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nic L-8000 DHT 화이트 노이즈를 없앤 올닉의 풀 직열 3극관 플래그십 프리앰프
한은혜 2017-09-05 18:16:08

글 김편

 


대한민국 오디오 제작사 올닉(Allnic)은 출력 트랜스포머 코어에 스피드가 좋고 저역 재생력이 월등한 퍼멀로이(Permalloy) 합금을 쓰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직열 3극관(DHT, Direct Heated Triode)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에도 일가를 이뤘다. 모노블록 파워 앰프 A-10000 DHT, 포노 스테이지 H-5000 DHT, DAC D-5000 DHT, 프리앰프 L-5000 DHT가 그것이다.
이들 DHT 시리즈는 출력관(전력 증폭관)뿐만 아니라 앞단의 전압 증폭관(드라이브관)에도 직열 3극관을 써서 완벽한 풀 DHT 시스템을 이뤘다는 게 특징. 달궈진 히터에 의해 캐소드에서 전자가 방출되는 방열형이 아니라, 필라멘트를 직접 가열시켜 전자를 방출케 하는 직열형 3극관이 더 소리가 순수하고 맑고 투명하고 음악적이지만, 드라이브관에 방열관을 쓰면 완벽한 직열관 소리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중 프리앰프 L-5000 DHT가 이번 시청기인 L-8000 DHT로 진화했다. 정전압 회로에 300B를 투입한 L-7000보다 한 단계 높은, 올닉의 진정한 플래그십 프리앰프다. 처음 듣자마자 이전 모델보다 화이트 노이즈가 확실히 줄어들었고, 신호대 잡음비(SNR)는 무음에 가까울 정도로 높았으며, 저역은 마치 제주산 한라봉을 쪼갤 때처럼 탱글탱글하고 타이트해졌음을 알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에너지감이 더 살아난 가운데 약음에서의 디테일한 표현력이 돋보이는 재생이다. 피아노나 현악기의 배음도 더 잘 들렸으며 고역은 억세지 않고 더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DHT 특유의 실제 악기를 듣는 것과도 같은 자연스러움이 흠뻑 배어 있다. 올닉의 플래그십 프리앰프로 등장한 L-8000 DHT에서는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DHT로 화이트 노이즈 제로에 도전
L-8000 DHT의 외부 설계 디자인을 살펴보면 이렇다. 우선 파워 케이블을 왼쪽 측면에 꽂게 돼 있는데, 이는 듀얼 모노 구성을 위한 첫 출발점이다. 즉, 전원 트랜스부터 좌우 채널 분리를 위해 2개를 투입하고 이를 전면에 전진 배치시킨 것이다. 올닉에서는 이 같은 측면 인렛단에 꼭 맞는 ‘ㄱ’ 자형 단자의 파워 케이블을 준비해놓고 있다.
이러한 듀얼 모노 설계는 계속해서 이어진다. 전원 리플을 제거하는 초크 트랜스가 채널당 1개씩(뒤쪽 양 사이드) 투입됐고, 정전압 회로의 진공관(7233, 6485)도 채널당 1개씩 총 4개가 투입됐다. 좌우 채널 음악 신호를 2단 증폭하는 진공관에는 3A/110A(전압 증폭), 3A/109B(전력 증폭)가 차례대로 채널당 1개씩 투입됐다. 물론 풀 DHT관이다. 이렇게 증폭된 음악 신호는 각각의 출력 트랜스(뒤쪽 가운데)를 통해 파워 앰프로 빠져나간다. 이 과정에서 네거티브 피드백은 일체 걸지 않았다.
사실 외관상으로 전면 패널에 달린 양쪽 손잡이를 제외하면 증폭 진공관 구성이나 진공관 정전압 설계 등에 있어서 L-5000 DHT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올닉 특유의 전면 커런트 미터, 투명한 폴리카보네이트 침니, 튼튼한 양쪽 손잡이도 그대로다. 진공관의 마이크로포닉 노이즈를 잡아주는 실리콘 재질의 라바 클래드, 침니 안쪽에 그물망처럼 부착된 스테인리스 스틸 재질의 실드도 여전하다. 하지만 올닉의 또 다른 자랑거리인 은 접점 41단 어테뉴에이터는 2.0 버전이 장착됐고, 퍼멀로이 출력 트랜스도 또 한 번 업그레이드됐다. 자세히 비교해보면 후면 입·출력 단자의 배열 위치도 바뀌었다.
전작과는 다른 L-8000 DHT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인지, 올닉의 박강수 대표한테 직접 물어봤다. ‘직열 3극관은 태생이 오디오관이다. 방열관이나 5극관과는 다르다. 나오는 소리 자체가 격이 다르다. 하지만 직열 3극관의 최대 단점이 바닥에 깔리는 화이트 노이즈였다. L-8000 DHT는 회로 설계의 대대적 혁신을 통해 이러한 화이트 노이즈를 완전히 없애버렸다. 직열 3극관을 2단 증폭에 투입하고도 화이트 노이즈를 없앤 것은 L-8000 DHT가 처음일 것이다.’
박 대표 설명 그대로, 직열 3극관은 그 빼어난 소릿결에도 불구하고 진동 노이즈나 화이트 노이즈에 취약해 애호가들의 가슴을 졸여왔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 L-8000 DHT가 되면서 ‘싸아~’ 하는 화이트 노이즈 제거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L-8000 DHT에 음악 신호가 들어오지 않은 상태에서 스피커에 바싹 귀를 대어봤지만 그냥 ‘무음’일 뿐이었다.

 


트랜스 프리, 네거티브 피드백, 20kHz 방형파 구현
올닉 제품에는 워낙 많은 기술력과 노하우가 투입돼 ‘고마운 줄도 모르고’(?) 그냥 지나치는 것들이 많다. 우선 프리앰프의 경우 출력 트랜스 방식, 즉 트랜스포머 커플링 방식으로 출력단을 마무리한다. 이는 출력 트랜스 방식이 전압뿐만 아니라 전류까지 흐르므로 뒷단에 전력(W=I×V), 즉 에너지를 더 많이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파워 앰프를 강력하게 드라이빙할 수 있다는 것.
이에 비해 커패시터 커플링 방식(C-R 결합 방식)은 단지 전압 결합 방식이어서 전력을 전달해주지 못한다. 출력 트랜스는 또한 출력 임피던스가 낮다는 장점도 있어 인터 케이블을 덜 가리고 파워 앰프와 결합 시 노이즈 유입 가능성도 줄어든다. 커패시터 커플링 방식에서는 출력 임피던스를 낮추기 위해 통상 캐소드 팔로워 회로를 쓰는데, 이러면 특히 저역에서 왜곡이 심해진다.
L-8000 DHT가 출력 트랜스에서 일체의 네거티브 피드백을 걸지 않고도 20kHz에서 방형파(Square Wave)를 구현하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현대 오디오 기기들이 하나같이 네거티브 피드백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 특히 트랜지스터 앰프에는 피드백이 거의 다 걸려 있는데, 이는 트랜지스터 자체가 찌그러짐이 큰 소자이기 때문에 왜곡을 줄이고 SNR을 높이기 위해 태생적으로 피드백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올닉에서는 네거티브 피드백을 걸지 않고도 20kHz에서 방형파를 얻어냈다. 이는 웬만한 기술력 갖고는 꿈도 못 꿀 대단한 결과다. 방형파라는 것은 일반적인 음성 출력 신호인 정현파(Sine Wave)에 하모닉스를 주어 정사각형의 파형을 얻어내는 것인데, 1kHz, 10kHz도 아니고 20kHz라는 고역대 입력 신호에서 방형파를 구현했다는 것은 그만큼 왜곡과 노이즈가 거의 제로에 가깝다는 것이다. 때문에 프리앰프에서 20kHz 방형파는 그야말로 최우선 덕목이라 할 수 있다.

진공관 설계는 어떻게 했는가
L-8000 DHT는 직열 3극관 2단 증폭 설계다. 1단 전압 증폭관에는 3A/110A를 채널별로 1개씩 썼다. 위에서 보면 출력 트랜스 쪽에 붙어 있는 진공관들인데, 전압 증폭률이 12, 내부 저항이 5.5㏀을 보인다. 2단 전력 증폭관에는 3A/109B를 역시 채널별로 1개씩 썼다. 전압 증폭률이 6, 내부 저항이 2㏀을 보인다. 두 진공관이 일궈낸 게인은 18dB. 두 진공관 모두 산화바륨과 스트론튬으로 코팅한 산화 피막 필라멘트인데, 섭씨 1000도에서 오렌지 빛깔로 가열되는 특징이 있다. 요즘 대부분의 진공관에서 쓰이는 토륨 코팅 텅스텐 필라멘트보다 전자를 훨씬 잘 방출시켜 효율이 좋다.
정전압 회로에는 3극관 7233과 5극관 6485(3극 접속)가 채널당 1개씩 투입됐다. 위에서 봤을 때 전원 트랜스 쪽에 가까운 게 6485다. 외부의 전압이 아무리 변동해도 일정하게 기기 내부의 전압을 유지하는 데에는 트랜지스터보다 진공관이 유리하다. 정전압의 원리는 수도꼭지를 생각하면 알기 쉽다. 물이 많이 나오면 수도꼭지의 밸브를 잠그면 되는데, 이 밸브 역할을 하는 게 전압 레귤레이터이고, L-8000 DHT에서는 7233이 투입됐다. 내부 저항이 아주 낮은 진공관이다. 밸브를 돌리는 사람 손 역할은 전압 에러 디텍터가 하고 6485가 맡는다. 이 진공관은 전압 증폭률이 높기 때문에, 고속 스위칭이 가능해서 전압 변화에 빠르게 반응할 수 있다.
 


시청
시청은 타이달과 LP를 플레이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이를 위해 소스기기는 솜(SOtM)의 네트워크 플레이어 sMS-200과 올닉의 DAC D-5000 DHT, 턴테이블은 토렌스 TD520에 올닉의 MC 카트리지 퓨리타스 실버, 포노 스테이지는 올닉의 H-1500 Ⅱ Plus, 헤드 앰프는 올닉의 HA-3000을 동원했다. 파워 앰프에는 200W 출력의 올닉의 모노블록 M-3000 MK2, 스피커는 윌슨 베네시의 스탠드 마운트형 디스커버리 2를 물렸다.
안네 소피 폰 오터의 슈베르트 ‘Nacht und Traume’. 일감은 음들이 매끄럽고 배경이 적막하다는 것. L-8000 DHT의 최대 덕목이라 할 만하다. 노이즈 관리가 잘 된 덕분인지 전체적으로 단정한 사운드다. 결이 참 곱다. 그러면서 사운드 스테이지가 넓고 깊게 펼쳐진다. 마치 아날로그 사운드를 듣는 듯 음들이 물밀듯이 연속적으로 밀려온다. 오터의 발성이나 끝이 ‘ST’로 끝나는 발음에 대한 아티큘레이션이 세세히 잘 드러난다. 역시 DHT 사운드는 디테일에 있어서 ‘갑’이다. 헐벗지 않고 윤택하다. 특히 현악의 배음이 마치 성당에서 듣는 합창소리처럼 풍부하다.
앤 비손의 ‘Little Black Lake’(Blue Mind). 피아노의 타건음이 분명하게 들린다. 통 울림도 확연하다. 배음이 은은하게 무척이나 고급스럽다. 보컬은 그냥 바로 앞에서 불러주는 듯하다. 그녀의 호흡이나 발성, 기척, 숨소리가 그대로 전해져온다. 또한 보컬과 피아노의 높낮이 차이, 안길이 차이도 잘 드러난다. 그만큼 이미징이 대단하다. 가사 중간에 ‘Tear’라는 단어가 시청실 허공에 살포시 떠오르는 장면이 기막히다. 마치 비눗방울처럼 단어가 떠올랐다 스윽 사라진다. 배경의 적막감은 역대 최고 수준인데, 특히 앤 비손이 코로 숨을 들이마시는 모습까지 그려진다. 칠흑 같은 배경에 있는 것은 보컬과 피아노뿐이다. 마지막, 피아노 현 울림의 여운이 깜짝 놀랄 정도로 오래간다.
레너드 번스타인과 데이브 브루벡의 ‘Dialogues For Jazz Combo And Orchestra’. 갑자기 음수와 다이내믹스가 늘어났다. 약동하는 음들이 시청실을 가득 메웠다. DAC가 빚어내는 해상도와 프리앰프가 만들어내는 사운드 스테이지가 제대로 만났다. 오른쪽의 하이햇, 중간 뒤쪽의 피아노,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진 오케스트라의 현악과 목관, 오른쪽에 몰린 재즈 캄보의 금관이 저마다의 존재를 뽐낸다. 손을 내밀면 잡힐 듯하다. 그야말로 홀로그래픽하다. 특히 오케스트라 연주를 뚫고 나오는 피아노의 존재감이 대단하다. 색소폰의 음색 역시 에스프레소처럼 맛깔스럽고, 카페라테처럼 포말감이 곱다.
레너드 번스타인, 뉴욕필의 말러 교향곡 2번(DG). 양옆 사운드 스테이지가 무척 넓다. 초반 첼로와 베이스가 일궈내는 저역의 양감이 대단하다. 풀어지는 저역, 매가리 없는 저역이 절대 아니다. 단단하고 타이트하다. 모노블록 파워 앰프의 파워와 스피커의 대역 밸런스 덕을 크게 봤겠지만, 필자 개인적으로는 L-8000 DHT가 이전 L-5000 DHT보다 저역의 텐션이 크게 늘어난 것 같다. 특히 마이크로 다이내믹스에서 여린 음들을 한 음 한 음 정성스럽고 정확하게 연주해줘 감탄했다. 오케스트라 홀의, 풍부한 배음과 울림도 잘 전해졌다. 특히 목관 파트의 풍부한 배음이 파스텔처럼 세밀하게 잘 펼쳐진다.
듀크 엘링턴의 ‘Blues In Blueprint’(Blues In Orbit). LP로 들었다. 확실히 질감과 색채감이 디지털 스트리밍 때보다 진하고 분명해졌다. 진득하고 쫄깃하다. 무엇보다 퍼커션, 색소폰, 베이스, 트럼펫 같은 여러 악기들이 홀로그래픽하게 출몰한다. 트롬본의 음색이 이날따라 유난히 매력적으로 들린다. 이어 들은 ‘The Swingers Get The Blues, Too’에서는 드넓은 사운드 스테이지를 바탕으로 트럼펫과 색소폰의 음색 구분이 너무나 쉽게 된다. 악기 저마다의 음색을 일체의 왜곡이나 착색 없이 순결하게 전해준다는 것, 이게 바로 DHT 진공관의 최대 매력일 것이다. 두 악기 모두 울림과 여운, 배음이 무척 풍윤하고 오래가는 점도 좋았다.

총평
이상하게 올닉 제품을 리뷰하다 보면 ‘끝판왕’이라는 단어를 자꾸 붙이고 싶어진다. 모노블록 파워 앰프 A-10000 DHT가 그랬고, 정전압 회로에 300B를 쓴 프리앰프 L-7000, 헤드 앰프까지 갖춘 포노 스테이지 H-7000V가 그랬다. 그런데 이번 L-8000 DHT를 요리조리 살펴보고 들어본 결과 거의 마지막 심정으로 또 ‘끝판왕’이라는 칭호를 달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L-5000 DHT보다 몇 단계 업그레이드된 음질과 성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일체 화이트 노이즈가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 심지어 리뷰 시 시청실 바닥을 쿵쿵 걸어 다녀 봐도 화이트 노이즈가 끼지 않았다. 직열 3극관 프리앰프를 쓰는 애호가들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눈이 번쩍 뜨일 희소식이다. 3A/110A, 3A/109B 2개의 직열 3극관이 증폭해낸 소리는 역시 깨끗하고 투명하며 음악적이며, 동시에 드넓고 정확했다. 진공관 정전압 회로와 전원 트랜스에 투입된 올닉의 기술력과 노하우도 한몫했을 것이다. 여기에 퍼멀로이 출력 트랜스를 통해 전해지는 에너지감과 스피드감은 단연 발군이었다. 자택에서 올닉 프리·파워로 오디오 생활을 영위하는 필자의 한줄평은 이것이다. ‘프리앰프라는 산맥에서 L-8000 DHT보다 더 높은 봉우리는 없어 보인다’

 


총판 오디오멘토스 (031)716-3311
특징 풀 직열 3극관, 제로 네거티브 피드백, 트랜스 커플링, 41단 어테뉴에이터 Ver.2, 완벽한 듀얼 모노, 획기적인 S/N비   아날로그 입력 RCA×3, XLR×2  아날로그 출력 RCA×1, XLR×2

 

<월간 오디오 2017년 9월 호>

디지털여기에 news@yeogie.com <저작권자 @ 여기에. 무단전재 -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