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편
마치 전시장 포디움에 살포시 올려놓은 현대미술의 오브제 같다. 매끄럽게 마감된 커다란 청동 형상이 묵묵히 관람객을 관찰하고 있다. 그러나 앰프를 켜는 순간, 이 오브제에서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청아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순식간에 콘서트홀 혹은 스튜디오로 바뀐 전시장! 포디움도, 오브제도 어느새 다 사라졌다. J&A 어쿠스틱스(J&A Acoustics)의 3웨이 플로어스탠딩 스피커 에어로 700의 얘기다.
J&A 어쿠스틱스는 모토로라 미국 본사에서 스마트폰 관련 제품 개발 담당 부사장을 역임한 안민구 대표가 올 초 설립한 스피커 전문 제작사. 사명 J&A는 공동 설립자인 장수홍 서울대 미대 명예교수와 안 대표의 이니셜에서 따왔다. J&A 어쿠스틱스는 세계 최초로 청동으로 둥근 알 모양의 인클로저를 제작, 화제를 모은 2웨이 모델 에어로 500에 이어, 10인치짜리 서브우퍼를 별도 인클로저에 장착한 에어로 700을 선보였다.
수많은 재료 중에서 청동을 선택한 것은 청동이 강도가 높은 데다 구리 합금 중에서 녹이 잘 생기지 않는 특성이 있기 때문.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것으로 유명한 국보 제29호 성덕대왕 신종(에밀레종)이 바로 청동으로 만들어졌다. 알루미늄은 청동에 비해 비중이 3분의 1밖에 안 되어 진동을 잡아주기 힘들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어쨌든 J&A 어쿠스틱스는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청동을 녹여 주물 작업을 한 후 표면 절삭 작업을 거쳐 현재의 고품질 청동 인클로저를 탄생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에어로 700은 전작인 에어로 500과 마찬가지로 중·고역대 유닛에 독일 아큐톤의 1인치 세라믹 트위터와 6.5인치 세라믹 미드레인지 드라이버를 채택하고, 미드레인지 유닛을 청동 인클로저로 감쌌다. 에어로(Aero : 항공의, 항공학의)라는 모델명이 뜻하는 그대로 날렵한 유선형 스타일의 인클로저는 최대 직경이 27cm인데, 뒤로 갈수록 얇아져 끝이 뾰족하게 마무리됐다. 인테리어와 매칭까지 고려한 이 디자인이 볼수록 멋지다.
제작사에 따르면 아큐톤 유닛을 쓴 이유는 여러 콘 재질 중 해상도가 가장 높고 섬세했기 때문. 안 대표는 ‘스마트폰을 개발했던 사람으로서 디지털적이고 공학적인 마인드에서 접근해 봐도 아큐톤 유닛은 매력적이었다. 가장 신경을 쓴 것은 아큐톤 유닛의 차가운 이미지와 물성을 극복하는 일이었다. 인클로저를 에어로 다이내믹 형태로 만들고 크로스오버 튜닝을 거치면서 좀더 인간적이고 온기가 감도는 소리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에어로 700은 에어로 500이 청동 인클로저 후면 하단에 베이스 리플렉스 포트를 마련한 것과는 달리 완전 밀폐형으로 설계했다. 물론 좀더 단단하고 응답성이 정교한 중·저역대를 위해서다. 또한 촉수처럼 솟아 있었던 아큐톤의 세라믹 트위터가 자작 합판 재질의 하단 인클로저에 서브우퍼와 함께 수납된 점도 눈길을 끈다. 서브우퍼는 덴마크 스캔스픽의 10인치 유닛이며, 인클로저 후면의 베이스 리플렉스 포트를 통해 저역이 30Hz까지 내려간다(고역은 30kHz까지). 참고로 에어로 500은 45Hz가 저역 하한선이었다. 감도는 88dB, 무게는 80kg, 임피던스는 6-8Ω, 크로스오버는 60Hz와 2.5kHz에서 이뤄진다.
안민구 대표에 따르면 에어로 700의 중·저역은 모두 청동 인클로저에서 담당하고 초 저역대만 밑의 서브우퍼가 맡는다. 이를 위해 서브우퍼가 커버하는 대역대는 3차 오더로 매우 가파르게 깎았다. 서브우퍼를 정면이 아니라 안쪽 측면에 위치시킨 것은 초 저역대가 무지향성인데다, 앞으로 올 경우 인클로저 폭이 너무 넓어지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네트워크 부품 및 바인딩 포스트는 에어로 500과 마찬가지로 모두 독일 문도르프 제품들을 아낌없이 썼다.
시청은 오렌더의 DAC 내장 네트워크 플레이어 겸 뮤직서버 A10과 올닉의 진공관 인티앰프 T-2000 25th 애니버서리를 동원했다. 앰프는 KT150 진공관을 채널당 2개씩 푸시풀로 구동시켜 100W를 낸다. 안드리스 넬슨스 지휘,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연주의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 4악장에서는 드넓은 사운드 스테이지와 각 악기들의 이미지가 잘 펼쳐진다. 음들의 윤곽선이 분명하고, 소릿결이 깨끗하고 투명한 재생음이다. 서브우퍼에서는 순간순간 필요할 때마다 저음을 기분 좋게 터뜨려준다. 에너지감이 확실히 에어로 500보다 높다. 피아니시모에서의 디테일한 표현력도 역시 한두 체급 위다.
익스플로레이션 앙상블이 연주한 로시니의 눈물 변주곡은 그야말로 하이엔드 스피커의 철두철미한 재생음의 세계가 잘 펼쳐졌다. 피아노의 현과 통 울림, 배음과 잔향이 풍성하게 느껴지다가, 느닷없이 앞으로 진군해오는 음들의 쏜살같은 습격이 아찔하다. 아큐톤 유닛의 장점을 한껏 끌어올린 덕분인지 하늘거리며 피어오르는 여린 음들의 쾌감이 좋다. 첼로의 저역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마구마구 내려가는 대목에서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러면서도 물렁한 구석은 전혀 없다.
보컬곡으로 고른 파이스트의 ‘How Come You Never Go There’는 만화경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보컬과 악기들이 잘게 쪼개졌고, 보컬의 발음과 발성의 메커니즘이 마치 현미경을 들이댄 것처럼 잘 관찰됐다. 리즈 라이트의 ‘A Taste Of Honey’에서는 기타가 손에 잡힐 듯 나타나 소름까지 돋았다. 깊고 진한 베이스 울림이 단단한 음악의 토대를 만들어준 덕에 중·고역대 음들이 즐겁게 뛰어놀고 있다. 듀크 엘링턴의 재즈곡 ‘Blues In Blueprint’은 악기들을 무대에 골고루 뿌려놓은 가운데 트럼펫 음이 어떠한 이음매나 껄끄러움도 없이 편안하게 흘러나온다.
에어로 700을 원 없이 들었다. 아큐톤 유닛의 깨끗한 음들이 밀폐형 청동 인클로저를 만나니 그야말로 날개를 달았다. 한 톨의 먼지도 없이 음들이 그냥 술술 터져 나왔다. 여기에 꼭 필요할 때 세게 한 방씩 터뜨려주는 10인치 서브우퍼의 대견함! 이 스피커로 들은 안네 소피 폰 오터의 ‘Baby Plays Around’는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아름다웠다.
제조원 J&A Acoustics (031)212-9707
가격 2200만원 구성 3웨이 3스피커 인클로저 청동(밀폐형, 미드·우퍼부)/북유럽산 자작나무(베이스 리플렉스형, 서브우퍼부) 사용유닛 서브우퍼 25.4cm 스캔스픽 알루미늄 콘, 미드·우퍼 16.5cm 아큐톤 세라믹, 트위터 2.5cm 아큐톤 세라믹 재생주파수 대역 30Hz-30kHz 크로스오버 주파수 60Hz, 2.5kHz 임피던스 6-8Ω 출력음압레벨 88dB/2.83V/m 파워 핸들링 100W 크기(WHD) 34×125×41cm 무게 80kg
<월간 오디오 2017년 11월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