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신우진
한국인의 정서를 자극하는 감성이 녹아 있는 재즈 LP
국내 가요를 자주 녹음하고 내한 공연 역시 많아 아주 친숙한 재즈 밴드인 유러피안 재즈 트리오가 우리나라의 80-90년대 가요를 연주한다. 이젠 익숙한 이름이 되어 버린 마크 반 룬이 마치 당시 500원에 팔던 악보집을 연주하듯 피아노로 한 음 한 음 가감 없이 바로 반주처럼 써도 될 정도로 정직하게 연주한다. 실제로 객원 보컬 이소정이 B면에서 김건모의 ‘미련’을 부른다. 그밖에 김광석, 이문세 등의 노래를 가벼운 재즈풍으로 연주하며, 보사노바풍의 조덕배의 ‘그대 내 마음에 들어오면’이나 ‘한국사람’ 같은 원래 재즈풍 노래였던 가요에서는 유러피안 재즈 트리오의 그루브한 감성이 폭발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가 재즈의 불모지라 하긴 하지만 가요에는 이렇게 재즈 감성이 녹아 있는 것이 많은 것 같다. 아내도 오랜만에 나와 리뷰용 음반을 듣고 있다. 소리 줄이라는 말도 없다. 참 대중적인,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노래가 채워져 있다. 너무나 자주 듣던 음악을 아주 고급지게 만들어 내고 있다.
이번 리뷰는 500장 넘버링 한정판 LP로 들었다. 독일에서 프레싱한 무척 묵직한 180g짜리 LP다. 서촌이란 이름이 잘 어울리는 깔끔한 재킷 역시 소장욕을 불러일으키는 아이템이다. 어차피 마스터 테이프가 아닌 디지털로 녹음하는 요즘 LP로 찍어낸들 무슨 의미가 있냐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CD나 디지털 음원과는 다른 재생 방법, 즉 판을 긁어내면서 만드는 미묘한 촉감을 느껴 보지 못했거나 못 느낄 정도로 둔감하지 않은 다음에는 그런 말을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마크 반 룬의 피아노가 이전에 없이 감각적이고 여운을 많이 남긴다. 그렇게 삭막한 거실 바닥을 30년 전 난로를 피워 놓고 그 위에 노란 양은 주전자를 올려놓은 반지하 카페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한국인의 정서를 얄미울 정도로 긁어내는 LP이다. 가만히 듣고 있지만 머릿속에는 또렷이 가사가 떠오른다. 대중적이지만 절대 가볍지 않은 좋은 LP가 나온 것 같다. 글 | 신우진
유러피안 재즈 트리오
<서촌 | West Village>
마크 반 룬(피아노)
프란스 반 더 호벤(베이스)
로이 다쿠스(드럼)
이소정(보컬)
AGLP007
녹음 ★★★★★
연주 ★★★★☆
<월간 오디오 2018년 1월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