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코난
비교적 늦깎이로 데뷔한 영국 BBC 모니터의 후발 주자 PMC. 하지만 현재 PMC는 스튜디오 모니터 범주를 훌쩍 뛰어넘어 가정용 하이파이 시장의 빛나는 스타가 되었다. 1990년 BBC에서 근무하던 피터 토마스와 디스트리뷰터로 활동했던 애드리언 로더의 결합은 향후 21세기를 책임질 스피커, PMC의 시작이었다. 시작은 BB5A라는 스피커, BBC에 납품하기 위해 커다란 박스(Big Box)를 수정하고, 또다시 개선한 이후 결국 다섯 번째 성공에 이르러 BB5A로 명명되었다. BB5A를 계기로 PMC는 영국 메트로폴리스 스튜디오는 물론 미국 할리우드 레코딩, 마스터링 스튜디오를 누비게 된다. BB5A는 PMC 전설의 시발점이었다.
1970년대 BBC 모니터 스피커의 선발주자 로저스, 하베스, 스펜더를 뒤잇는 차세대 주자의 탄생은 환영할 만했다. 이미 B&W나 ATC 등이 브리티시 모니터 스피커의 계보를 잇고 있는 사이, PMC는 또 다른 장르를 만들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핵심은 트랜스미션 라인 로딩 구조에 있었다. PMC의 트랜스미션 라인은 기존 스피커의 로딩 구조에 매스를 가했다. 스피커 후방 에너지 처리에 있어 마치 미로 같은 구조를 구축한 것이다.
최대한 늘린 내부 통로를 통해 캐비닛 내부로 방사되는 혼탁한 공진을 제거하는 동시에 무척 깨끗한 저역 확장이 가능했다. 이런 방식은 과거에 일부 메이커가 채용했고, 지금도 몇몇 소수 메이커가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스피커 라인업에서 전면적으로 활용하는 예는 PMC가 유일하다. 설계가 쉽지 않고 그만큼 만들기 까다롭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점은 확실하다. 작은 사이즈에서 더 낮은 저역 재생이 가능하며, 포트를 통해 확장된 저역은 보편적 저음 반사형과 차원이 다른 저역 퀄러티라는 것이다.
명실공히 PMC의 시작을 알린 BB5A는 이후 가정용 모니터로 진화한다. 물론 액티브 형태로도 생산되고 있으나 PMC의 가정용 하이파이 시장 진출과 함께 민수용 모델로 개량된다. 그리고 이번엔 스페셜 에디션 BB5 SE라는 완전체로 새 생명을 얻었다.
일단 BB5 SE를 마주하면 스탠드 포함 150cm가 넘는 장신에 좌·우 폭이 43.2cm의 전통적인 궤짝형 비율에 압도당한다. 게다가 후방으로 깊게, 무려 79cm 길이로 깎아지른 깊이는 과연 얼마나 긴 트랜스미션 라인 미로를 구축했는지 궁금해진다. 스펙에서 확인되는 바로는 BB5 SE의 트랜스미션 라인 실효 길이는 무려 4m에 이른다. 스피커 자신의 온전한 높이 1m를 똑바로 총 네 번 구부린 길이라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그만큼 전면에서 봤을 때보다 더 깊은 미로가 철저한 계산 속에 정해진 기울기와 면적을 가지고 직조되어 있다. 그리고 그 미로는 전면 유닛, 정확히 말해 트위터 상단에서 끝난다. 음악 신호가 전류를 타고 들어오는 터미널에서부터, 유닛을 거쳐 포트 종단까지 모두 일목요연한 신호 흐름을 갖는다.
그중 우리가 듣는 실제 소리의 분출구, 유닛은 전면 패널에 무척 단단히 밀착되어 장착되어 있다. 총 세 개의 유닛은 각 유닛의 시간차를 고려해 계산된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그 구성은 고역, 중역, 저역에 걸쳐 모두 각각의 전용 유닛이 재생하는 방식을 택했다. 요컨대 정통 3웨이 3스피커 타입, 멀티웨이 스피커다. 뿐만 아니다. 후면엔 각 대역을 담당하는 유닛에 각각 신호를 입력시킬 수 있는 터미널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즉, 트라이와이어링이 가능하며, 총 세 대까지 앰프를 연결, 바이앰핑에 대응하고 있다.
고역은 27mm 구경 소노렉스 소프트 돔 트위터, 그리고 그 아래로는 PMC75 SE 유닛이 중역을 담당한다. 이 역시 PMC가 자랑하는 소프트 돔으로 프레임은 통 알루미늄을 절삭한 후 방사 특성을 위해 안쪽으로 밀어 넣은 모습이다. 한편 저역은 BB5 SE 스피커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한다. 마치 스파이더 도안을 연상시키는 듯한 모양의 저역 유닛은 일명 래디얼(Radial) 유닛으로 불린다. 이런 장치를 앞쪽에 덧붙인 이유는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무려 15인치 사이즈 대형 진동판의 전·후 피스톤 운동을 더 정교하게 컨트롤하기 위한 PMC의 특별한 아이디어다.
‘편안하면서 정확한 광대역’ 쉽게 읽히는 표현이지만, 실제로 광대역에 정교한 위상 특성을 가지면서 편안한 재생음을 얻기란 말처럼 녹록하지 않다. 일단 BB5 SE는 15인치 우퍼 유닛을 장착한 대형기로 저역 하한선을 초 저역인 17Hz까지 하강하도록 만들어졌다. 고역은 25kHz로 크게 놀랄 만한 일은 아니나, 초 저역 하강과 함께 시간축 정합을 고려해야 한다. 더군다나 트랜스미션 라인의 길고 긴 미로를 지나 분출되는 저역 스피드가 관건이 될 수 있다. 대게 많은 대형 유닛을 채용한 스피커들이 저역 스피드 저하로 인해 불분명한 저역 해상도와 트랜지언트 특성 훼손, 그리고 상위 대역과 위상 불일치를 겪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컨스텔레이션의 인스피레이션 시리즈 프리앰프·파워 앰프와 매칭에서 그런 현상은 전혀 포착되지 않는다. 물론 8Ω 200W, 4Ω 400W라는 선형적인 증폭 특성을 가진 컨스텔레이션이지만, BB5 SE의 저역을 통제할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결과적으로 스피드 오차로 인한 음상이나 스테이징, 정위감 등 오류는 발견되지 않았다. 오히려 매우 정교한 세부 묘사와 함께 편안하면서도 광대역에서 오는 정돈된 대역 간 균형감이 돋보였다. 마커스 밀러의 ‘Cousin John’이나 그 외 강력한 비트가 넘실거리는 녹음에서도 쥐어짜는 느낌 없이 무척 자연스러운 진행이 돋보인다.
다닐 트리포노프의 파가니니 변주에 의한 광시곡 같은 곡에서는 대형기의 넉넉한 음압(92dB)이 귀가 아닌 온몸으로 다가온다. 악기는 온전히 실제 공연장의 그것처럼 커다란 스케일로 넘실거리며 현장의 실체감을 옮겨온다. 대게 이런 대형기에서는 세부적인 세밀 묘사보다는 전체적인 스케일 위주에 커다란 타격감 위주의 소리를 들려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컨스텔레이션 및 네임 NDS 소스기기와 함께한 실제 BB5 SE는 철저히 통제된 대역 간 균형감과 마이크로 다이내믹스가 일품이다. 그래서 더욱 편안한 실체감으로 다가왔다.
이지 오우에 지휘, 미네소타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코플랜드 보통 사람들을 위한 팡파르 같은 곡에서 펼쳐지는 저역 규모는 50평대 거실도 풍부하게 채울 정도로 넓은 반경에 걸쳐 바닥을 탄력적으로 울린다. 좁은 면적에 걸쳐 짧게 타격하고 튀어 오르는 중·소형기와 크게 대비되는 대형기의 면모다. 더불어 전면의 커다란 배플과 래디얼 우퍼의 다소 무서운 인상에도 불구하고 전·후 원근감은 깊고 풍요로울 정도로 심도 깊게 펼쳐진다. 공격적일 것 같은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며, 유닛 간 정교한 시간축 정렬을 바탕으로 커다란 레이어링이 겹겹이 펼쳐지며 역동적인 무대를 선사한다.
총평
대형기의 풍모는 정확히 사운드 규모로 정의된다. 더불어 BB5 SE는 과거보다 훨씬 더 정교하게 다듬어졌다. 그리고 처음 우려와 달리 매우 정확한 음상과 음장, 저역 해상도는 무엇보다 래디얼 우퍼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BB5 SE에 채용된 래디얼 우퍼는 일반적인 우퍼에 비해 동일한 조건에서도 절반에 이르는 온도에서 작동한다. 4Ω 임피던스지만 92dB 고능률에 더해 매우 선형적이며, 보편적인 구조의 우퍼에 비해 훨씬 더 제동이 수월하고 안정성이 높다.
실제로 BB5 SE는 동일한 출력 레벨에서도 쉽게 정확한 작동이 가능하며, 이는 상위 대역과 뛰어난 시간축 조화를 이루어낸다. 단지 홈 오디오가 아니라 더 까다로운 조건을 요구하는 스튜디오 또는 콘서트홀 등에서의 사운드 경험, 1억원대 QB1-A 같은 레퍼런스급 스튜디오 모니터 설계·제조 등 철저히 피나는 현장 경험이 낳은 결과물이다. BB5 SE는 가정에서 사용할 수 있는 레퍼런스 스피커로서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20세기 BBC 모니터 및 그 이후 세대 B&W, ATC의 모니터와 함께 레퍼런스 모니터 스피커로 기억될 것이다.
수입원 다빈월드 (02)780-3116 가격 4,200만원 구성 3웨이 3스피커 인클로저 ATL 사용유닛 우퍼 38cm 래디얼, 미드레인지 7.5cm PMC75 SE, 트위터 2.7cm SONOLEX 재생주파수대역 17Hz-25kHz 크로스오버 주파수 380Hz, 3.8kHz 임피던스 4Ω 출력음압레벨 92dB/W/m 크기(WHD) 43.2×104×79cm 무게 87kg
<월간 오디오 2017년 12월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