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편
시청실이 앰프가 뿜어낸 에너지로 가득 찬 가운데, 정숙한 무대 위에 오케스트라가 넓게 자리 잡은 모습이 확연했다. 또한 무지막지한 투티가 끝나자마자 피아니시모로 넘어가는 대목도 대단했다. 마치 천둥 번개가 내려친 후 언제 그랬냐는 듯 맑은 호수 위에서 백조들이 유유히 노는 것 같다.
대한민국 오디오 제작사 올닉(Allnic)이 작정하고 대출력 모노블록 파워 앰프 M-5000 타이탄(Titan)을 내놓았다. KT150을 블록당 8개씩 써서 400W를 뿜어낸다. 같은 KT150을 블록당 4개씩 써서 200W를 냈던 M-3000 MK2에 비해 꼭 갑절로 늘어났다. 폭은 48cm, 안길이는 78cm, 높이는 25cm, 무게는 블록당 64kg. 그야말로 ‘타이탄’이다.
처음에는 구동력만 대단할 줄 알았다. 올닉 파워 앰프들이 워낙 구동력이 좋았었던 데다 진공관으로 400W 출력이면 그야말로 이 세상에 못 울릴 스피커가 없으니까. 역시였다. 포칼의 대형기 마에스트로 유토피아를 가지고 놀았다. 가공할 펀치력, 가슴이 쿵쾅거릴 정도의 풍압은 상상 이상. 그런데 음악을 들을수록 초점은 다른 곳에 모여졌다. 음악의 미세한 결과 가녀린 속살을 알아가는 재미 혹은 마력에 그새 흠뻑 빠지게 된 것이다. 8W 내외의 300B 싱글 앰프로만 가능할 줄 알았던 그 미시적인 음의 아름다운 세계가 이 초대형 모노블록 파워 앰프에서 펼쳐진 것이다.
도대체, 올닉은 M-5000 타이탄에 어떤 매직을 숨겨둔 것일까. 그 비결이 뭐기에 이렇게 골리앗의 힘과 다윗의 감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을까. 이번 리뷰는 이에 대한 필자의 가슴 떨리는 탐험기다. 올닉의 앰프라면 거의 모든 기종을 진지하게 들어봤던 리뷰어로서, 실제로도 자택에서 프리앰프와 파워 앰프를 올닉으로 통일한 유저로서 이 ‘매직’을 풀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우선 기본 팩트부터 체크하자. M-5000 타이탄은 기본적으로 채널당 KT150 8개를 푸시풀 구동, 400W 출력을 얻는 클래스AB 증폭의 모노블록 파워 앰프다. 놀라운 사실은 125W까지 클래스A로 작동한다는 점. 이 정도 출력이면 사실 가정에서 적정 볼륨으로 듣는 거의 모든 음악은 클래스A로 즐긴다는 얘기다. 클래스A 증폭 구간이 넓어질수록 아주 작은 디테일까지 섬세하게 재생할 수 있는 법. 실제 시청 시에도 이 같은 섬세한 재생에 여러 번 놀랐다. 125W까지 클래스A로 증폭되는 400W 대출력. 이것이 첫 번째 매직이다.
다음은 드라이브관의 리니어하면서도 강력한 드라이빙 능력이다. 올닉은 언제나 드라이브관을 중요시해 왔는데 이번 타이탄 앰프에서는 5극관인 E55L(8233)을 3결 접속해 썼다. E55L은 전류 증폭률(gm)이 무려 6만에 달하는 5극관. 전류 증폭률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출력관을 강력하게 드라이빙할 수 있다는 얘기다. 더욱이 이 진공관을 3결 접속할 경우 내부 저항은 450Ω까지 떨어진다. E55L은 또한 전압 증폭률(뮤)이 가장 이상적인 수치라 할 28을 보인다. 뮤가 너무 높으면 음들이 찌그러지고, 너무 낮으면 힘이 없게 된다. 드라이브관의 강력한 구동력과 리니어한 증폭, 이게 두 번째 매직이다.
드라이브관과 함께 음질을 결정짓는 초단관에는 5극관인 5749를 역시 3결 접속해서 투입했다. 워낙 물성이 좋은 진공관인데다 3결로 쓸 경우, 초단관으로 흔히 사용되는 3극관보다 내부 커패시턴스가 더 떨어지는 장점까지 있다. 증폭 소자의 커패시턴스 값이 높아질수록 고음은 다 빠져나가기 마련이다. M-5000 타이탄이 섬세하고 투명한 고음을 쭉쭉 뽑아내준 배경이다.
한편 초단관과 2개의 드라이브관은 전통적인 리크 뮬라드 회로로 결합, 각각의 드라이브관이 정위상과 역위상 신호로 출력관 4개씩을 드라이빙한다. ‘이 과정에서 두 신호의 파형이 완벽히 똑같아 커먼 모드 시그널을 100% 제거했다. 이로 인해 감도 100dB인 스피커로 들어도 노이즈가 한 방울도 안 튄다. 또한 초대형 앰프임에도 20kHz 방형파가 나온다는 점이 타이탄의 커다란 특징’이라는 게 박강수 올닉 대표의 설명이다.
마지막 매직은 M-5000 타이탄에 투입된 올닉의 독보적인 기술력이다. 니켈 계열 합금인 퍼멀로이를 코어로 써서 스피드와 광대역 특성이 좋은 출력 트랜스, 전압 변동률이 1% 미만인 전원 트랜스, 출력관의 전류 상태 점검과 바이어스 조정을 할 수 있는 커런트 미터, 깨끗한 평활 전원을 만들어내는 큼직한 초크 트랜스와 대용량 커패시터, 진공관 보호 및 마이크로포닉 노이즈 유입 방지 역할을 겸한 폴리카보네이트 침니 등이 적용되어 있고, 특히 이번 앰프에는 무려 3kW급의 대형 전원 트랜스를 써서 순발력과 깊이감 있는 저역을 책임지게 했다.
M-5000 타이탄을 올닉의 플래그십 프리앰프 L-8000 DHT에 물려 포칼의 마에스트로 유토피아로 들어봤다. 애런 네빌의 ‘Louisiana 1927’에서는 단단하면서도 넓게 펼쳐지는 저역 사운드에 절로 감탄했다. 남성 보컬곡이 이렇게 맑게 들린다는 사실도 좀체 믿기 어렵다. 사운드 스테이지는 넓고 깊고 높다. 이어 들은 ‘Everybody Plays The Fool’은 밀고 들어오는 음들의 압력에 흠칫했다. 역시 광활하고 탁 트였으며 좀스러운 게 없는 앰프다.
아치 셰프 콰르텟의 ‘Little Blue Girl’에서는 색소폰 리드에 침이 묻은 디테일까지 전해져 깜짝 놀랐다. 곡이 끝날 때까지 밀고 나가는 피아노 현의 아련한 여운도 대단했다. 듀크 엘링턴의 ‘Blues In Blueprint’는 여러 악기들의 음들이 마치 여름철 공원의 분수처럼 사정없이 분출된다. 이어 들은 ‘Blues In Orbit’에서는 고역 사운드가 투명하게 탁 트여 윤기와 빛이 난다. 마틴 테일러의 ‘Georgia On My Mind’의 어쿠스틱 기타 소리는 그냥 청명한 가을 하늘을 빼닮았다.
M-5000 타이탄의 진가가 빛난 것은 클렘페러 지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연주의 말러 2번 교향곡. 시청실이 앰프가 뿜어낸 에너지로 가득 찬 가운데, 정숙한 무대 위에 오케스트라가 넓게 자리 잡은 모습이 확연했다. 또한 무지막지한 투티가 끝나자마자 피아니시모로 넘어가는 대목도 대단했다. 마치 천둥 번개가 내려친 후 언제 그랬냐는 듯 맑은 호수 위에서 백조들이 유유히 노는 것 같다. 이처럼 여린 음들을 아주 세밀히 즐길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바로 웰메이드 대출력 앰프가 전하는 반전 매력이 아닐까 싶다.
내친김에 리뷰용으로 좀체 안 듣던 카펜터스의 ‘We've Only Just Begun’이나 ‘Close To You’를 들어봐도 평소와는 전혀 다르게 들린다. 남자 보컬이 오른쪽에서 제대로 치고 나오는 모습은 거의 처음 느껴보는 대목. 여성 보컬의 리퀴드한 감촉은 그야말로 무장해제 수준이다. 평소 안 들리던 소리까지 들려주니 마치 전혀 새로운 음악을 듣는 듯하다. 클레어 마틴의 ‘Black Coffee’는 녹음실의 미세한 공기감까지 표현해줬고, 레이 브라운의 ‘Bye Bye Blackbird’는 아주 센 음량이 아니었는데도 초 저역 사운드에 귓바퀴까지 떨렸다. M-5000 타이탄, 모노블록 파워 앰프의 종착역이라 해도 지나침이 없는 역작이다.
총판 오디오멘토스 (031)716-3311
가격 총판 문의 사용 진공관 KT150×8, E55L×2, 5749×1 실효 출력 400W(8Ω) 주파수 응답 20Hz-20kHz S/N비 -80dB 댐핑 팩터 16 전압 게인 +26dB 입력 임피던스 100㏀ 입력 감도 2.82V 디스토션 0.12% 크기(WHD) 48×25×78cm 무게 64kg
<월간 오디오 2017년 12월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