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승우
최근 무서운 기세로 부활하고 있는 아날로그 시장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CD 등장 이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아날로그 시장은 최근 몇 년 사이에 급성장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음반 시장의 활황은 메이저 음반사 및 마이너 음반사들 모두 경쟁하듯 LP 음반들을 발매하게 만들었다. 이런 현상은 애호가의 입장에서 무척 반가운 일임에 분명하다. 양적인 면과 더불어 재발매 음반들의 퀄러티 역시 매우 뛰어나, 구하기 힘들었던 음반들을 쉽게 구입할 수 있는 현상은 기존 애호가뿐만 아니라 아날로그를 시작하는 애호가들 입장에서도 그만큼 진입 장벽이 낮아진 셈이다. 음반 시장의 활황은 그대로 관련 하드웨어 제조사들에 이어져, 양질의 다양한 신제품들이 출시되고 있다.
최근 국내·외 오디오 쇼의 부스들도 아날로그 제품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상황을 보면, 아날로그는 부활을 넘어 재탄생 혹은 제2의 전성기라는 표현이 적합할 정도로 주목을 끌고 있다. 약 30년 동안 아날로그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는 필자의 입장에서 보면 다양한 신제품의 등장은 반가운 일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호기심이 발동되어 자꾸 곁눈질을 하게 되어 경제적인 부담으로 이어지게 되기도 한다. 그만큼 관심을 갖게 되는 신제품들이 지속적으로 발표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에 리뷰를 맡게 된 제품 역시 오랜 경험과 지식을 가진 필자조차도 전혀 생소한 제품인데, 리뷰 후 결국 그 매력에 도취되어 구입에 이르게 된 좀 얄궂은 제품이기도 하다.
이웃 나라인 일본의 오디오 시장은 경제적인 불황에도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아날로그에 대한 열풍 역시 대단하다. 특히 일본에는 메이저 업체들 이외에도 수많은 소규모 업체들이 뛰어난 기술력과 장인 정신으로 다양한 제품들을 발표하고 있다. 특히 톤암, 카트리지, 포노 앰프 등 관련 제품들의 다양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이다. 전 세계 시장에 널리 알려진 고에츠, 미야비, 이케다 등은 이미 메이저 업체로 성장했으며, 얼마 전 리뷰를 담당했던 그란츠의 톤암, 이번에 소개하는 무라사키노 랩(Murasakino Lab)의 스미레(Sumile) 카트리지 같은 국내 시장에서 그 이름조차 생소한 브랜드의 제품들도 있다. 물론 이미 해외에서는 크게 호평 받으며, 많은 판매가 이루어진 제품들이다.
아무튼 필자가 이번에 리뷰를 맡게 된 스미레는 아날로그 애호가들과 전문가들에게도 생소한 제품이다. 스미레는 일본어로 바이올렛이라는 뜻으로 바디의 색상이 카트리지 제품으로는 다소 특이한 보라색으로 구성된 제품이다. 실물을 접하기 전 사진상으로만 보았던 모습은 다소 이질감이 느껴졌지만, 실제의 모습은 무척 매력적이다. 그동안 수많은 카트리지를 사용해 보고 리뷰했지만, 외관상 이렇게 개성이 강한 제품은 처음이다. 실제 받아들면, 마치 수작업 공예품을 감상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상세한 기술적인 내용을 소개하기 위해 제품 카탈로그와 많은 리뷰들을 참조했지만, 거의 공개되지 않아 간단한 설명으로 마무리 지으려 한다. 먼저 바디 재질은 스테인리스 스틸에 금도금으로 마무리되었으며, 보론 캔틸레버 채용, 내부 임피던스는 1.2Ω의 저 임피던스형, 출력 전압은 저 임피던스 형으로는 비교적 높은 0.35mV, 무게는 14.5g. 이 정도의 기본적인 정보만이 오픈된 상황이다. 아마도 제작 및 기술적 노하우의 보안을 위해 일부 기본적인 정보만 오픈한 것으로 판단된다.
제한된 정보 속에서 특징을 살펴보자. 가장 눈에 띄는 점이 스테인리스 스틸 재질의 채용이다. 스테인리스 스틸은 가공이 까다롭지만, 음향적인 장점이 뛰어난 소재로, 특히 아날로그 제품 중 극히 소수의 업체들이 톤암, 플래터 등에 채용하고 있다. 동사는 스테인리스 스틸 가공 후 금도금으로 마무리하였으며, 이를 음향적 튜닝의 노하우로 설명하고 있다. 금이라는 재질은 일부 오디오 제품에 이미 채용된 사례가 있으며, 특히 미묘한 음색의 변화나 오디오적 특성을 변화시키는 재질로 잘 알려져 있다. 또한 저 임피던스에 고출력 스펙 역시 주목할 만한 포인트이다. 일반적으로 저 임피던스는 S/N의 확보에 유리하지만 낮은 출력 전압이 단점인데, 저 임피던스에 고출력 사양은 음향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구성으로 판단된다.
시청은 필자의 메인 시스템인 테크다스 에어포스 원 턴테이블, 어쿠스티컬 시스템 액시옴 톤암, 입실론 VPS-100 포노 스테이지/MC 26L 셋업 트랜스포머의 조합으로 진행되었다.
첫 곡은 엔야의 <Shepherd Moons> 앨범의 10번 트랙 ‘Marble Halls’. 현대적인 광대역의 음향이 연출된다. 사실 본 카트리지의 외관이 주는 이미지로 고혹적인 음색의 개성적 음을 연출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실제 들어보고는 필자의 판단이 틀렸음을 확인했다. 광대역으로 전개되는 하이엔드적 음향은 디지털을 능가하는 정보량과 고 S/N 사운드 경향이었다. 특히 기존 스테인리스 스틸을 사용한 다른 아날로그 컴포넌트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성이 서늘할 정도로 느껴지는 투명함이었는데, 본 제품은 온도감을 수반한 투명함이라는 표현에 가까운 적절한 중용성을 보여주었다. 이는 아마도 금도금 효과로 판단되는데, 오디오 세계에서의 작은 변화란 음향적 특성을 변화시키는 오묘한 세계임을 다시 한 번 실감하였다.
보컬과 반주의 분리도도 뛰어나고, 리스닝 공간을 감싸 안는 듯한 홀톤이나 입체적 사운드 재현이 탁월하게 느껴진다. 독주 바이올린 곡 시청에서 나타나는 음색의 다양성, 현의 미세한 표현력은 필자가 경험해 본 카트리지 중 역대급일 정도로 뛰어났다. 대편성 재생에서 보여주는 음향 공간의 입체감과 광활함은 아날로그 제품으로는 이례적일 정도로 뛰어났으며, 다양한 소스에 중용미를 갖추고 재현하는 탁월함은 올라운드 플레이어적 기질을 보여주었다.
필자는 지난 10년간 항상 반덴헐 콜리브리라는 카트리지를 메인으로 운영했다. 이 카트리지는 호 불호가 극명하게 엇갈릴 정도로 취미성이 강한 사운드를 갖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광대역·하이 스피드·정보량이라는 오디오적 쾌감으로 열렬한 지지자들을 갖고 있는 반면, 중역대의 상대적 빈약함, 음색의 냉정함 등 반대파들도 존재하는 제품이다. 물론 운용 방법에 따라 단점들의 보완이 가능하지만, 필자 역시도 특정 음반 재생에 있어 항상 아쉬움이 공존했던 제품이었고, 그 대안을 찾기 어려워 지난 10년간 필자의 메인 역할을 해왔던 것이다. 항상 마음속으로 오디오적 쾌감과 아날로그적 감성이 공존하는 카트리지를 그리던 중 바로 이번 리뷰 제품인 스미레를 만났다. 그리고 필자에게 가뭄의 단비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시청평을 정리하면 ‘중용의 미덕’이라는 표현이 가장 적합한 특성을 갖춘 제품이라는 것이다. 오디오적·물리적 스펙은 현존 최강으로 평가받는 반덴헐 콜리브리, 클리어오디오 골드핑거 스테이트먼트 등의 제품에 필적하며, 사운드 스테이지의 3차원적 재현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탁월함을 보여 준다. 온도감, 부드러움, 중역의 질감 등 흔히 회자되는 아날로그적 감성 역시 손색없어, 필자가 희망하는 이상에 가까운 카트리지로 평가된다.
수입원 블루텍 (070)4214-5287
가격 수입원 문의
주파수 응답 10Hz-50kHz
출력 전압 0.35mV(1kHz)
내부 임피던스 1.2Ω
트래킹 포스 1.9-2.1g
캔틸레버 소재 보론(Boron)
무게 14.5g
<월간 오디오 2017년 12월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