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남
자비안의 로베르토 바를레타 씨의 조언이 하나 있다. ‘대개의 자비안 스피커들은 중간 정도의 감도를 지닌다. 이는 솔리드스테이트 앰프와 매칭이 더 좋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번 호에 깜박 잊고 시청기를 별로 출력이 높지 않은 진공관 앰프와 매칭하고 아차한 것이다. 이후 솔리드스테이트 앰프와 매칭하니 자비안 특유의 고품위한 음이 흘러나온 것이다. 이런 것이 오디오 리뷰에서 자칫하면 일어나기 쉬운 모순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런 매칭으로 고역이 어떻고 저역은 어떠하다고 논한다는 것은 더 이상한 평가가 되고 만다. 사실 리뷰어의 잘못이 아니다. 제작사에서도 이제는 그런 점에서 좀더 친절하고 자상한 가이드를 내놓아 주었으면 한다. 제작하는 사람만큼 잘 아는 경우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황당하게 권장 출력이 20W에서 200W까지로 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소리는 낼 수 있다는 것과 최적의 음악 재생력과의 차이는 크다. 위 수치의 경우라면 200W가 정답에 가까울 것이다. 자비안에서는 물론 고감도의 새로운 스피커들을 작업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고, 그렇게 되면 소출력의 진공관 앰프로도 잘 울릴 수 있을 것이다. 시청기는 4Ω에 89dB이다. 모든 4Ω 스피커는 감도가 높다 해도 울리기가 까다롭다. 개발자의 충고를 참조하기 바란다.
체코 프라하에 본거지를 둔 자비안이 국내 상륙한 지 이제 10년도 넘는다. 별로 크지도 않으면서 묵직하고 마치 차돌 같은 감성을 지닌 그들의 스피커는 마치 왕년의 B&W 801-3처럼 사용하기가 만만치 않았다. 가벼운 인티앰프나 소출력 진공관 앰프로 듣기를 시도하다가 실망하는 경우도 많이 봤다. 그래서 진중하고 아름답지만 다이내믹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라는 그런 평가도 나왔다. 그런 여러 가지 엇갈린 평가 속에 자비안은 꾸준히 국내 시장을 넓혀 이제 스피커 시장의 레귤러 멤버로 자리 잡았다. 인터넷에서 흔한 문답 ‘초보자인데 스피커를 추천해 주세요’라는 질문이 뜨면 대답에 올라오는 제품으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름이 된 것이다.
첫 제품이 수입되었을 때 들어볼 기회가 있었는데, 지금의 훌륭한 성장세를 보면 그 저력이라는 것이 실감난다. 마치 스피커로 보는 인생, 그런 것과도 이어지기 때문이다. 세상만사는 역시 실력이 우선순위이다. 테크닉이 좋은 경우는 일시적으로 반짝 주목받을 수는 있지만 오래가지는 못한다. 그런 교훈마저도 이 레이블이 상징하는 것은 아닐지.
개발자이며 경영자인 바를레타 씨는 이탈리아 북부 토리노에서 태어나 오디오 제품을 만들어 오다가 체코로 이주, 자비안을 설립하게 된다. 이것이 자비안의 감성에 이탈리아 취향이 물씬 풍기는 이유이다. 그의 제작 방법도 독특하다. 자신이 직접 모든 제품의 엔지니어링과 디자인을 전담하며, 숙련 엔지니어를 제외하고도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출신의 얀 브라벡, 그리고 몇몇 직업 뮤지션들이 제작에 참여한다. 그리고 일관된 디자인이 훼손되지 않기 위해선 오로지 단 한 명의 설계자의 손으로 완성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단 한 명이 디자인한 자동차와 여러 명의 유능한 디자이너가 조금씩 손을 댄 자동차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아름다울까요?’라고 반문하는 인상적인 사람이다. 인간의 여러 삶 중 하나는 자신이 스스로 배우고 깨달아야 한다는 것도 그의 철학. 당연히 음악적 취향도 시간에 따라 발전, 현재 듣고 있는 음악이 2년 전과는 다르다는 생각 때문에 쉬지 않고 신 모델에 힘을 쏟는다. ‘삶이란 경험과 많은 만남, 그리고 매직으로 이루어진 여행아닌가’ 라는 대목에서는 이 사람은 철학으로 음악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게 된다.
시청기는 가격대를 낮춰 보급기로 제작한 자비안의 최신 제품이다. 이전 모델인 델리지아를 업그레이드한 기종으로, 바로 이런 경우가 가격 대비 성능 면에서 유리한 편에 속할 것이다. 명문가의 하위급이지만 정통 기반이 살아 있는 데다가 다시 업그레이드가 이루어졌다면 소비자로서는 주목을 해야 할 베스트 바이 모델이 되기 때문이다.
이 스피커는 이탈리아에 있는 40년 전통의 제작사에서 제조한 오디오 바를레타 미드·우퍼 2기와 실크 돔 트위터를 장착했는데, 3웨이가 아닌 2.5웨이로 설계를 했다. 전작에 비해 댐핑재, 보강재가 증가했고, 저역 포트 아래에는 모래가 상당 부분 채워져 있기도 하다. 당연히 중·저역이 더 타이트해졌으며 저역도 깊어졌다. 다소 가격대가 높았던 자비안이 저가격대로 회심의 모델을 하나 내놓은 것 같다.
수입원 (주)다비앙 (02)703-1591 가격 180만원 구성 2.5웨이 3스피커 인클로저 베이스 리플렉스형 사용유닛 우퍼(2) 15cm, 트위터 2.6cm 재생주파수대역 47Hz-20kHz 크로스오버 주파수 2500Hz 임피던스 4Ω 출력음압레벨 89dB 권장 앰프 출력 30-150W 크기(WHD) 18×90×23cm 무게 14.5kg
<월간 오디오 2018년 5월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