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종학(Johnny Lee)
수많은 브랜드를 만나면서 한 가지 느낀 것은, 오랜 역사와 명성을 지닌 브랜드일 경우, 그 회사를 대표하는 모델이 있다는 것이다. 마치 농심 하면 신라면, 동아제약 하면 박카스를 떠올리는 식이다. 그럼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앰프 메이커 오디오 아날로그는 뭐가 얼굴 마담일까? 바로 푸치니다. 그렇다. 동사가 20년 전에 창립할 때, 바로 데뷔작이 푸치니였고, 이 제품의 성공에 고무되어 브랜드가 함께 성장한 것이다. 그러므로 20년이 지난 지금, 푸치니 애니버서리가 나온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 하겠다.
비록 8Ω에 채널당 80W를 내는 인티앰프지만, 상당히 정공법으로 만들었다. 출력만 따져보면 이것은 4Ω에 160W를 내고, 2Ω으로 내려가면 무려 300W를 낸다. 다시 말해, 메이커에서 2Ω까지 커버하겠다고 밝혔다는 것은, 이른바 능률이 낮은 스피커도 충분히 구동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그런 면에서 스피커 매칭에 무척 자유롭다.
바로 이 부분을 증명이라도 하듯, 볼륨단에 네 개의 커브를 제공한다. 즉, 스피커의 감도에 따라 볼륨단을 조정하는 값을 선택하도록 한 것이다. 만일 감도가 높을 경우, 처음부터 큰 소리가 나올 수 있고, 그 반대 상황도 예견이 된다. 이 부분을 고려한 것은 높이 평가하고 싶다.
동시에 듣게 되는 CD 플레이어는 크레셴도라는 모델이다. 디지털부는 정평이 있는 제품을 가져다 쓰면서, 아날로그부에서 한껏 솜씨를 발휘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CD 트랜스포트는 티악의 CD-5010B 메커니즘을 채용했다. 여기에 DAC는 TI 사의 24비트/192kHz 사양의 칩을 동원했다. 델타 시그마 방식의 아키텍쳐다. 내부 배선재는 순도가 높은 7N OCC를 채용한 바, 튼실한 전원부와 함께 음질에 대한 믿음을 높이고 있다. 에어테크의 기술이 대거 포함된 것도 특징.
한편 이와 매칭되는 스피커는 다인오디오의 익사이트 X44. 사실 톨보이 스타일로 꽤 사이즈가 크다. 20cm 구경의 우퍼가 두 발이나 하며, 본격적인 3웨이 사양이다. 감도는 4Ω에 89dB. 실제로 푸치니와 물려보면 별로 힘들어하는 기색이 없다. 음색 자체도 자연스럽고 또 다이내믹해서, 다양한 장르를 들을 때 유리하다고 본다. 덴마크 스피커와 이탈리아 앰프의 만남은 이래저래 재미있는 조합이다. 차가운 덴마크와 뜨거운 이탈리아. 냉정과 열정 사이라는 책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첫 곡은 안네 소피 무터가 연주하는 사라사테의 치고이네르바이젠. 일단 바이올린의 두께가 얇거나 위태롭지 않다. 적절한 볼륨감을 갖고, 힘차게 약동한다. 초반에는 천천히 시작했다가 점차 다이내믹해지는 구성으로, 특히 강한 호소력을 가져야 하는데, 이 부분의 재생에 별 무리가 없다. 약간 진한 맛의 다인오디오는 이 부분에서 확실히 강점을 갖고 있다. 절정에서 몰아칠 때의 에너지가 일품으로, 묵은 체증이 확 내려가는 느낌이다. 중간중간 더블 스토핑을 하고, 뜯고, 밀고, 당기는 다양한 기교가 현미경으로 관찰하듯 세밀하게 표현된다.
이어서 로스트로포비치 연주의 슈베르트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2악장. 다소 풍윤한 울림이다. 아날로그 전성기의 데카 녹음인지라 약간 히스 소리도 들리는데, 별로 거슬리지 않는다. 의외로 피아노의 울림이 투명하고 맑다. 잔향도 깊다. 이런 우아한 음을 배경으로, 비르투오소의 솜씨가 한껏 발휘된다. 현의 텐션이 살아 있고, 길게 혹은 짧게 긋는 움직임이 명료하게 포착된다. 약간 까칠까칠한 부분도 죽이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생동감이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카우보이 정키스의 ‘Blue Moon Revisited’. 어느 성당에서 녹음한 곡으로, 비록 장비는 허접하지만, 풍부한 홀 울림이 잘 반영되어 마치 꿈꾸는 듯한 사운드를 선사한다. 나른한 베이스 라인을 따라 감촉이 좋은 기타가 나오고, 읊조리듯 허심탄회하게 부르는 보컬은 몽환적이기까지 하다. 눈을 감고 들으면 서서히 달이 떠오르는데, 푸른빛을 환하게 내는 듯하다. 냉정과 열정 모두를 담아내고, 그 안에 내재한 다양한 감성들을 일체 훼손 없이 내는 조합이다.
수입원 태인기기 (02)971-8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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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오디오 2018년 6월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