 활용하면 랜 케이블을 꽂고 간단한 세팅 과정을 통해 NAS 등에 저장된 음원을 재생할 수 있다. USB 메모리 재생을 지원하며 후면의 USB 호스트 단자에 외장하드를 연결해 내부 음원을 재생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X35는 후면에 HDD나 SSD를 장착한 후 연결된 스토리지에 저장된 음원을 복사·저장할 수 있다. 내부에 저장한 음원들은 칵테일 오디오의 ‘뮤직 데이터베이스’ 기능을 십분 활용해 일목요연하게 좋아하는 음악을 정리, 뮤직 서버처럼 즐길 수 있다.
최근 보편적인 대중의 음악 소비 플랫폼은 일제히 스트리밍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중 회원 1억명을 돌파한 스포티파이, 고해상도 음원 스트리밍으로 오디오파일들이 선호하는 타이달, 이외에 큐브즈, 디저 등에 모두 대응하고 있다. 더불어 메리디안 Sooloos 소프트웨어 팀이 독립해 만든 룬 랩스에도 대응한다는 희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더불어 애플 에어플레이 같은 기능을 활용해 스마트폰에 저장된 음원도 손쉽게 즐길 수 있다. 이외에도 X35는 DAB+/FM 튜너를 내장하고 있으며, 에어러블을 통해 전 세계 수많은 음악 프로그램을 가만히 앉아서 24시간 청취할 수 있다. 특히 고음질에 대응하는 린 클래시컬, 린 재즈 등을 들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유저 인터페이스는 크게 향상되었다. 일단 무려 7인치로 확장된 전면 디스플레이에는 TFT LCD 스크린으로 아몰레드 정도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기존 모델보다 더 나은 시인성을 확보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리모트 컨트롤이다. 칵테일 오디오 제품들이 모두 그렇듯 너무 멀리 떨어져서 조작하지 않는다면 리모트 앱 없이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커다란 리모컨으로 조작이 가능하다. 곡 선택, 재생, 메뉴 등 거의 모든 조정을 과거 CD 플레이어처럼 조작할 수 있다. 물론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리모트 앱 ‘Novatron Music X’ 또한 기존 버전에 비해 상당 부분 업그레이드된 상황이다.
X35를 연결하고 며칠 번인 과정을 거치면 소리가 조금씩 유연해진다. 그러나 D클래스 증폭 모듈을 사용하므로 기음이 또렷하고 단정한 소리는 변함이 없다. 글렌 굴드의 1981년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들어보면 또랑또랑한 피아노 타건이 방 안의 조도를 높인 듯 상큼하게 울려 퍼진다. KEF LS50과 함께 칵테일 X35 단 세 개의 물체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고 있으면 거추장스러운 느낌이 전혀 없다. 오디오에 대한 집착은 멀리 달아난다. 간결함이 주는 마음의 평화, 오랜만에 느껴보는 편안함이다.
약 1년 전 듣다가 NAS 어딘가에 저장해놓은 크리스티나 브랑코의 녹음을 재생해보면 청초하고 맑은 그녀의 목소리가 화석처럼 그대로다. 다분히 맑고 투명하며 선명한 음색으로 착색 없이 매우 반듯한 밸런스 덕분에 짜증날 만큼 습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산뜻한 기분이 든다. 피치는 약간 높고 고역 쪽으로 형성되어 무척 상쾌하고 화사한 음색을 만들어낸다.
아델이나 다프트 펑크, 에드 시런 등 비교적 최근 녹음들에서 보여주는 리듬감은 나른한 오후의 잠을 화들짝 깨운다. D클래스라면 엄청난 에너지로 딱딱한 리듬감에 공격적으로 나설 것 같지만 비교적 부드러운 음색이다. 그러나 재빠른 리듬감과 척척 톱니바퀴처럼 맞아 돌아가는 타이밍 & 페이스는 역시 현대적인 설계로 만든 세련된 최신 제품임을 상기시켜준다.
미움받을 용기가 있는 자는 사랑받을 자격도 충분하다. 최소한의 간결한 신호 전송 구간과 심플한 기능을 추구하는 소수 오디오파일에게 X35의 다양한 기능은 억울하게도 미움의 이유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 몇 백 배 많은 우리 주변의 음악 애호가들에게 X35의 다양한 기능과 편리한 인터페이스, 고해상도 음질은 충분히 사랑받을 만하다. 간결한 기능과 도식화된 인터페이스, 케이블을 몇 개 바꾸어보는 것 외엔 즐길 만한 것이 없는 건조한 디지털 기기. 이것들이 결국의 디지털의 단점으로 부각되는 요즘이다. X35는 재생과 녹음, 리핑 등 다채로운 기능과 체험 과정을 통해 디지털의 속성이 만들어낸 한계의 장벽을 걷어내고 있다. 게다가 군더더기 없고 깔끔하며 때로는 향긋한 사운드는 잊고 있던 음악 감상의 즐거움을 새삼 일깨워주었다.
문의 헤르만오디오 (010)4857-4371 가격 245만원 실효 출력 100W(8Ω) 디스플레이 7인치 TFT LCD(1024×600) CPU 듀얼 코어 ARM Cortex A9 메인 메모리 DDR-1066 1기가 EMMC 8기가 디지털 입력 AES/EBU×1(24비트/192kHz), Coaxial×1(24비트/192kHz), Optical×1(24비트/192kHz), USB A×3 디지털 출력 AES/EBU×1(24비트/192kHz), Coaxial×1(24비트/192kHz), Optical×1(24비트/192kHz), USB×1, HDMI×1 아날로그 입력 RCA×1, Aux×1(3.5mm), Phono(MM) 헤드폰 출력 지원 네트워크 지원 전용 어플리케이션 지원 CD 재생 지원 지원 DSD 64/128/256, DXD 24비트/352.8kHz, HD WAV(24비트/192kHz), FLAC(24비트/192kHz) 등 온라인 뮤직 서비스 Tidal, Deezer, Qobuz, Spotify 튜너 FM, DAB+ 크기(WHD) 44.1×11.1×33cm
<월간 오디오 2017년 8월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