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월간오디오
최근 하이파이 오디오 시장에 전 세계 수많은 오디오 브랜드들이 포터블·거치형 헤드폰 앰프를 경쟁적으로 출시하고 있다. 하나의 인티앰프 속에 부가적으로 헤드폰 앰프를 포함시키는 구성이 일반적이었다면, 여러 크기의 독립적인 헤드폰 앰프 구성 역시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헤드폰 앰프의 트렌드 역시 크게 변화하고 있다. USB DAC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크게 부각되고 있는 것. 헤드폰 앰프 자체의 스펙도 크게 올라갔지만, PC 파이나 데스크 파이를 위한 PCM 32비트/384kHz와 DSD 128/256 같은 고음질 음원에 대한 대응 역시 주요 스펙으로 부각되고 있다. 그만큼 고 해상력의 헤드폰에 대한 반응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고, HRA로 대표되는 고음질 음원의 대중화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하이파이 오디오 제품이 엔트리에서부터 하이엔드로 넘어가면서 회로, DAC, 앰프 부, 섀시, 케이블 등 모든 부분에서 물량 투입하는 것처럼, 플래그십 헤드폰 앰프 역시 이런 요소들을 그대로 포함시키고 있다. 스펙은 어느 정도 평준화되었고, 이제는 고음질 음원을 얼마나 손실 없이 전달하느냐가 승부수이다. 그러려면 역시 물량 투입이 최선인 것이다. ‘사운드를 위해서는 작은 것 하나까지도 모든 것을 최상으로’, 소니에서 이번에 출시한 시그니처 시리즈 역시 이런 플래그십 모토를 가지고 탄생한 라인업이다. 지금까지 시그니처 시리즈의 NW-WM1Z 워크맨과 MDR-Z1R 헤드폰을 소개했는데, 이제 마지막으로 TA-ZH1ES 거치형 헤드폰 앰프를 다뤄볼 차례이다.
TA-ZH1ES는 역시 시그니처 시리즈이자, 소니 최초의 거치형 헤드폰 앰프로 큰 기대를 모으고 있는 제품이다. 이전 PHA 시리즈로 포터블 헤드폰 앰프로서 큰 실력을 보여주었는데, 이제는 플래그십 거치형 제품이니 그야말로 소니의 진짜 실력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PHA 시리즈의 제품과는 완전히 다른 디자인 콘셉트를 가지고 있는데, 하이파이 오디오의 하프 사이즈 인티앰프를 보는 듯한 안정적인 디자인 구조를 따르고 있다.
디자인은 소니답게 미려하다. 지금까지 본 헤드폰 앰프 중에서 가장 멋진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 기존 헤드폰 앰프들이 가격대에 비례하지 못한 투박한 모양새로 단순히 기능적인 면모만 강조했다면, 소니의 TA-ZH1ES는 한눈에도 고급미가 느껴질 만큼 굉장히 유려한 마감과 질감을 담아내고 있다. 블랙 톤의 알루미늄 섀시와 전면 및 상단 디자인은 그야말로 일품인데, 21×6.5×31.4cm(WHD)의 크기 속에서도 ‘소니 스타일’이 확실히 묻어난다.
TA-ZH1ES의 실제 섀시 구조를 보면 NW-WM1Z 워크맨이나 MDR-Z1R 헤드폰처럼 조합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시그니처 시리즈가 전체적으로 진동 제어에 많은 신경을 쓴 듯한 모습인데, 역시 하이엔드 사운드의 가장 기본은 진동 제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섀시 분해도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데, 상단 플레이트, 월, 프레임과 빔, 그리고 베이스 플레이트로 세분화되어 지속적으로 전달되는 미세한 진동들을 잡는다. 이런 섀시 구성을 FBW라 부르며, 크게 프레임(Frame), 빔(Beam), 월(Wall)로 구성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알루미늄 블록을 절삭 가공한 월의 두께가 상당한데, ㄷ자 프레임의 얇은 섀시로 구성된 헤드폰 앰프들과는 그야말로 차원이 다르다.
디자인의 포인트를 주는 타공 패턴의 상단 플레이트는 특별하게 설계되어 있는데, 공진 억제를 위해 알루미늄과 철을 조합, 이중 구조로 완성되어 있다. 바닥 면의 베이스 플레이트 역시 고강성과 저중심 설계를 기본으로 이중 구조를 보여주고 있는데,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진동 제어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탄탄한 섀시 구성을 기본으로, 앰프 구성 역시 새롭게 디자인하였다. D.A 하이브리드 앰프라고 이름 붙이고 있는데, 디지털 앰프와 아날로그 앰프의 장점만을 영리하게 결합한 구성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기본적으로 S-Master HX 디지털 앰프를 중심에 두고 있지만, 고 출력 시 MOSFET에 발생하는 오차를 아날로그 회로로 보정한다는 것이 기술의 핵심이다. 좀더 쉽게 이야기하면 왜곡된 파형을 반대 파형으로 상쇄시켜 최종적으로 이상적인 사운드를 완성한다는 것인데, 얼핏 노이즈 캔슬링의 이론과 비슷한 이미지들이 그려진다. 결국 최종적으로 ‘얼마나 왜곡 없는 사실적인 소리가 나오는가’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실제 엔지니어들도 이 부분에서 많은 고민과 노력을 거쳤다고 하는데, 완성까지는 무려 3년이나 걸렸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소니 사운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풀 디지털 앰프 S-Master HX 역시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되었다. 무려 PCM 32비트/768kHz, DSD 네이티브 22.4MHz의 음원을 지원한다는 것인데, 현존하는 최고 사양이 아닐까 생각된다. 출력 역시 대폭 파워업되어서 언밸런스 300mW(32Ω), 밸런스 1200mW(32Ω)를 만들어내고 있다. 참고로 기존 PHA 시리즈 헤드폰 앰프에는 S-Master HX가 포함되어 있지 않았고, NW-WM1Z 워크맨의 출력이 언밸런스 60mW(16Ω), 밸런스 250mW(16Ω) 수준이다.
소니의 디지털 기술을 확인할 수 있는 DSD 리마스터링 엔진과 DSEE HX, DC 페이즈 리니어라이저 역시 포함되어 있다. DSD 리마스터링 엔진은 FPGA를 활용하여 모든 PCM 신호를 DSD 11.2MHz로 변환시키는 것인데, 그 감각이 굉장히 훌륭하여 왜곡 없는 자연스러운 무대를 만들어준다. 이런 음질 강화 기능들이 묘한 이질감과 왜곡된 감각을 선사하여 기피할 때가 많은데, 소니의 DSD 리마스터링 엔진은 주력으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실제 DSD 음원의 자연스러움과 깊이감을 전해준다. DSEE HX(스탠더드·여성보컬·남성보컬·스트링스·퍼커션)와 DC 페이즈 리니어라이저 역시 재미있게 활용할 수 있는데, 설정에 따라 음색이 제법 바뀌니 취향이나 음악에 따라 선택하면 될 것이다. 참고로 DSEE HX는 일반적인 음원을 업스케일하여 32비트/384kHz 수준으로 높이는 기능이고, DC 페이즈 리니어라이저는 아날로그 앰프에서 발생하는 저음의 잔향을 시뮬레이션하여 만들어내는 기능이다. 소니의 기존 제품에서도 자주 볼 수 있었던 기능이지만, DSEE HX의 업스케일링 수준이 32비트/384kHz로 높아졌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다양한 입출력 단자를 채용하고 있다. 디지털 입력으로는 코액셜, 옵티컬, USB B를 하나씩 보유하고 있으며, RCA 아날로그 입력과 RCA 프리 아웃 역시 하나씩 채용하고 있다. 또한 측면에는 NW-WM1Z 워크맨과 직접 연결할 수 있는 입력 포트를 제공한다. 헤드폰 출력도 다양하게 지원하는데, XLR4, 언밸런스 3.5mm·6.3mm, 밸런스드 4.4mm·3.5mm×2를 전면에 두고 있다. 역시 이번 시그니처 시리즈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밸런스드 4.4mm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안정성 및 크로스토크나 노이즈 제거의 사운드 품질에 장점이 있는 규격이다. 특히 일본 JEITA에서 밸런스드 4.4mm를 표준 규격으로 선택한 만큼 한층 더 대중화가 이루어질 전망이다. 실제 청음에서도 밸런스드 4.4mm를 중심으로 들었는데, 언밸런스와는 사운드 퀄러티에서 큰 차이를 보여준다.
이제 사운드에 대한 이야기. 시그니처 시리즈로 함께 출시한 MDR-Z1R 헤드폰과 매칭하여 TA-ZH1ES의 USB DAC를 활용, PC 파이 위주로 음악을 들어보았다. 확실히 출력이 보장되니 모든 음악들이 여유가 넘친다. 기존에 들었던 음악들이 사실 이렇게 녹음되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할 만큼 엄청난 해상력과 다이내믹의 차이를 보여준다. 특히 이런 고출력 제품들이 순간적인 타격음에서 제법 많은 노이즈와 찌그러짐에 노출되곤 했는데, TA-ZH1ES에서는 그런 미묘한 왜곡들이 쉽사리 느껴지지 않는다. 그만큼 전원 및 부품에 엄청난 물량 투입을 했고, D.A 하이브리드 앰프가 얼마나 완성도 있게 잘 만들어졌나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개인적으로는 리뷰용 레퍼런스 음원들을 모두 다시 듣게 될 정도였는데, 단순히 빠른 스피드와 힘, 그리고 해상력으로만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움과 여유로움을 기본으로 하고 있어 한층 더 오래 음악을 듣게 만든다. 이런 감각들은 시그니처 제품들의 공통된 특징이기도 한데, 확실히 함께 매칭되어 오랫동안 튜닝했다는 것이 소리로 쉽게 전달된다. 베스트 매칭의 시너지는 그야말로 크게 다가오는 것이다.
앰프 능력의 진정한 맛은 역시 클래식 음원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말러, 바그너, 쇼스타코비치 같은 대편성의 스케일은 그야말로 차원이 다르게 전해진다. 타악기의 시종일관 몰아치는 다이내믹과 악기별로 일체화된 현악기의 밀도감은 콘서트홀의 진짜 무대를 만들어내기에 충분하다. 지휘자와 연주자 사이의 미묘한 신경전과 지독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을 만큼 특유의 공기감은 일품이며, 순간 순간 찾아오는 음의 공백도 아주 자연스럽게 이끌어간다. 투티에서 한 번에 몰아치는 음의 파도는 ‘소니가 왜 이렇게까지 투자를 했어야만 했나’를 확실히 증명하는데, MDR-Z1R 헤드폰과 맞물려 ‘궁극의 무대’를 완성한다. 무엇보다 디지털적인 딱딱함보다는 아날로그적인 질감과 자연스러움이 주가 된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여성 보컬에서는 그 어떤 제품보다 깨끗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평소 여성 보컬의 청량함을 좋아했다면 꼭 들어봐야 할 정도로 눈부시게 아름다운 고역을 들려준다. MDR-Z1R 헤드폰 역할도 제법 컸겠지만, TA-ZH1ES의 깨끗한 배경은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감각이다. 물론 남성 보컬로 넘어가면, 질감 가득한 톤으로 기막히게 변화한다. 디지털 앰프로 듣다가, 아날로그 진공관 앰프를 듣는 듯한 느낌인데, D.A 하이브리드 앰프가 이런 감각을 주도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빠른 템포의 팝 넘버에서도 MDR-Z1R과 TA-ZH1ES의 조합은 장기를 발휘한다. 풀 디지털 앰프 특유의 스피디감이 그대로 드러나는데, 저역의 반응까지 빠르게 주도하여 팝 분위기를 잘 살려준다. 또한 여기에 해상력까지 더해지니까 지금까지 듣던 곡과는 완전히 다른 퀄러티의 무대가 완성된다. 그러고 보면 이런 팝·가요에서 대역 밸런스가 완전히 무너지는 경우를 의외로 많이 보았는데, TA-ZH1ES는 확실히 대역의 중심을 밸런스 있게 잡아주어 음이 쏟아지는 느낌을 줄이고 있다.
MDR-Z1R 헤드폰을 시작으로, NW-WM1Z 워크맨, 그리고 이번 TA-ZH1ES 헤드폰 앰프까지 모두 소개했다. 3개월의 시간이니 개인적으로도 참 오랫동안 청음했고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소니의 시그니처 시리즈는 단순히 최고의 제품을 선보였다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투입한 기술과 배경들을 바탕으로 많은 신규 라인업들이 기획되고 생산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시그니처 시리즈의 유전자를 보유한 다음 세대의 제품들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그야말로 엔지니어들이 힘을 합쳐 모든 기술을 총 투입하고, 모든 물량과 노력, 그리고 열정을 쏟아부은 최고의 프로젝트로 기억될 것이다. 소니가 선사한 ‘궁극의 무대’, 쉽게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수입원 소니코리아(주) 1588-0911
가격 279만9천원 실효 출력 1.200mW(32Ω, 밸런스), 300mW(32Ω, 언밸런스)
헤드폰 출력 XLR4×1, 언밸런스(3.5mm×1, 6.3mm×1), 밸런스(4.4mm×1, 3.5mm LR×1)
디지털 입력 Coaxial×1, Optical×1, USB B×1, Walkman Port×1
아날로그 입력 RCA×1 프리 아웃 RCA×1 주파수 대역 4Hz-80kHz(-3dB) 게인 하이/로우
임피던스 8-600Ω 크기(WHD) 21×6.5×31.4cm 무게 4.4kg
<월간 오디오 2017년 2월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