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장현태
오디오파일을 위한 고음질 레이블은 다양하지만, 최근 온라인을 통한 디지털 음원이 대중화되면서 음반을 통해 만날 수 있는 레이블들이 많이 축소된 느낌이다. 하지만 여기 클래식 부분에서 오랜 시간 동안 꾸준히 자리매김한 익숙한 레이블들의 신보들을 통해 과거의 명성을 되새겨 보고자 한다.
마린스키 레이블을 통한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와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의 차이코프스키 호두까기 인형 전곡 앨범은 이번이 두 번째 앨범이며, 교향곡 4번을 보너스로 함께 담고 있다. 마린스키 오케스트라는 어느 교향악단보다 차이코프스키의 곡들을 많이 연주해 왔고, 호두까기 인형은 연말 단골 프로그램이었기에 2015년 녹음은 과거 버전보다 더욱 기대되는 연주다. 누구보다 차이코프스키 발레곡에 정평이 있는 게르기예프인 만큼 이번 녹음의 완성도는 더욱 뛰어나다. 지나친 극적인 표현들보다는 관현악을 위한 연주 중심의 해석이며, 절정에 다다른 게르기예프와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의 완벽한 호흡을 통해 어느 때보다 화려한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돋보인다. 또한 보너스로 수록된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4번도 놓칠 수 없는 명연이다. 특히 1악장에서 교향곡 6번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하는 철저한 운명적 해석은 압권이며, 어느 때보다 비운의 성향을 만날 수 있는 장엄한 곡으로 해석되어 있다. 반면 4악장은 숨 쉴 틈을 주지 않고 몰아붙이는 강렬한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단번에 몰입하게 된다. 무엇보다 멋진 연주를 고스란히 잘 담아낸 음질도 빼 놓을 수 없는데, DSD 음원의 SACD 음반으로 고음질 사운드를 통해 더욱 명료하고 디테일한 오케스트라의 움직임을 만끽할 수 있다.
LSO에서 최근 현악 앙상블 팀의 고음질 SACD 음반을 자주 소개하고 있다. 관현악 음반들과 달리 현악 앙상블을 위한 새로운 곡들의 소개는 또 다른 재미를 부여하고 있다. 이번 신보에서는 가장 영국적인 실내악의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는 작품들로 가득하다. 바로 영국을 대표하는 3명의 작곡가인 에드워드 엘가와 본 윌리엄스, 벤자민 브리튼의 곡들을 연주해 주고 있다. 세련된 현악기들의 앙상블이 돋보이는 곡인 엘가의 ‘서주와 알레그로’를 시작으로, 영국의 민속 음악의 색이 짙은 본 윌리엄스는 ‘토마스 탤리스 주제에 의한 환상곡’으로 이어지며, 마지막 곡은 1937년에 11개의 변주곡으로 작곡된 벤자민 브리튼의 ‘프랑크 브리지 주제에 의한 변주곡’이다. 워낙 잘 알려진 곡들이어서 주요 테마들이 귀에 익숙하며 친근감이 느껴진다. 바이올리니스트 로만 시모빅이 이끄는 LSO 현악 앙상블이 연주하고 있으며, 화려함보다는 영국 민요풍의 목가적인 서정성이 돋보이는 연주로 만날 수 있어, 기존에 자주 들어왔던 곡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해석과 연주로 만날 수 있다. 오히려 가장 영국적인 해석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부담 없이 쉽게 다가오는 연주다. 2016년 2월 런던 바비칸 홀 실황 녹음으로, 고음질 SACD를 통해 5.1 멀티채널과 스테레오 녹음을 모두 만날 수 있다.
니콜로 파가니니의 바이올린과 기타를 위한 소나타의 첫 녹음을 담았던 음반이 재발매되었다. 일명 루카 소나타로 불리는 이 곡은 젊은 시절 파가니니가 이탈리아 루카 지방에 머물면서 쓴 자유로운 형식의 소품들로, 파리 국립 도서관에 보관되어 오다가 발견되어 파가니니 탄생 200주년 기념행사에서 연주되어 처음 음반으로 소개되었다. 이 앨범에는 루카 소나타 Op.1, 2, 4, 5, 6번을 수록하고 있으며, 바이올리니스트 루이지 알베르토 비앙키와 기타리스트 마우리치오 프레다가 연주하고 있다. 특히 파가니니 곡의 스페셜리스트로 불리는 루이지 알베르토 비앙키는 바이올린 연주가이자 지휘자이며, 비올라 연주자로 출발해 바이올리니스트로 더욱 이름을 날렸고, 파가니니 곡에 남다른 애착과 주법을 연구한 연주가이기도 하다. 이 음반은 1985년 이탈리아 제노바의 다이내믹 스튜디오에서 최초로 녹음했던 음원을 2016년에 새롭게 SACD로 재발매한 것이다. 뛰어난 디지털 리마스터링 기술을 통해 마치 LP의 질감으로 유혹하듯 자연스럽게 리마스터링되어 있으며, 철저히 아날로그적인 성향을 강조한 결과물로, 고음질 리마스터링의 새로운 묘미를 선사한다. 다이내믹 레이블의 오랜 노하우와 사운드 경험이 만들어 낸 선물이라 할 수 있다. 글 | 장현태
차이코프스키
<호두까기 인형 & 교향곡 4번>
발레리 게르기예프(지휘)
마린스키 오케스트라
MAR0593
연주 ★★★★★
녹음 ★★★★★
본 윌리엄스
<토마스 탤리스 주제에 의한 환상곡>
브리튼
<프랑크 브리지 주제에 의한 변주곡>
엘가
<서주와 알레그로>
로만 시모빅(지휘)
LSO 현악 앙상블
LSO0792
연주 ★★★★★
녹음 ★★★★★
파가니니
<바이올린과 기타를 위한 루카 소나타>
루이지 알베르토 비앙키(바이올린)
마우리치오 프레다(기타)
CDS043SA
연주 ★★★★★
녹음 ★★★★★
<월간 오디오 2017년 2월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