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종학(Johnny Lee)
아직도 채 한기가 가시지 않은 3월 둘째 주의 토요일, 아주 귀한 손님을 맞이하게 되었다. 바로 바쿤을 주재하고 있는 아키라 나가이 씨가 방한한 것이다. 태릉입구역에 있는 바쿤 시청실에서 여러 애호가들과 만나 나가이 씨의 강연과 여러 가지 질의응답이 이뤄졌다. 첫 회는 나가이 씨의 강연 중심으로, 두 번째 회에서는 질의응답 중심으로 정리했다. 편의상 인터뷰 방식으로 진행하기로 한다.
오랜 기간 오디오를 제작해왔는데 왜 오디오가 필요한지 나름대로 철학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죠.
여자들의 취미 1번은 음악 감상인데, 오디오를 하는 남자는 기피 대상 1호라고 합니다(웃음). 공연장에서는 두 개의 귀로 정해진 좌석에서만 들을 수가 있습니다. 녹음은 마이크 두 개로 할 때도 있지만 보통 여러 개의 마이크를 악기에 붙이기도 하고 홀의 중앙에 설치하는 등 최적의 장소에 배치하여 음을 캐치합니다. 여러 개의 마이크로 수집된 음을 녹음 엔지니어가 믹싱한 소리가 음반에 담긴 소리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귀를 초월한 음입니다. 오디오에선 이게 원음이죠. 바쿤의 목표는 두 개의 귀로 들을 수 없는 원음 그 자체를 정확히 재현하는 것입니다. 공연은 한 번의 연주로 끝나지만 녹음을 할 때는 뮤지션들이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연주를 녹음하기 위해 수차례 연주한 것을 선택하여 음반에 담습니다. 그래서 최고의 연주를 들으려면 오디오가 꼭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오디오는 하나의 예술로 봐도 무방한가요?
아닙니다. 예술은 연주자나 레코딩 엔지니어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기서 녹음된 것을 재생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오디오는 철저하게 재생을 위한 도구입니다. 우리는 거기서 녹음된 것을 재생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일체 뭔가를 첨가하거나 빼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오디오를 만들 때 저는 일종의 의무감도 느낍니다.
개인적으로 제일 궁금한 사트리(SATRI) 회로에 대해 설명해주시죠.
지금부터 26-27년 전입니다. 당시 저는 일반 증폭 회로, 그러니까 TR이나 진공관을 사용한 방식에 큰 의문을 품고 있었습니다. 전하가 소자를 통과하는 사이에 음성 신호의 패턴이 일그러지기 때문입니다. 입력 대비 출력이 일정하면 입·출력 그래프는 직선이 되어 음성 신호가 왜곡이 없지만 소자의 특성 때문에 이렇게 만들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럼 한 번 저항을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항은 기본적으로 직진성이 좋고 왜곡이 생길 여지가 적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회로를 꾸며야 할지 당시에는 몰랐죠.
그러다 어느 순간 영감을 받은 거군요.
맞습니다. 아무튼 이 문제를 갖고 반 년간 씨름하다가 당시 나가사키에 출장 갈 일이 있어서 업무를 마치고 페리를 타고 구마모토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갑판에 서서 멍하니 있는데 갑자기 회로도가 눈앞에 선명하게 떠올랐습니다. 그래, 이런 회로로 만들면 가능할 것 같다! 그 기본은 아주 간단했습니다. 입력 신호가 들어오면 저항에서 전류로 변환하는 것이죠. 입력단의 저항값이 1이고, 출력단의 저항값이 10이면, 10배 증폭이 된다는 간단한 등식이 성립되었습니다.
순간적으로 영감이 떠오른 것이군요.
즉시 그 회로로 앰프를 만들었습니다. 제대로 동작을 하더군요. 그때 당시엔 인터넷이 활발하지 않고 PC 통신 시대였는데 자작 앰프를 선보이는 대회가 도쿄에서 열렸습니다. 그래서 제가 만든 앰프를 갖고 시연을 했습니다. 제일 먼 곳에서 왔으므로, 시연도 제일 먼저 했습니다. 그런데 워낙 소리가 좋았는지 나머지 사람들은 자기 제품을 시연하는 것을 포기했습니다(웃음). 대신 이런저런 질문이 많이 왔습니다. 그러다 누군가가 ‘아, 그것은 깨달음입니다!’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게 일본어로 ‘사토리’입니다. 거기에 착안해서 제 회로를 사트리(SATRI)라 지은 것이죠.
사트리란 이름이 거기서 기원한 것이군요.
처음엔 그 회로를 앰프에 적용했다가 나중에 CD 플레이어에도 써봤습니다. 그런데 여기엔 문제가 있었습니다. 저항을 지나가는 전류가 전원 환경에 취약했던 것입니다. 전기 사정이 나쁘면 노이즈가 타고 들어왔습니다. 이 부분을 계속 보완해서 현재엔 전원 환경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도록 진화시켰죠. 물론 CD 플레이어뿐 아니라 모든 제품에 말이죠. SCA-7500K와 이번에 소개하는 PA용 앰프인 PAE-100W는 그 최종판이라 보면 됩니다.
그렇군요.
또 하나는 이 회로를 계속 발전시켜서, 전압을 통해 들어온 음성 신호를 저항이 없이 그 신호의 전류만 사용하는 방식도 개발했습니다. 말하자면 저항조차도 거치지 않는 것이죠. 사실 통상의 방식은 입력부의 저항이 무한대이고, 출력부의 저항은 제로입니다. 저희는 그 반대죠.
그럼 어떤 이점이 있는 것이죠?
MM이나 MC 카트리지는 생산하는 전력은 비슷하지만 MC 카트리지는 낮은 전압과 높은 전류를 가집니다. 이것을 연결하면 입력 임피던스가 제로이기 때문에, MC 카트리지가 생산한 전류를 변형이나 손실 없이 그대로 증폭할 수 있습니다. 매우 심플한 과정으로 포노 앰프로 만들 수 있죠. 이 부분은 응용할 수 있는 범위가 매우 넓습니다. 사실 포노 앰프는 저희의 장점이 집약된 제품이라 봐도 좋습니다. 또 다이내믹 마이크라든가, 광 센서라든가, 특히 증폭 과정에서 일체의 왜곡이 없고 S/N비가 높기 때문에 많은 가능성이 있습니다. MC 카트리지의 경우 무려 150dB도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흥미롭습니다.
지금 사트리 회로의 특징은 저항을 통해 전류로 변환된 신호가 나중에 출력단에서 증폭된 후 게인 컨트롤이 그다음에 이어집니다. 이 부분에서도 많은 장점이 있습니다. 보통의 앰프는 볼륨을 줄일 경우 정보량이나 S/N비가 줄어들게 됩니다. 하지만 저희 제품은 볼륨이 어느 위치에 있어도 플랫한 리스폰스를 드러냅니다.
바쿤 앰프에 소스기기를 연결한다고 하면 사트리 링크가 낫다고 봐야합니까?
맞습니다. 프리앰프나 포노 앰프, DAC 등에 전류 출력이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상급기 PRE-5410 MK3의 경우 사트리 IC를 통해 10㏁의 출력 임피던스가 나옵니다. 이것을 받아들이는 쪽의 입력 임피던스는 제로이고요. 그럴 경우 두 제품이 물리적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실제로 동작은 서로 한 몸체 안에 있는 것과 같이 절연 상태가 됩니다.
전류 전송이 가능하다는 것은 큰 장점으로 보이는데 또 어떤 이점이 있죠?
바로 케이블입니다. 통상의 앰프를 긴 케이블로 연결할 때 노이즈가 발생합니다. 그 원인은 바로 전자 노이즈 때문입니다. 전류 전송은 케이블이 길어져도 노이즈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그럼 비싼 케이블을 쓸 필요가 없다는 뜻도 되는군요.
그렇죠. 실제로 사트리 링크용으로 추천하는 케이블은 75Ω 동축 케이블입니다. 가격이 비싸지 않습니다. 전류 전송은 케이블의 임피던스 값보다는 커패시턴스 값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도체의 두께는 어느 정도 영향을 받지만 금은동 같은 금속 재질의 영향을 덜 받습니다.
사트리 회로를 알아보다 보면 바이어스 전류에 대한 언급을 많이 하는데 바이어스 전류가 어떤 것인가요?
바이어스 전류의 정밀도는 사트리 회로의 정밀도의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지렛대를 상상해보지요. 1대 10의 지렛대는 이쪽에서 1m를 움직이면 축을 기점으로 반대편은 10m를 움직입니다. 그때 축이 정밀하게 고정되어 있지 않으면 10m에 오차가 생깁니다. 바이어스 전류는 바로 지렛대의 축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바이어스 전류가 흔들리지 않고 완벽하게 고정되어 있으면 정밀도가 높아집니다. 즉, 입력에 작은 신호가 들어와도 출력에서 정확하게 증폭합니다. 그러므로 일체 피드백을 걸 필요가 없죠. 사트리 바이어스 회로의 특징은 전원의 전압이나 주위 온도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바이어스 회로에서는 출력 트랜지스터의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도록 바이어스 전류를 제어하기 때문에 전원의 전압이 상승하면 바이어스 전류를 감소시키고, 출력 트랜지스터의 온도가 떨어지면 바이어스 전류를 증가시킵니다. 바이어스 전류는 늘 주변 파라미터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출력 단계의 동작이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사트리 회로의 바이어스 회로는 이런 매개변수의 변화와 상관없이 1,000,000분의 1단위의 정밀도로 바이어스 전류를 고정합니다.
제품을 만들 때 따로 튜닝은 합니까?
기본적으로 좋은 소리라는 것엔 제작자의 취향이 관여되면 안 됩니다. 만일 개입하게 되면 특정 장르는 좋을지 몰라도 다른 장르에선 해가 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정밀도를 높이는 것입니다. 음악성은 저절로 따라옵니다. 사실 바쿤 유저들이 저희 제품의 음에 영혼이 담겨 있고 마음이 치유되며 불면증도 고쳤다고 평을 합니다. 그 핵심은 바로 높은 정밀도에 있지 제 개인적인 튜닝에 있지 않습니다.
그렇군요.
또 정밀도가 높으면, 다양한 용도로 응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악기용 앰프도 가능합니다. 사트리회로연구소(SCL)를 설립하여 악기용 앰프, 프로 오디오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는데요. 실제로 몇몇 뮤지션이 제가 만든 악기용 앰프를 쓰고 좋은 반응을 보내왔습니다. 또 스튜디오 장비나 PA용 앰프, 마이크용 프리, 믹스용 제품 등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최근 바쿤 프로덕츠는 사트리회로연구소(SCL)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런칭하고 다양한 제품군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프로 오디오 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부분은 나중에 기회가 되면 소개하겠다. 2시간에 걸친 열띤 세미나는 이쯤으로 마치고, 다음 회엔 실사용자들의 질의응답을 중심으로 기사를 이어가도록 하겠다
<월간 오디오 2018년 4월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