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남
시청기를 한꺼번에 여러 기종 듣다 보면 대부분은 기억에서 아슴푸레하게 사라진다. 두어 달 지나면 들었는지 아닌지 헷갈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기억력의 유무와 상관없이 좀체 잊히지 않는 제품도 분명히 있다. 기기를 교체해야 할 나이도 아니지만 돌아온 뒤에도 그날 밤 한참 동안 마치 설레 듯 생각이 머물러 있는 것이다. 이 시청기가 그렇다. 국내에서 만들어진 반도체 앰프로 사이즈도 작고 그냥 평범해 보인다. 그런데 결코 범상한 제품이 아니다.
지금껏 많은 제품을 듣다가 교체하는 그런 사이클을 가졌지만 가장 아까운 제품이 있다. 삼성에서 90년대 마크 레빈슨과 손잡고 만들었던 엠퍼러 앰프이다. 생생하고 찌르는 듯한 자극 대신 둥글둥글하고 모나지 않으면서 장중한 소리를 내주는 제품이었는데, 삼성은 그 이후 사업을 접고 말았다. 대대적인 투자로 최고의 제품을 만들었지만 판매 실적이 저조한데다가 성공을 해도 이득이 보잘 것 없다는 내부 평가가 나온 탓이다. 그 직후 재고품 프리와 파워 앰프를 부품 값 정도의 말도 안 되는 가격에 구입했는데, 역시 그 진가를 알아보지 못하고 얼마 되지 않아 보내 버렸다. 당대의 현모양처 감이었는데 그것을 모르고 헤어진 꼴이 되었지만, 그걸 알게 된 것도 10년이 넘어서이다. 그래서 상놈은 나이가 양반이라고 했다. 시청기는 실로 엠퍼러 이후 등장한 한국 반도체 앰프의 승리라고 할 만하다. 프리와 파워 앰프 세트로 되어 있고, 흔한 리모컨도 넣지 않았으며, 완전 아날로그 앰프이기도 하다.
크고 무겁고 분리형이라야 고급품이라는 인식이 우리 오디오계에 굳어져 버린 것은 수십 년이 된다. 그걸 이런 글 한두 차례로 바꾸기에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렇게 스몰 사이즈인데도 이렇게 거대하고 깊은 소리가 나와 주다니…. 이 제품의 소리는 한마디로 착색이 없어서 그렇게 소리가 생생할 수 없고, 뛰어난 해상도와 윤기를 만날 수 있으며, 그리고 울리기 어려운 스피커일수록 더 잘 울린다는 특징이 있다. 펀치력이 충만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출력은 겨우 110W. 반도체 앰프는 기본이 200W인 시대이다. 1000W를 넘는 제품도 수두룩하고, 막대한 전기 소모량으로 한 시간 듣는 데 전기 요금이 5천원 꼴이 다 되는 제품도 있다.
이 제품은 사이즈가 작으면서 프리·파워 합해 봐야 무게가 17.5kg밖에 되지 않는다. 클래스D 앰프도 아니다. 클래스A와 AB를 넘나드는 정통 제품이다. 이런 소형기에서 나오는 소리가 가공할 만하다는 표현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 앰프에 대한 허상을 단숨에 부숴 버린 제품으로 이제 기록되리라 믿는다.
프리앰프를 제작하는 데 사용하는 보통의 IC 부품이 아닌 음악용 TR을 구하기 위해 전 세계 창고를 다 뒤졌고 그 기간이 3년이나 걸렸다고 하며, 100년을 사용해도 소모품만 교체해 주면 고장 없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을 목표로 제작되었다는 것도 참고사항. 이 프리앰프는 밸런스, 언밸런스 연결에 따라 각기 소리가 다르며, 다이내믹 사운드를 들으려면 밸런스에, 싱글 앰프처럼 단아한 소리 취향이면 언밸런스에 연결해야 한다.
파워 앰프는 가상 A급 역상 바이어스 3단 달링턴이라는 특이한 설계로 제작했는데, 이것은 보통의 과대 발열이 나는 종래의 클래스A 방식이 아니라도 충분히 동격의 소리를 내기 위한 독자적인 제작자의 기술이다. 소형의 20W급 드라이브 TR과 200W급 파워 TR을 혼용, 소음량에서는 스피드가 빠른 소형 드라이브 TR이 스피커를 구동하고 이때 대형 파워 TR은 전류만 공급시켜 작은 음량에서도 충분한 저역 특성과 스피드를 제공하는 원리가 기준이다. 그 외에 자세한 내막은 노하우이기 때문에 비밀이며, 제작자인 최재웅 씨의 노하우를 세계 최대의 앰프 제작사에서 커닝해 간 전력도 있기 때문에 기술력은 극비로 하고 있다. 그리고 안을 들여다봐도 부품 이름 같은 것을 알 수 없게 지워 버렸다고 한다. 그 외에도 이 파워 앰프는 전체 회로를 5장의 PCB로 분할 설계를 해서 크기를 줄이는 데 성공했고, 효율성이 높아 뛰어난 드라이브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발열을 줄이고 소비 전력도 낮추고 있다. 그리고 출력단 전류 분배 구성에도 그동안 어느 누구도 사용하지 않았던 신기술을 적용했다. 이 신기술은 기존의 교과서 방식과는 전혀 달라서 이렇게 해도 작동이 되나 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소리를 울려 보면 음촉의 끝까지 물고 뽑아내고 질깃하며 매끈하기 짝이 없다. 밀도도 충만하며 고역, 저역을 막론하고 균일한 음상을 보여 준다. 주문 생산 방식으로 만들어지는데, 경우에 따라 한 달 이상이 걸린다는 것이 관건. 앰프를 켜고 약 30분이 지나야 들을 만한 소리가 나오며, 스피커와는 3일 이상 궁합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 주의 사항이다.
제조원 리비도하이파이 (02)711-7349
P-50 가격 430만원 아날로그 입력 RCA×3, XLR×1 아날로그 출력 XLR×1 입력 임피던스 220㏀(RCA), 10㏀(XLR) 입력 감도 150mV(RCA), 1V(XLR) 출력 게인 960mV(RCA), 3V(XLR) 출력 임피던스 20Ω 재생 주파수 대역 20Hz-50kHz(±0.1dB) 크기(WHD) 33×8.8×30cm 무게 5.5kg
M-50 가격 460만원 출력 방식 가상 A급 역상 바이어스 3단 달링턴 실효 출력 110W(8Ω), 250W(브리지 모드, 8Ω) 재생 주파수 대역 10Hz-40kHz(±1dB) 아날로그 입력 XLR×1 입력 임피던스 40㏀ 입력 감도 1.2V 전원부 용량 600VA 크기(WHD) 33×10.5×37cm 무게 12kg
<월간 오디오 2017년 12월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