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종학(Johnny Lee)
브리티시 사운드의 터줏대감이라 할 수 있는 크릭의 신작을 만났다. 모델명은 에볼루션 100A. 형번 앞에 에볼루션이란 단어가 들어간 것을 봐서 공을 많이 들인 것 같다. 자세한 내용을 살피기 전에, 우선 외관을 짚고 넘어가자. 아주 예전의 모델은, 그야말로 심플 그 자체이다. 검은색 박스에 노브 몇 개가 부착된 게 고작이었다. 단, 음이 괜찮아서, 또 가격도 저렴해서 꽤 많은 화제가 있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매우 수려하고, 맵시가 좋은 디자인으로 탈바꿈했다. 하지만 출력을 너무 높이거나, 사이즈를 키우는 따위의 행동은 삼가고 있다. 후미진 골목길에 숨은 맛집으로, 내부 인테리어는 새로 했지만, 가게 자체의 전통은 충실히 지켜가는 스타일이다. 매장을 넓히거나, 종업원을 여럿 고용하는 등의 행위는 일체 없는 셈이다.
프런트 패널을 다소 두툼하게 하고, 노브의 만듦새 등 여러 면에서 장족의 발전이 있지만, 여전히 가격적인 경쟁력은 지키고 있다. 또한 오랫동안 갈고닦은 실력이 어디 갈까? 참 지속적인 진화가 이뤄지고 있다. 이 부분이 크릭을 구매하는 최대의 미덕이 아닐까 싶다. 본 기의 미덕을 덧붙여 소개한다면, 바로 쓸데없는 기능을 제거한 것이다. 예를 들어 LP를 따로 즐길 여력이 없는 분에게 굳이 포노단이 필요 없다. 반대로 LP만 듣는 이에게 스트리밍 서비스는 의미가 없다. 이 부분에서 동사는 기본형으로 튼실한 플랫폼을 만든 후, 고객의 취향에 따라 옵션으로 추가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그게 세 가지나 된다.
첫째는 포노단 옵션. 동사는 이 포노단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하긴 오랜 내공을 가진 만큼, 이 부분에서도 상당한 노하우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둘째는 라디오. 즉, FM과 AM을 모두 커버하는 쪽이다. 사실 그냥 FM을 틀어놓고 음악을 즐기는 분들도 꽤 있기 때문에, 이 경우 별도의 튜너를 사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참고로 이번 버전은 AMBIT 튜너 모듈이 포함된 제품이다. 셋째는 DAC/블루투스/FM 라디오 모듈이다. 즉, 디지털 소스쪽에 관심이 많은 분들을 위한 제안인 것이다. 단, 이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고, 그럼 본 기의 내부에 따로 장착해준다.
이런 철저한 실용주의는 전력 소비에서도 나타난다. 대기 전력에서도 불과 20W 이하만 쓰기 때문이다. 이게 말이 되는가 싶지만, 이 부분에서 크릭은 과감한 선택을 하고 있다. 동사의 시니어 엔지니어로 있는 데이빗 갬블 씨가, 말 그대로 갬블(Gamble)을 했다. 바로 클래스G 방식의 도입! 이것은 클래스D보다 더 효율성이 높은 방식으로 생각하면 된다.
이를 위해 그가 고른 것은 산켄사의 STD03이라는 TR이다. 이것을 출력부에 투입하고 있다. 그리고 두 개의 스테이지로 나눠서 운용하고 있다. 첫 번째는 25W 범위 내에서 쓰는 것이다. 당연히 소비 전력이 낮을 수밖에 없다. 또 대부분의 음성 신호는 이 안에서 커버된다. 이어서 대출력이 필요할 경우, 스테이지 투로 넘어가서, 100W 이상 커버한다. 이것은 8Ω에 그렇다는 것이고, 4Ω의 경우 170W까지 낸다. 즉, 소비 전력이나 쓸 데 없는 아이들 전류의 낭비를 피하면서, 최대한 음질 중심으로 설계한 것이다.
또 두 개의 스피커를 동시에 걸어서, 그때 그때 선택할 수 있는 A/B 스위치의 제공도 반갑다. 이 경우, 경향이 다른 두 개의 스피커를 걸어서 요긴하게 선택해서 쓸 수 있다. 이 부분은 다른 하이파이 회사들도 고려했으면 하는 사항이다. 본 기의 시청을 위해 스피커는 데피니티브의 D11, CD 플레이어는 플리니우스의 마우리를 각각 동원했다.
첫 곡은 앙세르메 지휘, 차이코프스키의 호두까기 인형 중 행진. 일단 매우 투명하다. 예전에 다소 뿌연 느낌이 다 지워지고, 일체 군더더기가 없다. 빠른 반응과 적절한 펀치력으로 승부해온다. 단, 스피커의 성격상, 브리티시 스피커와 물렸을 때의 음과는 좀 다르다. 약간 화려하면서 밝다. 전 대역의 밸런스도 괜찮다. 약간 밀도감이 있는 중역을 원한다면 브리티시 계열로 방향을 틀면 된다.
이어서 오스카 피터슨 트리오의 ‘You Look Good To Me’. 제법 밑으로 뻗는 저역이 인상적이다. 스네어를 긁는 브러시의 질감이나 피아노의 영롱한 느낌이 잘 살아 있고, 세 개 악기의 포지션도 정확하다. 스틱으로 심벌즈를 두드릴 때의 화려한 음향은, 확실히 크릭의 음이 더 진화하고, 또 밝아졌다는 느낌을 준다.
마지막으로 헬렌 메릴의 ‘You'd Be So Nice To Come Home To’. 60년이 넘는 옛날의 모노 녹음. 그러나 어둡거나, 불투명하지 않다. 특히, 진한 허스키의 음색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보컬을 중심으로 뒤에 여러 악기가 가지런히 정렬해 있는 모습도 보인다. 중간에 나오는 클리포드 브라운의 솔로는 박력 만점. 크게 트집을 잡을 수 없는 음이고, 확실히 엔트리 클래스를 넘어서고 있다.
수입원 다웅 (02)597-4100
가격 280만원(AMBIT 튜너 모듈 포함) 실효 출력 110W(8Ω), 170W(4Ω) 아날로그 입력 RCA×4, XLR×1 아날로그 출력 RCA×1 게인 33.3dB(×46) 입력 감도 650mV 출력 임피던스 0.05Ω 이하 THD 0.002% 이하 S/N비 102dB 이상 크로스토크 -80dB 튜너 지원(FM/AM) 헤드폰 출력 지원 크기(WHD) 43×6×28cm 무게 9kg
<월간 오디오 2018년 7월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