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파송의 빛나는 은총, 카리스 Ⅲ에 감탄하다
글 | 이종학(Johnny Lee)
중국에 산터우라는 도시가 있다. 광동성에 속한 곳이지만, 광저우나 선전과는 한참 떨어져 있다. 오히려 복건성의 샤먼과 가까우며, 바다를 건너면 바로 대만이 나온다. 산터우는 최근 개발된 곳으로, 그 모체는 차오저우다. 차오저우가 강북이면, 산터우는 강남인 셈이다. 그래서 줄여서 차오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예전에 그곳에 있는 친구의 전시장에 놀러 간 적이 있다. 꽤 규모가 커서, 2층에는 전문적인 홈시어터가 구축되어 있고, 아래층엔 여러 개의 시청실이 있다. 그중 한 곳에서 잠시 휴식이나 취할 겸 들어갔다. 어차피 저녁에 거대한 만찬이 기다리고 있으니, 틈날 때 쉬어두는 것이 상책이다.
그런데 그 방에 작은 보석 같은 스피커 하나가 놓여 있었다. 바로 이탈리아산 디아파송의 제품이었다. 그냥 낮잠을 자기엔 뭐해서, 직원에게 부탁해 앰프를 연결해서 들었다. 그런데 피곤 탓인지 뭔지 정말 달콤하고 아름다운 음이 나왔다. 좀 과장하면 천상의 소리? 뭐 해상력이 뛰어나거나 스테이지가 넓거나 하진 않는다. 하지만 정교한 3D 이미지 구축을 바탕으로, 각 악기의 표정이 너무나 환상적으로 나왔다. 그게 바로, 본 기의 전신인 카리스 N.W.다.
단, ‘여기서 고역이 좀더 개방적이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는데, 이번에 만난 카리스 Ⅲ에서는 이 부분이 많이 반영이 되었다. 기존의 아름다운 음색을 유지하면서도, 이제는 팝이나 가요 등에서도 더 활기찬 음을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실 디아파송은 공장에서 뭘 대량으로 찍어내는 스타일은 아니다. 숙련된 장인이 하나하나 정성을 기울여 캐비닛을 만들고, 또 드라이버를 붙인다. 마치 악기를 만드는 듯하다. 그렇다. 요리로 치면, 디아파송은 대규모 체인점이 아니라, 어딘가 숨어 있는 맛집인 것이다. 그러나 너무나 낡거나 허름하지 않다. 꽤 인테리어가 독특하고 또 고급스럽다. 음식 역시 정갈하고 고품위하다. 대략 그런 이미지를 가지면 된다.
예를 들어 캐비닛을 제작할 때, 기후 변화에 따른 뒤틀림이나 변화를 피하기 위해, 무려 6개월에 걸쳐 각 판을 다듬고, 건조하고, 접착하고 또 조립한다. 마치 정성스럽게 장을 숙성시키는 것과 같다. 또 그 모양도 매우 독특한데, 기본 콘셉트는 스피커 주변에 발생하는 회절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즉, 스피커에서 나온 음이 벽이나 천장에 반사된 후 다시 돌아와 스피커 주변에 얼쩡거리는 일이 일체 없도록 한 것이다.
이것은 내부 디자인도 마찬가지. 두툼한 보강재를 더해서 최대한 공진을 억제하고 있다. 즉, 일체 통 울림을 불허하고, 오로지 드라이버만의 성능을 최대한 발현시키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소재의 맛을 적극적으로 살린 요리라 해도 좋다. 한편 동사는 DDD(Diapason Direct Drive)라는 테크놀로지를 쓰고 있다. 이것은 미드·베이스 드라이버에 일체 네트워크를 거치지 않고 바로 앰프에 직결된 형태로 매칭시키는 것이다. 즉, 로우 패스 필터가 없는 것이다. 그 결과, 감도가 높아지고, 위상의 변화도 없으며, 순발력이 좋아지고, 저역의 생동감도 살아난다. 한편 트위터는 실크 소프트 돔. 매우 자연스러우면서 입체적인 음을 자랑한다. 즉, 악기를 만드는 공정을 거치지만, 제품 자체는 엄밀하게 음향 중심으로 완성된 것이다. 제품명 카리스는 여자 이름으로 많이 쓰는데, 은총이나 은혜를 뜻한다고 한다.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형상에 잘 어울리는 모델명이라 생각한다.
한편 본 기의 시청을 위해 앰프와 소스기는 TDL 어쿠스틱스의 M88과 TDL-18CD로 했다. 매우 좋은 매칭을 들려줘서 이래저래 흥미를 갖고 들었다. 첫 곡은 얀센의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1악장. 정신없이 몰아치는 연주다. 특히, 얀센의 템포는 일반적인 연주보다 훨씬 빠르다. 그러나 본 기는 전혀 힘들어하는 기색이 없다. 이 부분에서 모니터 스피커와 같은 정확성이 돋보인다. 또 더 개방적으로 표현되는 바이올린엔 힘과 여유가 있다. 기본적으로 달콤하지만, 심한 착색은 아닌 것이다.
이어서 정명훈 지휘,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 중 행진. 역시 3D 이미지가 좋다. 스피커 안쪽 깊은 곳에서 퍼커션이 서서히 돌출하는 가운데, 공간 여기저기를 현과 관악기들이 화려하게 수놓는다. 저역이 당차거나, 폭발적인 편은 아니지만, 전체적인 짜임새와 앙상블이 뛰어나다. 또 각 악기의 음색이 잘 살아 있고, 기본적으로 마음을 사로잡는 미음이다. 이 부분이 본 기를 선택하는 큰 이유가 되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조수미의 ‘도나 도나’. 마치 새싹이 돋는 봄날의 시골길을 걷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아무런 꾸밈이 없이 은은하고 환각적인 보컬의 매력은, 듣는 내내 탄복하고 말았다. 계속 여성 보컬 트랙을 찾아서 듣고 싶을 정도다. 확실히 현과 보컬 등에서 본 기의 매력은 아무리 칭찬해도 부족하지 않다. 중독성이 대단한 스피커라 해도 좋다. 거창한 시스템을 구축한 분들이라고 해도, 일종의 서브로 들일 만큼 충분한 퀄러티가 있다.
이탈리아의 리틀 프린세스를 만나다
글 | 코난
한눈에 딱 봐도 시선을 사로잡는 스피커들이 있다. 국가마다 디자인 트렌드가 다르고 그 속에 담긴 역사가 묻어나지만 이탈리아는 특히 더 눈에 띈다. 대표적으로 악기를 연상시키며 강철처럼 단단하고 차가운 이미지보다는 온화한 분위기에 예술적인 곡선을 살렸다. 대표적으로 프랑코 셀브린의 소누스 파베르가 있었고, 그가 독립해 만든 크테마는 또 다른 조형미를 살려낸 수작이다. 최근 들어본 스피커 중에서는 에메(EMME)의 다 빈치가 그랬다. 이외에 앰프 분야에서는 신세시스, 유니슨 리서치 등 나무와 금속의 유려한 조합과 역시 곡선미가 개성적 포름으로 다가온다.
밀라노 컬렉션 등 패션의 나라이자 오랜 인류의 역사에서 여러 예술 분야를 선도했던 이탈리아답게 제품에서도 그들만의 독보적인 개성은 다른 나라와 뚜렷이 구분되어 드러난다. 여기 프랑코 셀브린처럼 이탈리아 스피커 부문에서 눈에 띄는 디자이너 한 명이 있다. 다름 아닌 알레산드로 스키아비(Alessandro Schiavi)가 그 주인공이다. 인류 역사와 예술사의 한 장면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는 이탈리아는 예술과 음악, 문화에 이르기까지 층층이 쌓여온 유산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창조적인 영감을 얻으며 자랐다.
알레산드로의 스키아비는 1965년 이탈리아 우디네에서 태어나 줄곧 음악 수업을 받으면 자랐다. 처음엔 음악 학교에서 오르간, 작곡을 배웠고, 불과 열다섯 살부터 그는 엔지니어링 수업을 받으면서 음악계 진출을 위한 기초를 탄탄히 다졌다. 이후 그는 레코딩 엔지니어로서 커리어를 쌓아나갔다. 대게 브레시아나 베르가모 등지에서 활동하며 녹음 및 극장에서 녹음 엔지니어로 활동했다. 주된 음악은 바로크와 낭만파 음악들이었고, 그런 과정 속에서 그는 이탈리아의 음악적 자양분을 속속들이 흡수할 수 있었다.
디아파송은 알레산드로 스키아비 본인이 녹음한 라이브 레코딩을 모니터링하기 위해 제작하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소리의 공방이다. 더불어 브레시아의 유명 바이올린 메이커였던 친구가 있었기에 전통 클래식 악기에 대한 경험을 얻을 수 있었다. 이것이 디아파송이라는 스피커 디자인에서 커다란 모티브로 작용했으리라. 그리고 결국 1987년, 브레시아에서 그는 라이브 레코딩을 가장 감수성 넘치게 재현할 수 있는 악기 같은 스피커 제작을 목표로 디아파송을 설립했다.
디아파송의 첫 번째 스피커는 아다만테스다. 마치 소누스 파베르의 초창기 모델 일렉타 아마토르 등을 연상시키는 캐비닛 디자인은 디아파송 제작팀의 장인들이 만들어낸 걸작이었다. 뛰어난 목공 기술과 아무나 따라 할 수 없는 그들만의 유려한 곡선미는 특유의 배음을 만들어내며 이탈리아 하이엔드의 가치를 한껏 높여 놓았다. 이번에 접한 카리스(Karis) Ⅲ은 바로 디아파송의 전설적 모델 아다만테스의 다운사이징 모델이라고 볼 수 있다.
자동 조립 라인을 통해 일괄적으로 제품을 뽑아내는 대량 생산은 그들의 방식이 아니다. 마치 공방처럼 숙련된 장인들이 한땀 한땀 정성스럽게 원목을 깎고 가공해 만들어낸다. 카리스 Ⅲ만 보아도 그런 제작 방식이 그대로 눈에 보인다. 크기는 가로 19cm에 높이 28.5cm, 깊이는 26cm 정도로 작지만 뒤로 길어 동글동글 귀엽기 그지없다.
주파수 응답은 최소 65Hz에서 20kHz까지 대응하는 미니 모니터 계열. 아담한 사이즈지만 5kg 무게에 꼼꼼한 만듦새는 무척 당돌한 느낌을 준다. 설계 자체는 2웨이 저음 반사형으로 보편적이며, 공칭 임피던스가 8Ω에 능률 87dB로서 제동도 무척 수월해 앰프를 그리 가리지 않는다. 생긴 것만큼이나 예쁘고 착한 스피커다. 게다가 트위터는 2.2cm 구경 실크 돔에 11cm 폴리메틸펜틴 우퍼 탑재로 음색적으로 따스하고 유연한 특성으로 튜닝된 모델이다. 최소 임피던스도 3.3Ω 정도로 임피던스 낙폭이 크지 않아 수월한 제동이 가능하므로 앰프 선택에 있어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카리스 Ⅲ은 마치 공예품 또는 이탈리아 고급 가구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품격 넘치는 인클로저에서 쏟아져 나오는 소리는 무척 생생하고 커다란 무대를 만들어낸다. 김윤아의 ‘야상곡’을 들어보면 특히 고역 쪽이 앞으로 나서며 호소력 짙게 들린다. 미드·베이스 유닛이 작기 때문에 아무래도 고역에 치우쳐진 밸런스를 보이지만 그 고역이 매력 포인트다. 특유의 산뜻하면서 고혹적인 튜닝이 이루어져 늦가을 진한 단풍색이 깃들어 있는 듯한 시각적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중·고역의 음색은 유닛의 특성, 그리고 아름다운 인클로저의 미묘한 통울림에서 기인한다. 따라서 스탠드에 따라서도 꽤 많은 변화 양상이 포착된다. 예를 들어 알렉상드르 타로가 연주한 사티의 짐노페디를 들어보면 피아노의 잔향이 뭉게뭉게 구름처럼 떠다니는 듯 홀 톤이 풍부하게 펼쳐진다. 빽빽하게 들어찬 현대 건축물의 전경이 아닌, 듬성듬성 거리를 두고 자연스럽게 자란 나무들 사이로 난 넓은 숲속 길을 거니는 듯 시원한 공간감을 연출한다.
고역대에 비해 중역과 저역은 양감이 적어 약간 뒤로 물러나 들리는 편이다. 넓은 거실 등 탁 트인 넓은 공간보다는 서재 등 작은 방에서 듣기에 좋은 소리다. 그러나 타이밍 측면에서 날렵하며 사운드 스테이징도 사이즈에 비해 깊게 형성된다. 예를 들어 다이애나 크롤의 ‘Temptation’에서 그녀의 보컬 음색은 마치 더 어려진 듯 더 청초하고 밝게, 그리고 생생하게 들린다. 묵직하고 그윽하며 에지 있는 ATC 같은 스피커의 남성성보다는 소누스 파베르 같은 여성적 섬세함이 두드러진다.
아무래도 대편성 클래식이나 팝 음악보다는 소편성 실내악을 낮은 볼륨에서 즐기기에 무척 좋다. 앰프 또한 대출력 AB, B클래스 앰프보다는 소출력 A클래스나 싱글엔디드 증폭 방식이 카리스 Ⅲ의 장점을 더욱 부각시켜준다. 예를 들어 레오노레 피아노 트리오의 아렌스키, 그리고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트리오 등을 들어보면 한 올 한 올 피어오르는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배음이 방 안을 향기롭게 메운다. 참고로 내가 매칭해본 서너 개의 앰프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음색은 TDL 어쿠스틱스의 M88 진공관 앰프에서였다.
요즘처럼 빠른 시간 안에 새로운 모델을 출시하며 1년밖에 지나진 않은 모델이 금세 구형 취급받는 세상에서 디아파송은 특별하다. 최초 모델 아다만테스, 그리고 카리스도 그 이름 그대로다. 단지 버전만 Ⅰ, Ⅱ, Ⅲ 등으로 어쩌다 한 번 바뀌어 업그레이드 모델로 변모할 뿐이다. 새로운 모델에 대한 요구가 있다면 오랫동안 충분한 개발 기간을 거쳐 아예 새로운 모델을 내놓는다. 몇 년 전 출시한 다이내미스(Dynamis) 같은 스피커가 그 증거다. 무려 5만 유로에 가까운 플래그십 스피커는, 많은 유럽 메이커들이 OEM 등으로 그 개성을 잃어가는 요즘, 보기 드문 순수 이탈리아 스피커의 자존심을 드러내고 있다.
카리스 Ⅲ은 아다만테스의 어린 동생 격으로서 라인업 안에서 그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 디아파송 최초의 스피커이자 원류 아다만테스의 DNA를 그대로 이어받았으며 동시에 더 합리적인 가격대에 예쁘고 개성 넘치는 사운드를 들려준다. 작은 서재 안에서 진공관 앰프와 함께 클래식을 즐기기에 제격이다. 카리스 Ⅲ은 이탈리아 음악, 예술의 풍부한 자양분 위에 태어난 리틀 프린세스다.
문의 헤르만오디오 (010)4857-4371
가격 325만원 구성 2웨이 2스피커 사용유닛 우퍼 11cm, 트위터 2.2cm 재생주파수 특성 65Hz-20kHz 크로스오버 주파수 4500Hz 임피던스 8Ω 출력음압레벨 87dB/W/m 크기(WHD) 19×28.5×26cm 무게 5kg
<월간 오디오 2018년 3월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