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는 3월 초의 어느 토요일, 유독 뜨거운 열기를 자랑하는 공간이 하나 있었다. 바로 태릉입구역 부근에 소재한 바쿤매니아 시청실이다. 바쿤을 주재하는 아키라 나가이 씨의 방한을 계기로 실 사용자들이 모여서 뜨거운 관심과 질문을 했다. 무려 두 시간이 넘어도 그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그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서 기사로 요약했다.
몇몇 업체들이 전류 전송의 장점에 눈을 뜨고 있는데요. 다른 전류 전송 기기와 매칭은 가능한가요? 이를테면 크렐의 CAST 방식이든가 에소테릭의 최신 플래그십에 장착되는 ES-Link 등.
저희 SATRI-LINK는 1mA, 10V 이내로 신호를 받도록 설계되었습니다. 크렐 CD 플레이어의 매뉴얼을 살펴보니 스펙에 관한 아무런 언급이 없더군요. 에소테릭의 최신 기종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릅니다. 타사의 기기는 RCA 사용을 권장합니다.
전압(RCA) 출력과 전류(BNC) 출력의 바이어스 안정화 시간에 차이가 있습니까?
기본적으로 RCA(전압), BNC(전류) 모두 바이어스 안정화에 똑같은 시간이 걸립니다. 다만 음악 신호가 들어오면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습니다. 앰프의 전원을 켰을 때는 볼륨을 제로에 놓는 것을 추천합니다.
제작자가 생각하는 바쿤의 최고 매칭 스피커는 뭐가 있습니까?
통상의 앰프는 입력 신호의 크기와 네거티브 피드백의 양에 따라 스피커 구동력이 달라집니다. 바쿤은 입력 신호의 영향을 받지 않고, 일체 피드백을 쓰지 않아서 일정한 구동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어떤 스피커를 쓰던 관계가 없습니다. 저희가 만든 32면체 SATRI 스피커를 좋아합니다만 꼭 이것에 연연하지 말고 다양한 스피커를 쓰십시오.
더 콤팩트한 사이즈의 DAC 개발 계획은 없는가요?
저희 DAC는 아날로그 회로를 디스크리트 방식으로 만듭니다. 집적된 칩 SATRI-IC를 통상의 DAC와 비교하면 부품의 수가 10배 가량 더 많습니다. 콤팩트한 사이즈를 만들고자 한다면 OP 앰프를 사용해야 하는데, 디스크리트 방식이 현재 저희의 모토입니다(웃음).
그럼 반대로 아주 고급형 DAC를 만들 계획은 있는지요?
아직까지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100PPM(백만분의 1)의 정밀도를 달성한 회로를 보유하고 있지만, 향후 DSD 파일과 32비트 파일에 대한 표준이 정립되면 고려하려고 합니다.
바쿤의 포노 앰프에 추천할 만한 카트리지가 있습니까?
저희 포노 앰프는 입력 임피던스가 제로에 가깝습니다. 그러므로 매우 미세한 신호에도 대응합니다. 카트리지에서 나오는 신호를 변형이나 손실 없이 증폭하기 때문에 저렴한 MC 카트리지와 비싼 카트리지의 차이가 적은 것이 우리 제품의 특징이기 때문에 굳이 비싼 카트리지를 쓰라고 권하고 싶지 않군요.
에이징 전후의 소리가 다른데, 설계 시 이 부분을 미리 파악하고 있는지요?
에이징은 결국 콘덴서의 문제라고 봅니다. 저희는 산요에서 만든 OS 콘덴서를 세계 최초로 오디오에 사용하였는데 특성이 굉장히 우수합니다. 이상적인 콘덴서에 가깝죠. 이 회사의 고문 역할도 맡고 있는데요, 100시간 정도 통전 후에 스펙의 수치가 나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사실을 처음에는 산요에서도 믿지 않았는데 실험을 거친 후 동의하게 되었습니다(웃음). 전해질 콘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판에 납땜 시 강한 열로 인해 내부의 물질이 손상을 입게 됩니다. 이것은 일정 시간 통전을 하면 원상 복구가 되는데, 약 100시간이 소요됩니다. 저희는 회로를 완성한 후에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서 콘덴서가 정상화되었을 때의 수치를 기준으로 오디오를 설계합니다. 회로 설계가 완료되면 프로토타입 PCB를 2-3회 만들어서 테스트하고 오류를 보정하고 있습니다.
어느 애호가는 세 대의 바쿤 앰프를 쓰고 있는데, LED의 밝기가 조금씩 달라서 이 부분에 대해 설명을 해달라고 하는군요.
PRE-5410 MK3, EQA-5620 MK3, DAC-9730 등은 한 개의 LED로 빨간색과 파란색을 켤 수 있습니다. 이것은 CPU로 제어합니다. 그러나 다른 앰프는 파란색만 켜지는 LED 램프를 씁니다. 종류가 다른 LED 램프를 쓰기 때문에 밝기를 완벽하게 조절하는 것이 좀 복잡합니다.
최근 출시한 신형 SCA-7500K는 전류 전송을 지원하지 않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제작 단가를 낮추고 더 대중적인 제품을 선보이기 위해 전류 전송이 생략되고, RCA 단자만 있는 모델로 출시했습니다.
바쿤 제품의 외관 디자인은 누가 합니까?
제가 디자인합니다. 여기서 잠시 노브에 대해 설명하죠. 처음에는 알루미늄을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손님 중 한 분이 맹인이었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 아침에 음악을 틀려고 노브를 만지는데 너무 차가워서 깜짝 놀랐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고심 끝에 다양한 소재를 살피다가 베이클라이트로 결정했습니다. 처음에는 둥근 봉을 재료로 사용할까 했는데, 가격은 저렴했지만 나이테처럼 종이의 문양이 나타나고, 중심부(배꼽)만 변색이 되더군요.
그럼 어떤 방식으로 극복했죠?
종이를 차곡차곡 쌓고 페놀 수지를 점착해서 만드는 두꺼운 베이클라이트 판에서 떼어내어 CNC 가공하는 무척이나 번거로운 방법을 동원했습니다. 사실 베이클라이트는 알루미늄보다 10배나 더 비싼 소재입니다. 처음에는 오렌지색을 띠다가 오래 쓰다 보면 투명한 와인 색깔로 변합니다. 굉장히 예쁜 빛이 나오니 즐겁게 사용하길 바라겠습니다.
이왕이면 알루미늄 블록 케이스를 사용하여 진동에도 강하게 하면 어떨까요? 개발에 참여한 동일 브랜드의 한국 업체에서는 알루미늄 블록 케이스를 사용하는데요.
개발비를 받고 개발해준 것은 맞지만 약 2-3년 전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관여하지 않고 있습니다. 추구하는 바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더 이상 함께할 것 같지가 않습니다. 알루미늄 블록으로 만들면 기판에 발생하는 맴돌이 전류의 흐름을 방해하여 전류의 손실이 생깁니다. 다이내믹스가 떨어집니다. 일본의 <무선과 실험> 잡지에서 부품의 진동에 관해 실험을 해보았는데, 음질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저희가 사용하는 표면 실장 부품은 작고 가벼운데, 납땜으로 단단히 고정되어 있습니다. 진동의 영향을 적게 받죠. 우리 제품 중 AMP-7511A의 기판을 자세히 보면 놀라실 텐데요, 아주 작은 구멍을 1,000개 이상 뚫어서 기판의 임피던스와 진동, 발열을 줄이고 있습니다.
다른 회사에서 왜 사트리 회로를 쓰지 않나요?
20년 전쯤에 여러 일본 회사에 가서 데모를 한 적이 있습니다. 오디오는 예쁜 소리가 나면 되기 때문에 이렇게 좋은 회로가 필요 없다고 하더군요. 한국의 대기업도 만났습니다. 그때 돌아온 답이 이것입니다. ‘우리는 100W 앰프를 1달러에 만들 수 있습니다. 얼마에 만들 수 있습니까?’ 아날로그 방식의 디스크리트 회로를 추구하는 저희와 콘셉트가 완전히 다른 것이죠. 예전에 오디오 테크니카에서 제 회로에 관심을 갖고 가라오케 앰프에 쓴 적은 있습니다.
느닷없이 프로용 앰프 PAE-100W, 50W를 만들게 된 경위가 궁금합니다.
바쿤 프로덕츠는 원래 바쿠 프로덕츠라는 녹음 스튜디오에서 출발하였습니다. 하이파이 오디오 제조로 전향하면서 바쿠에 운(運)을 붙여서 바쿤 프로덕츠라는 회사명이 되었습니다. 몇 년 전부터 꾸준히 마이크, 마이크 프리, 악기용 앰프 등 녹음, 공연 장비를 개발하고 프로 오디오 시장에 진출하고자 사트리회로연구소(SCL) 브랜드를 설립했습니다. 일본에서는 PA쪽에 문제가 많습니다. 이것은 실제 뮤지션들이 불평하는 부분입니다. 자신의 목소리가 이상하게 나오는 것을 싫어합니다. 심지어 어떤 뮤지션은 너무 심한 왜곡 때문에 아예 앰프를 사용하지 않고 공연을 했다고 하더군요. 뮤지션들이 훨씬 더 정밀한 소리를 추구합니다. 뮤지션들과 테스트를 했는데, 10PPM(십만분의 1초) 앰프와 100PPM(백만분의 1초) 앰프의 차이를 청각으로 쉽게 분간하더군요. 저희는 정밀도가 높고 정확한 음을 냅니다. 그러므로 하이파이뿐 아니라 PA쪽에서도 통용이 될 수 있습니다. 엠메 보이스가 일본 공연을 할 때 PAE-100W를 쓴 적도 있는데 평가가 매우 좋았습니다. 유명 기타리스트에게 기타 공연용 앰프를 납품했는데, 앰프계의 페라리라는 평가를 하더군요. 도쿄의 프로 오디오 아카데미, 도쿄의 녹음 스튜디오에 납품하였습니다. 프로용 오디오 시장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갖고 있었기 때문에 개발을 한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커스텀 오더 판매를 해 왔는데요, 이번 한국 방문 시에 한국의 업체로부터 스튜디오 모니터 스피커용 앰프 개발을 주문받았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프로용 오디오 시장에 진출을 하게 되었습니다.
출시 예정인 신작 PRE-5430 프리 앰프에 대해서도 소개해주시죠.
AMP-7511A와 AMP-5521을 사용하는 분들의 요청이 있었습니다. 상급기 PRE-5410 MK3은 너무 비싸고 PRE-7610 MK3은 크기가 달라서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크기는 AMP-7511A와 같습니다. 너비도 35cm로 이들과 동일합니다. 이들 앰프와의 매칭도 고려했습니다. PRE-5410 MK3은 CPU가 제어하는 120스텝 디스크리트 회로 볼륨이고, LED 디스플레이가 장착되어 있습니다. 또 전류 전송 회로에 SATRI-IC를 사용하여 출력 임피던스가 수십 ㏁입니다. 인터 케이블이 아무리 길어도 노이즈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저희 기술의 집합체입니다. 그러나 신형 PRE-5430은 CPU 제어 디스크리트 볼륨을 23스텝 고정밀 금속피막저항 어테뉴에이터로 대체하는 등 메인 PCB 회로의 정밀도는 높이면서도 호화로운 기능을 생략하여 낮은 가격이라는 두 가지를 만족시키려고 기획했습니다.
사실 2시간 가량의 세미나와 또 2시간이 넘는 질의응답. 그래도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어떤 질문이든 충실하게 답해준 나가이 씨에게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감사를 표한다. 자신의 제품과 기술에 대한 자부심과 뜨거운 열정은 향후 바쿤의 신작들에게 큰 기대를 하게도 만든다. 여러모로 의미가 깊은 자리였다고 생각한다
<월간 오디오 2018년 5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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