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여진욱
미국의 그라도(Grado Labs)는 특유의 완전 개방형 헤드폰 설계와 현악기에 최적화된 사운드로 독자적인 마니아층을 거느리고 있는 회사이다. 기본적인 설계 사상은 전 모델이 공유하고 있으며, 하우징의 소재와 설계, 그리고 이어 패드의 형상 등을 다양화하면서 상당히 많은 헤드폰 라인업을 거느리고 있기도 하다. 레퍼런스 시리즈를 중심으로 하위 라인업으로는 그라도의 60년 역사와 함께 하는 프리스티지 시리즈, 그리고 상위 라인업으로 각각 마호가니 우드와 알루미늄을 사용하는 대형기인 스테이트먼트, 프로페셔널 시리즈가 있다.
가장 최근에 출시된 신제품으로는 스테이트먼트 시리즈의 두 번째 모델인 GS2000e가 있다. 마호가니와 메이플 우드를 사용한 클래식한 톤의 대형 하우징과 고급 브라운 가죽 헤드 밴드, 대형 이어 패드 등 기본적인 디자인은 이전에 출시되었던 GS1000과 동일하다. 겉보기에는 부피가 상당히 크기에 착용감을 걱정할 만하지만, 풀 사이즈 헤드폰임에도 무게는 불과 250g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실제 착용 시의 무게감이 상당히 가볍기에 오래 착용해도 부담이 없다. 다만 이어 패드는 여전히 그라도 특유의 스펀지 재질이 그대로 드러나는 디자인이기에 이어 패드가 피부에 닿는 느낌은 까슬한 감이 있다.
사운드 설계를 보자면 그라도에서 애용하는 50mm 대구경 다이내믹 드라이버를 사용하면서, GS1000보다 모델 넘버링이 높아진 만큼 스펙상 주파수 응답 영역이 더욱 확장되었다. 고순도 구리 심선을 12가닥을 사용하여 만들어진 두툼한 케이블 역시 건재하다. 케이블은 단자 처리가 되어 있지 않아 따로 사용자가 교체할 수 없다. 대신 처음부터 4핀 XLR 밸런스드 케이블을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추가되었다. 따라서 이제는 그라도 헤드폰에서도 케이블 교체 개조 없이 순정 상태로 바로 밸런스드 구동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GS2000e의 사운드는 현악기와 일렉 기타에 강점을 보이는 그라도 특유의 음색을 한껏 농축해 놓은 느낌이다. 고음 영역의 에너지를 강조함으로써 현악기의 배음을 매우 매력적으로 꾸며 준다. 세대를 거듭하면서 고음 튜닝 실력이 점점 발전하여, GS2000e는 고음 대역의 에너지가 강하면서도 이전 그라도 헤드폰들에 비해 자극도가 덜하다. 특히 고음 강조 시 자칫 불쾌하게 들리기 쉬운 드럼의 심벌즈와 하이햇을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매우 실감 나게 재생해 낸다. 평소에 플랫한 성향의 헤드폰을 주로 듣는 애호가라도 귀가 금방 적응해서 어느새 GS2000e 특유의 매력적인 고음을 즐길 수 있을 정도이다.
그 고음 대역에서의 꾸밈의 정도가 다른 그라도 헤드폰들보다 강렬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100Hz 이하의 저음이 억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이전의 GS1000 모델과도 일맥상통하므로, 이제는 그라도 스테이트먼트 시리즈 고유의 특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50mm 대구경 드라이버를 사용하고 있지만 특유의 완전 개방형 하우징과 스펀지 재질의 이어 패드가 저음을 퍼지게 만들어 초 저음의 양감이 얇다. 이로 인해 상대적으로 고음의 강렬함이 더욱 부각되는 결과를 얻었다. 그래서 GS2000e는 대편성 음악에서는 박력이 부족해서 그다지 적합하지 않다. 현악기를 중심으로 하는 소편성 음악에서 GS2000e의 매력이 극대화된다.
저음의 양감이 두텁지는 않지만 중음 대역의 에너지를 살짝 억제하는 그라도 특유의 V자형 사운드 밸런스는 건재하다. 그래서 중·저음의 발랄한 타격감이 돋보인다. 이 경쾌한 타격감은 특히 일렉 기타를 중심으로 하는 록·메탈 장르에서 음악의 속도감을 한층 고조시켜 준다. 일반적으로 록·메탈 장르는 무거운 베이스 기타가 음악의 전체를 지배하면서 특유의 어두운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데, GS2000e는 그 무거움을 걷어내면서 오히려 음악 전체를 밝게 꾸며 준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신나는 음악을 듣고자 한다면 그야말로 제격인 특성이다. 그라도 헤드폰 특유의 탁 트인 개방감이 그런 신나는 사운드를 더욱 시원하게 느껴지게 함은 물론이다.
GS2000e는 GS1000 대비 음질 성능의 향상과 XLR 밸런스드 케이블 옵션 추가 등의 요소를 가진 상위 모델이다. 기존의 GS1000 사용자라면 순정 XLR 밸런스드 케이블 옵션이 상당히 구미가 당길 것이다. 그리고 그라도의 스테이트먼트 시리즈도 드디어 모델이 늘어나면서 어느 정도 하나의 독립 시리즈다운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이처럼 그라도의 세밀하고 섬세한 모델 가지치기의 끝은 어디까지인지 지켜보는 것도 그라도의 팬으로서는 상당히 재미있는 일일 것이다.
수입원 D.S.T.KOREA (02)719-5757
가격 178만원 유닛 타입 오픈형 임피던스 32Ω 음압 99.8dB 주파수 응답 4Hz-51kHz
<월간 오디오 2016년 6월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