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승우
최근 아날로그 제품의 인기에 대한 설명은 지난 번 카트리지 제품 리뷰를 통해 설명한 바 있다. 아무튼 아날로그 오디오를 중심으로 한 활발한 신제품 출시는 애호가의 입장에서는 매우 반가운 일이다. 특히 해외 잡지의 아날로그 관련 소개되는 제품의 숫자와 리뷰 횟수를 보면 해외 시장에서 아날로그 제품에 대한 인기가 더 높은 것을 쉽게 알 수 있게 된다. 필자는 항상 해외의 잡지나 리뷰 등을 참조하는 경우가 많은데, 스테레오파일이나 앱솔루트 사운드 등의 잡지를 즐겨 보는 편이다. 스테레오파일의 경우 해마다 ‘Recommended Components’를 등급별로 분류하여 발표하며, 항상 관심 있게 지켜보는 편이다. 이런 필자의 관심 속에 포노 앰프 분야에서 유독 눈에 띄는 제품이 있는데, 2012년 ‘Recommended Product Section’이 세분화된 이후 2017년까지 해마다 최고 등급인 A+를 받은 제품인 입실론의 VPS-100 제품이다. 발표된 시점은 거의 10년 가까이 된 제품이지만, 그동안 수입이 되지 않았던 것이 아쉬웠는데, 올해 초부터 국내에서 정식 소개되고 있다. 필자 개인적으로도 올 초 수입된 제품을 구입 후 현재는 2대를 운용 중이다. 이번 리뷰에서는 VPS-100 포노 앰프와 페어를 이루는 MC 20L 스텝 업 트랜스포머 제품까지 소개하도록 하겠다.
입실론은 그리스에 본거지를 둔 진공관 앰프 전문 메이커로 1995년 창립된 역사가 깊은 브랜드이다. 유럽 지역에서는 창립 초기부터 꽤 인지도가 높았던 반면, 유럽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2009년 발표된 VPS-100 포노 앰프가 출시된 이후에 전 세계적인 지명도를 얻게 되었다. 하이엔드급 진공관 방식의 프리·파워 앰프, 디지털 분야의 제품 등 스피커를 제외한 일렉트로닉스 전 제품을 제조하는 종합 브랜드이기도 하다. 특히 진공관 베이스의 프리·파워 앰프는 고가임에도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용자를 보유한 인지도가 높은 제품이다.
아무튼 국내에는 다소 생소했지만, 이미 높은 지명도를 갖춘 동사의 VPS-100·MC 20L 제품에 대해 소개하도록 하겠다. 먼저 VPS-100은 47㏀의 MM 입력 하나로 구성된 MM 전용 포노 앰프이며, 페어를 이루는 동사의 트랜스 제품이 MC 시리즈로 MC 20L이다. 최근 고가의 하이엔드 제품들이 대부분 멀티 입력을 제공하는 것에 비해 입력이 하나인 점이 아쉽지만, 포노 앰프의 특성상 노이즈 차단이나 간섭에 의한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단일 입력이 유리하기도 하다. 물론 여러 조의 톤암과 카트리지를 사용하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아쉬운 부분이지만, 동 제품을 두 조나 구입하게 될 정도로 매력적인 제품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VPS-100의 기술적인 특징 중 가장 눈에 띄는 점이 바로 LCR 베이스 회로를 채택했다는 것이다. LCR 회로의 특징은 ‘Capacitor Dielectric Absorption’의 최소화를 통해 에너지 딜레이나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뛰어난 장점을 갖고 있지만, 다수의 트랜스포머로 구성되어 노이즈를 최소화하는 것 자체가 고난도 기술이며 회로 설계와 트랜스포머의 성능이 제작의 관건이다. 필자의 경험상 일부 LCR 제품의 경우 뛰어난 음향적 특성은 매력적이었으나, 노이즈, 험 등의 문제로 사용하기 꺼렸던 적이 많았는데, 동 제품의 선정 시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이 바로 포노 험과 노이즈 부분이었다. 이런 측면에서 VPS-100은 적어도 필자가 경험했던 포노 앰프 중 최고의 정숙도를 자랑하는 제품이다.
게인 스테이지에는 지멘스의 C3g 진공관 두 조가 채용되었으며, 총 게인은 39dB이다. 또한 정류관은 6CA4/EZ81을 채용했다. 입·출력은 언밸런스 입력 1조에, 밸런스·언밸런스 출력을 각각 1조씩 갖추고 있다. 동사는 임피던스·게인별 여러 종류의 승압 트랜스 제품을 출시하고 있는데, 리뷰 제품인 MC 20L의 경우 26dB의 게인과 카트리지 로드 임피던스 기준 140Ω의 스펙을 갖추고 있다. 디자인적 우수성 역시 VPS-100·MC 20L 공통으로 뛰어나다. 견고한 섀시에 예술적 자태를 드러내는 VPS-100, 크롬 도금의 유려함과 원통형 디자인으로 유니크하게 제작된 MC 20L, 두 모델 모두 탁월한 디자인 감각의 외형을 갖추고 있다.
음향 리뷰는 사용 중인 제품인 관계로 경험을 바탕으로 정리하도록 하겠다. 하이엔드 시스템을 운용하는 필자의 입장에서 가장 중요하게 판단하는 평가 기준은 바로 사운드 스테이지의 입체적 재현 성능이다. 이는 아날로그·디지털 관계없이 필자가 추구하는 방향이며, 특히 빈티지 아날로그 시스템의 경우 결코 제대로 세팅된 하이엔드 아날로그 제품들이 갖고 있는 입체적인 재현성 능력에 못 미친다는 것이 필자의 경험이다. 필자가 하이엔드 아날로그 시스템 구축에 많은 공을 들이는 이유도 바로 입체적인 음향 공간의 재현 때문이다. 최근 출시되는 디지털 녹음을 베이스로 한 아날로그 음반, 아날로그 전성 시대에 제작된 오래된 음반들의 경우 제대로 세팅된 하이엔드 아날로그 시스템을 거치면 그 사운드는 디지털 소스를 능가하는 입체적 음향 공간으로 재현된다. 이런 측면에서 VPS-100·MC 20L 조합이 제시하는 3차원적 음향 공간의 재현 능력은 탁월하다. 이는 진공관·솔리드스테이트 혹은 LCR 회로·CR형 회로 이런 오디오적 특징들을 넘어 정말 제대로 제작된 포노 앰프만이 도달 가능한 세계이다.
자연스럽고 깊게 재현되는 저역 특성, 투명성이 확보된 자극 없는 미드레인지, 세밀한 정보를 놓치지 않는 고역 특성까지 어느 한 곳 흠잡을 것 없는 사운드를 재현한다. 필자가 특히 동 제품을 사용하면서 바뀐 습관 하나가 바로 늦은 시간에 아날로그 음반을 자주 듣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전체적인 대역의 토털 밸런스와 에너지감이 작은 음량에서도 확보된다는 의미로, 심야 시간에도 각 음반이 갖고 있는 매력들을 충분히 재현해주는 탁월함을 갖추고 있다. 음색적인 측면에서도 본 제품의 매력은 각별하다. 일부 반짝이는 듯한 맑고 투명한 음색, 온기를 갖고 있는 정감 있는 음색 등 아날로그 포노 앰프는 다양한 색깔과 특성을 갖고 있다. 그에 반해 본 제품은 특별히 투명한 느낌, 특별히 따뜻한 느낌, 이런 표현보다는 중립적이면서도 우아하고 고급스럽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리뷰어의 입장에서 추상적인 표현을 쓴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음색적인 특성을 달리 표현하는 방법도 마땅하지 않다. 아무튼 본 제품의 음색은 각별히 아름답고 우아한 느낌으로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을 듯하다.
이외에 동 제품이 제시하는 아날로그 음향은 치밀하게 짜인 밀도감, 세부적인 묘사가 가능한 섬세함 등 수없이 많은 표현을 써도 부족할 정도로 탁월하다. 해외의 수많은 리뷰어들이 극찬하고 최고의 제품으로 평가 받는 VPS-100·MC 20L의 조합은 ‘왜 이제야 국내에 소개되었나’라는 아쉬움이 들 정도로 필자의 아날로그 인생 최고의 포노 앰프 제품이다. 물론 이런 표현은 필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이겠지만, 스테레오파일의 모든 포노 앰프 제품들 중 가장 오랫동안 최고의 평가를 받는 제품이 동 제품인 것을 보면, 필자가 표현한 ‘오디오 인생 최고의 제품’이라는 표현도 그리 과장된 말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수입원 소노리스 (02)581-3094
VPS-100
가격 2,500만원 입력 임피던스 47㏀ 출력 임피던스 1200Ω 주파수 응답 10Hz-40kHz(-3dB) 최대 출력 전압 5V 게인 39dB 크기(WHD) 40×18×40cm 무게 25kg
MC 20L Step Up Transformer
가격 600만원 주파수 응답 8Hz-60kHz(-3dB) 게인 26dB 최대 레벨 +20dB 크기(HD) 10×12cm 무게 4kg
<월간 오디오 2018년 1월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