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신우진
첫인상과 선입견은 참 바꾸기 쉽지 않다. 이건 사람 사이의 일만이 아니라 어떤 가수나 작곡가에 대한 선호도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잘 먹는 나도 싫어하는 음식이 있고, 지루한 국악이나 난해한 재즈도 잘 듣는 나도 싫어하는 작곡가는 있다. 아르보 패르트와 처음 대면할 때, 고음질 음반을 몇 장 구입했는데, 따분한 미사곡과 지루하게 긴 곡으로 구성된 CD가 다음부터 이 작곡가를 기피하는 원인이 되었다. 그래서 올해 최고의 인문학 서적 중 하나인 <라틴어 수업>을 읽으면서 저자가 아르보 패르트의 작품을 극찬하며 언급한 부분에서 어쩌면 내가 중요한 작곡가 하나를 놓인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화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피아니스트의 데뷔 앨범인 것 같은데, 부끄럽게도 난 아르보 패르트의 곡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 몰랐다. 첫 곡 ‘거울 속의 거울 - Spiegel im Spiegel’(앨범에 오타가 난 듯하다)의 서정적인 연주와 ‘Variations for The Healing of Arinushka’의 애잔한 느낌은 다른 연주자의 곡들도 찾아 듣게 만들었다. 묘하게 우리들 정서에 맞추어 연주가 되면서 아주 익숙하게 들린다. 과연 이 연주자가 누구인지 궁금하게 만들어 낸다. 감성적인 타건이 뵈젠도르퍼 피아노의 특유의 울림에 하나하나 실리면서, 어디 내놓아도 모자람 없는 대단한 연주를 들려준다. 음질은 더 바랄 나위가 없을 정도로 HQCD의 비싼 가격이 아깝지 않은 투명하면서 울림이 좋은 그런 녹음이다. 오디오가이 레이블의 역작이라 강조하던데, 이 음반은 국내 클래식 음반 중 아니 최근 들은 음반 중에 베스트로 꼽을 만하다.
앞서 너무 센 작품을 소개했지만, 오디오가이의 100번째 음반 기념작인 문지형의 20세기 무반주 첼로 작품집도 만만치 않은 역작이다. HQCD는 아니지만 역시 같은 DXD 방식의 녹음으로 오디오 마니아가 좋아하는 첼로의 소리를 묵직하고 때론 세밀하게 만들어 냈다. 이 음반에 수록된 곡들은 힌데미트, 코다이, 리게티 등 현대 음악가 중에는 비교적 자주 연주되는 대중적인 작품들로, 첼로가 만들어 내는 다양한 소리와, 울림과 여운이 어우러지며 그려 내는 이미지가 독특한 음향을 그려 낸다. 녹음에 있어 가감을 극히 절제했다고 하는데, 그런 노고가 만든 자연스러움이 풍성한 배음으로 우리의 귀에 들어온다.
어쩌면 쉽지 않은 장르가 바로 클래식의 현대 음악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과거 고생한 경험으로 나처럼 선입관을 가지고 꺼리는 사람도 많을 듯하다. 이 두 장의 음반은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아니 우리 오디오 마니아들은, 비록 이 음악이 아무 선입견 없이 들어 보아도 정말 취향에 아니라 하더라도, 이 풍성한 첼로의 울림이나 투명하고 세밀한 피아노 소리를 들려준다는 것만으로도 이 두 장의 음반은 그 가치를 충분히 하고 있다.
이유화 <Arvo Part Piano Music>
이유화(피아노)
AGCD0106
녹음 ★★★★★
연주 ★★★★★
문지형
<Cello Solo Pieces of The 20th Century>
문지형(첼로)
AGCD0100
녹음 ★★★★★
연주 ★★★★☆
<월간 오디오 2018년 3월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