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월간오디오
우리는 오디오를 어떻게 구사해서 어떤 소리를 내고, 삶에서 어떻게 활용하는가를 더 중시하는 소프트웨어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X35라는 제품의 가치는 우리 시대에 더욱 소중하다. 음악을 듣기 위한 모든 것을 담은 기기, 무엇보다 충실한 소프트웨어를 갖춘 기기이기에 그렇다. 우리에게 남은 일은 그저 음악에 빠지는 것뿐.
점입가경의 디지털 세상에 살면서, 가끔씩 세상이 어떻게 이렇게 빨리 바뀔 수 있을까 놀라곤 한다. 세운상가에서 불티나게 팔려 나가던 조립 PC들 중 한 대 - XT가 우리 집에 들어온 것은 1987년 겨울이었다. CD-ROM은 물론 하드 디스크도 없었고, 네트워크 같은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하던 시절이다. 그 PC는 별 쓸모도 없이 한동안 우리집의 자랑거리가 되었는데, 따지고 보면 컴퓨터가 본격적으로 우리에게 보급된 것은 30년도 채 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내가 테트리스 같은 간단한 게임을 하면서 컴퓨터에 조금씩 익숙해질 때 AT라는 신형 컴퓨터가 나왔다. 우리의 자랑거리였던 XT는 불과 1년도 지나지 않았음에도 ‘구형’의 멍에를 쓰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 하드웨어는 숨 막히는 속도로 발전했다. CPU만 보더라도 XT는 AT로, AT는 386SX, 386DX를 거쳐 486, 펜티엄으로 발전했다. 초기 16비트는 32비트를 거쳐 64비트로 정착되었고, AT 시절에 사용하기 시작한 하드 디스크는 MB 단위에서 TB의 단위를 갖게 되었다. 나는 컴퓨터에 있어서는 비교적 ‘얼리 어댑터’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는데, 신제품을 구입하더라도 금세 더 좋은 제품이 나오는 바람에 돈은 돈대로 쓰면서도 좋은 제품을 쓴다는 자부심을 느낄 새가 없었다. 일반 소비자뿐만 아니라 계속 하드웨어가 바뀌니 소프트웨어 개발자들도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당시에는 분명히 하드웨어가 디지털 기술 전반을 견인하던 시대였다.
그런데 요즘은 하드웨어의 발전이 좀 주춤해진 것 같다. CPU의 클록 속도도 더 이상 빨라지지 않고, 64비트 기반의 연산도 변화될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 하드 디스크도 기존 디스크의 장수만 늘릴 뿐 TB 이후의 단위는 요원하게 보인다. 오히려 요즘엔 소프트웨어의 발전이 하드웨어의 발전을 리드하는 것처럼 보인다. 예컨대 그래픽이 뛰어난 특정 게임 소프트웨어를 원활하게 동작시키기 위해 소비자들이 그래픽 카드를 두 개 사용하는 상황은 하드웨어 업체에게 더 강력한 그래픽 카드를 만들 동기를 제공하는 것이다. 세상을 놀라게 하고 화려하고 명예롭게 ‘은퇴’한 알파고가 2,000개의 서버에서 구동된다는 사실도 소프트웨어가 점점 우리 시대를 리드하는 상황을 잘 설명해 주는 예가 된다. 즉, 예전엔 최신형의 빠른 컴퓨터를 사도 마땅히 ‘돌릴’ 것이 없었던 하드웨어의 시대였다면, 지금은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구동하기 위해 하드웨어를 고려해야 하는 소프트웨어의 시대다.
칵테일 오디오의 X30은 우리 시대의 소프트웨어 기술을 오디오에 제대로 반영한 혁신적인 기기였다. 하드 디스크를 탑재한 컴퓨터 베이스의 몸체에 CDP, DAC는 물론이고 앰프, FM 튜너, 네트워크 플레이어 등을 탑재해 하나의 기기로 음악 감상에 필요한 모든 기능을 갖게 했다. 그런데 X30 내부에 존재하는 구성 요소들은 기술적으로 ‘새로운’ 회로나 발명품 같은 것들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이러한 구성 요소들을 원활하게 동작시키고 소비자들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우수한 소프트웨어의 개발은 결코 쉽지 않다. 칵테일 오디오 X30이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호평 받았던 배경에는 가격대 성능비가 뛰어난 하드웨어 때문만이 아니라, 편리하고 안정적인 소프트웨어의 성능이 더욱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소프트웨어를 변경하는 것은 하드웨어의 변경보다 훨씬 수월하므로, 칵테일 오디오의 소프트웨어는 사용자들의 피드백에 따라 점점 더 편리하게 진화하고 있는 중이다.
이번에 리뷰하는 X35는 X30의 후계기다. 물론 X30은 국내와 해외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충분한 완성도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워낙 빨리 변하는 것이 디지털 세상이다. X30이 처음 출시되었을 때는 DSD라는 파일 포맷이 별로 사용되지 않았던 시절이다. X35를 발매해서 요즘 트렌드인 DSD에 대응한다는 것은 앞서 언급한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의 개발을 자극하는 또 다른 예가 된다. 게다가 칵테일 오디오는 X30 이후 앰프부를 배제한 X40, 앰프와 DAC를 배제한 순수 서버 X50 등을 발매해 왔고, 그 사이에 축적된 기술과 소프트웨어를 가지고 X30의 완성도를 더욱 높이고 싶었을 것이다.
이제 X35를 보자. X50과 유사하게 외관이 바뀌었다. 전작 X30이 아기자기한 모습이었다면 X35는 대범하고 우직한 모습이다. 무엇보다 5인치에서 7인치로 훨씬 커진 디스플레이 창이 시원하다. 두툼한 전면 알루미늄 패널의 가공 상태도 정교하고 알루미늄을 절삭 가공한 큼지막한 노브도 인상적이다. 디자인은 보편적이지만 재료와 만듦새가 좋아서 고급 오디오의 품격이 있다.
뒷면은 전작에 비해 더욱 꽉 채워졌다. 먼저 스피커 단자가 플라스틱 실드된 대형 단자로 바뀐 것이 눈에 띈다. USB 단자는 뒷면 두 개에서 세 개로 늘었으며 모두 3.0 대응이 되었다. 그런데 USB 단자 중 하나는 USB DAC를 연결하는 전용 단자로 표기되어 있다. 다른 단자들이 USB 메모리나 외장 하드 디스크, 또는 와이파이 어댑터를 연결해 사용하는 용도로 사용될 수 있는 데 반해, USB DAC 전용 단자는 단자를 통해 전원을 공급하지 않고 음악 신호만을 전송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다. 오디오에서 USB 전송을 할 때 전원 공급선을 따라 노이즈가 유입된다는 지적이 항상 있었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고급 케이블 메이커에서 전원선 가닥을 제거한 USB 케이블을 판매하기도 했는데, 칵테일 오디오에서 단자를 따로 만들어 오디오 애호가들을 배려한 것이다.
디지털 출력은 AES/EBU(XLR), 광, 동축 이렇게 세 개로 전작과 같고, 디지털 입력은 전작이 광과 동축만을 지원했던 것에 비해 X35는 AES/EBU까지 폭넓게 지원하게 되었다. 게다가 아날로그 단자도 전면에 3.5mm 라인 입력 하나, 뒷면에 RCA 입력 1조까지 갖고 있으니 디지털에서 프로용으로 사용되는 I2S만 빼고 거의 모든 단자들을 지원하는 셈이 된다.
칵테일 오디오 올인원 기기의 다양한 기능과 활용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 지면을 통해 상세하게 소개된 바 있으니 전작과 달라진 점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CDP와 DAC, FM 튜너를 갖고 있으며 인티앰프가 내장되어 있는 점은 공통. 증폭부는 클래스D 모노 모노 방식으로 전작에 비해 두 배인 100W+100W의 출력을 갖고 있는 점이 큰 차별점이다. 전작이 음압이 낮은 스피커를 큰 소리로 울리기에는 부족하다는 의견을 의식한 모양이다. 전작에는 없었던 MM형 포노 앰프를 내장해 LP를 감상하는 것은 물론, 24비트/192kHz의 고해상도로 디지털 녹음하는 것도 가능하게 되었다.
하드 디스크 뮤직 서버로 사용하면서 다른 컴퓨터나 모바일 기기에 있는 음원들을 자유자재로 컨트롤할 수 있는 네트워크 플레이어 기능은 전작과 동일하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중요한 변화가 있는데, 마이크로프로세서가 교체되어 클록 스피드가 기존 700MHz 급에서 1GHz 급으로 50%가량 성능이 향상되었다. 이에 따라 음원의 리핑이나 뮤직 DB에 등록하거나 관리할 때도 더 쾌적함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X30 이후 후속기에서만 지원되던 DSD가 드디어 256까지 지원되게 되었다.
이뿐이 아니다. 디지털 시그널 프로세싱 기술로 정평 있는 메리디언의 MQA(Master Quality Authenticated) 파일을 지원하게 되었다. MQA는 16비트에서 32비트, 44.1kHz에서 384kHz에 이르는 고해상도 음원들의 크기를 ‘손실 없이’ 10~20%로 줄여 주는, ‘말도 안 되는’ 혁신적인 압축 형식이다. 삼성이나 HTC 등 다수의 모바일 기기 회사에서 이미 MQA 디코더를 탑재하거나 탑재할 예정에 있으며, 타이달이나 온쿄 뮤직과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 2L과 같은 고음질 레코딩 업체에서도 MQA 음원을 공급하고 있다. 고해상도 음원들을 MP3 정도의 크기로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으므로, 모바일 기기나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고해상도 음원의 대세가 될 것은 너무나도 분명해 보인다.
이제 소리 이야기를 해 보자. 초기에는 큰 볼륨에서 소란스러움이 있었지만, 일주일이 지나면서 점점 제소리를 찾는 것이 느껴졌다. 앰프는 후속기라고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말 많이 바뀌었다. 출력이 두 배가 되었기 때문인지 4Ω에 리본 트위터를 장착한 밀폐형 스피커인데도 소리가 너무나 쉽게, 가뿐하게 빠져나온다. 애호가들의 애청반 <투티>는 특히 풍성한 중·저역을 바탕으로 묵직한 펀치가 주는 쾌감에 젖어 한참을 들었다. 내친김에 <저음왕> 1집을 들어 보았다. 세 번째 곡 ‘Bass, Bass…’에서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호방하다. 그리고 깊다. 고역은 화려하거나 나대지 않고 부드러운 편으로, 따듯하고 온화한 느낌이다. 여러 장르의 음악을 들어 보았는데, 풍성하고 힘 있는 저역을 바탕으로 ‘고해상도’를 강요하지 않는 편안한 고역을 아름답게 펼쳐 준다는 결론을 내렸다. 간혹 잘 만든 디지털 파워 앰프를 들으며 아날로그 앰프보다 더 아날로그적인 소리라고 느낄 때가 있었는데, X35도 분명히 그중 하나가 될 것이다.
예전 우리가 ‘없던’ 시절에는 어느 집에 어떤 오디오가 있다는 것이 이슈가 되곤 했다. 하지만 오디오는 음악을 듣기 위한 기기가 아니던가. 이제는 단순히 값비싼 하드웨어를 갖고 있는 것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다. 우리는 오디오를 어떻게 구사해서 어떤 소리를 내고, 삶에서 어떻게 활용하는가를 더 중시하는 소프트웨어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X35라는 제품의 가치는 우리 시대에 더욱 소중하다. 음악을 듣기 위한 모든 것을 담은 기기, 무엇보다 충실한 소프트웨어를 갖춘 기기이기에 그렇다. 우리에게 남은 일은 그저 음악에 빠지는 것뿐.
문의 헤르만오디오 (010)4857-4371
실효 출력 100W(8Ω) 디스플레이 7인치 TFT LCD(1024×600) CPU 듀얼 코어 ARM Cortex A9 메인 메모리 DDR-1066 1기가 EMMC 8기가 디지털 입력 AES/EBU×1(24비트/192kHz), Coaxial×1(24비트/192kHz), Optical×1(24비트/192kHz), USB A×3 디지털 출력 AES/EBU×1(24비트/192kHz), Coaxial×1(24비트/192kHz), Optical×1(24비트/192kHz), USB×1, HDMI×1 아날로그 입력 RCA×1, Aux×1(3.5mm), Phono(MM) 헤드폰 출력 지원 네트워크 지원 전용 어플리케이션 지원 CD 재생 지원 지원 DSD 64/128/256, DXD 24비트/352.8kHz, HD WAV(24비트/192kHz), FLAC(24비트/192kHz) 등 온라인 뮤직 서비스 Tidal, Deezer, Qobuz, Spotify 튜너 FM, DAB+ 크기(WHD) 44.1×11.1×33cm
<월간 오디오 2017년 7월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