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문부
원음은 이데아나 물자체처럼 혹시 우리의 머릿속에 있을지 몰라도 현실에서 구현할 수 없다. 따라서 오디오 취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기준에 맞는 소리를 추구하면서 좋은 음악을 더 많이 감상하는 것이다. X45 Pro는 컴퓨터가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도 음악을 편리하게 감상하는 신세계를 열어 줄 것이 확실하다. 아직까지 신세계로 데려오지 못한 지인들을 서둘러 구제해 줘야겠다.
‘원음이 도대체 뭔데?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 주자가 듣는 음과 지휘자가 듣는 음이 같을 것 같아?’ 애호가끼리의 모임은 대개 즐겁지만 가끔 오디오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몇 해 전 모임도 그랬다. 내가 무심코 ‘좋은 오디오는 원음을 잘 재생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자 K가 바로 반박을 시작했던 것이다. 나는 원음이 사운드 엔지니어가 녹음한 음이라고 둘러댔지만, K는 한때 녹음실에서 근무했고 스피커 제작에도 참여했던 강자였으므로 그런 느슨한 답변은 통하지 않았다. 음속과 파동의 원리에서부터 리스닝 룸의 반사음, 그리고 스피커의 지향성 이야기, 마이크 특성에 이르기까지 논리정연한 반박이 이어졌다. 문과계 출신인 나로서는 뭔가 반격하고 싶었지만 K의 해박한 지식에 감히 맞설 수 없었다.
K의 주장에 의하면 우리는 절대로 원음이라는 것을 경험할 수 없다. 우리가 듣는 소리라는 것은 언제 어디서 듣느냐에 따라 늘 다르다는 것이다. 음악회에서 앉은 자리에 따라 음이 달라지는 것은 물론이며, 습도나 온도에 따라서도 소리는 달라진다. 이때, 구석에서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P가 불쑥 말을 꺼냈다. P 역시 철학과 출신이니 나보다도 더 문과계다. ‘원음은 칸트의 물자체와 같은 거야.’ 아! K의 어려운 이야기들이 내 머릿속에 모두 들어왔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발상의 전환을 통해 경험론과 합리론을 절충하는 새로운 인식론을 주창했다. 우리는 눈이나 귀와 같은 감각 기관으로 대상을 감지하며, 오성의 틀에 맞춰 대상을 분류하고 이성으로 이를 체계화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칸트에 의하면 우리는 대상의 본질을 볼 수 없다. 우리가 감각으로 무엇인가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공간을 필요로 하므로, 우리가 인식하는 것은 그 특정한 시공간에 비춰진 모습일 뿐, 대상의 참 모습은 경험할 수 없다는 뜻이다.
돌아와서 곰곰이 따져 보니 과연 그의 말이 옳았다. 원음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가 없다. 모든 음은 칸트의 말대로 특정한 시공간에서 ‘포착’된 것이다. 스튜디오에 따라 음향 특성이 다를 것이며, 녹음 장비 또한 다 다르다. 게다가 같은 장비라고 제품마다 편차가 없겠는가? 컴퓨터와 전기의 도움을 받아 만들어 내는 요즘 대중음악은 말할 것도 없다. 내가 평소 생각하던 원음은 다름 아닌 내 머릿속에 존재하는 - 나름 엄격한 음에 대한 기준이었고, 원음을 낸다고 생각했던 기기들은 내 취향에 잘 맞는 기기였을 뿐이었다.
이후로 나는 오디오 기기에 대해 ‘열린’ 입장을 갖게 되었다. 그전까지 기기를 리뷰할 때 원음과 가깝지 않다고 느꼈던 것이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뜻이다. 물론 가끔은 정말로 ‘틀린’ 기기도 있지만 말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내 오디오 생활의 폭은 훨씬 넓어졌다. 어차피 원음이라는 것은 존재하지도 않았으니, 남들을 의식하지 않게 되었고, 다만 내가 좋아하는 소리와 싫어하는 소리를 구분하면 그만이었다. 그동안 백안시하던 PC 파이를 도입하게 된 것도 쓸데없이 내가 만들어 놓은 기준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깨달음 때문이었다.
특히 PC 파이를 통해 많은 양의 음반을 음원 파일로 갖추게 된 후에는 음악을 듣는 일이 너무나 편해졌다. 음반 랙 앞에서 서성이는 시간도 줄어들었고, 원하는 곡들을 재생 목록에 넣어 두고 랜덤으로 몇 시간씩 들을 때도 많다. 엄청난 디지털 기술의 세례를 받은 후부터 나는 디지털 기술의 예찬론자가 되었다. 이후 아날로그나 CD 플레이어 또는 SACD 플레이어를 고집하던 많은 지인들을 신세계에 끌어들였고,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예전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단,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은 몇몇 지인들은 - 내가 그 뒷바라지를 모두 감당해야 할 것이므로 - 감히 신세계에 끌어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세상은 몇 년 새에 더욱 좋아졌다. 내가 끌어들일 수 없었던 사람들을 대신 신세계로 안내하는 선구적인 제품들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중 으뜸은 우리의 자랑스러운 기업 칵테일 오디오다. 칵테일 오디오는 3년쯤 전에 컴퓨터와 오디오가 결합된 형태의 - 전례 없는 올인원 콘셉트의 제품으로 시장에 데뷔했으며, 애호가들의 요구를 반영한 신제품들을 속속 발매하며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중이다. 다만 초기의 제품들은 ‘미드파이’ 수준의 제품들이 주종이어서, 성능이나 소리와는 별개로 하이엔드 오디오를 사용하는 이들의 까다로운 ‘눈’을 만족시키기에는 2%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에 칵테일 오디오에서 명실공히 하이엔드 시장을 겨냥한 플래그십 X45 Pro를 내놓았다. 하드 디스크 뮤직 서버에 온갖 소스기기와 프리앰프를 합쳐 놓은 X45의 기능을 계승하면서 외관과 음질을 월등한 수준으로 끌어올린 제품이다. 잘 가공된 재료의 질감을 단순한 형태로 표현한 디자인은 가히 수준급이며 7인치의 커다란 디스플레이는 보기에도 시원하다. 두꺼운 알루미늄 판재를 넉넉하게 사용하고, 내부에도 전자파 차단이나 전원부 실드를 철저하게 시행함으로써 무게는 무려 13.2kg이나 나간다. CD 플레이어처럼, 혹은 하드 디스크 뮤직 서버처럼 모터가 들어가는 제품에서 불필요한 진동을 억제하는 것은 음질과도 직결되는데, 이 튼튼하고 무거운 기기는 그 점에서 매우 만족스럽다.
X45 Pro는 참으로 많은 기능을 갖고 있다. 우선 하드 디스크를 내장해 음원 파일을 저장할 수 있으며, 태블릿 PC와 같은 모바일 기기나 컴퓨터로 원격 조정할 수 있다. 그리고 네트워크에 연결함으로써 다른 PC나 NAS, 혹은 모바일 기기에 있는 음원 파일을 재생하는 네트워크 플레이어의 기능을 수행한다. 물론 X45 Pro의 하드 디스크에 저장된 음원 파일을 다른 컴퓨터나 네트워크 플레이어로 재생시킬 수도 있다.
이외에 CD를 리핑하거나 CD 플레이어로 사용할 수 있고, FM 튜너를 내장하고 있으며, 외부 디지털 출력을 받을 수 있도록 다양한 단자를 구비해 D/A 컨버터로 쓸 수 있다. 특히 다른 뮤직 서버 기기에서 보기 힘든 USB 단자를 장착해 PC와도 직결할 수 있도록 했다. 게다가 MM형 포노 앰프까지 내장하고 있는데, 이는 LP를 감상할 때뿐만 아니라, LP의 음을 24비트/192kHz의 음원으로 디지털 녹음할 때도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 또한 요즘 디지털 기기에서는 보기 힘든 아날로그 입력도 충실하게 갖추고 있으며, 디지털 출력과 아날로그 출력을 골고루 갖추고 있어서 사용자별로 다양한 환경에 대한 친화력이 매우 뛰어나다.
X45와 비교하면 기능은 같지만 완전히 다른 제품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특히 큰 변화는 DAC 칩에 있다. X45 Pro에는 ESS 사의 최신 플래그십 ES9038PRO가 장착되어 있는데, 이 칩은 X45에 장착된 ES9018과 동일한 8채널의 DAC이지만 채널당 네 개의 DAC가 동작함으로써 전체 32개의 DAC가 한 몸체에 담겨 있는 것이다. 즉, 스테레오로 구동되면 채널당 무려 16개의 DAC가 동작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DAC의 개수가 증가하면 다이내믹 레인지가 증가하게 된다. 불과 얼마 전까지 하이파이 제품에 단골처럼 사용되던 버브라운의 PCM1792의 예를 들자면 하나의 칩에 2채널의 DAC가 내장되어 있는데, 모노로 사용하면 132dB, 스테레오로 사용하면 129dB의 다이내믹 레인지를 낸다. 그리고 해상도는 24비트다. 그런데 X45 Pro는 모노로 사용할 때 무려 140dB, 스테레오로 사용하면 137dB의 다이내믹 레인지를 낸다. 게다가 32비트다. 가격은 그만큼 오르겠지만 현존하는 최강의 DAC가 아닐 수 없다.
결론을 내자. 원음은 이데아나 물자체처럼 혹시 우리의 머릿속에 있을지 몰라도 현실에서 구현할 수 없다. 따라서 오디오 취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기준에 맞는 소리를 추구하면서 좋은 음악을 더 많이 감상하는 것이다. X45 Pro는 컴퓨터가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도 음악을 편리하게 감상하는 신세계를 열어 줄 것이 확실하다. 아직까지 신세계로 데려오지 못한 지인들을 서둘러 구제해 줘야겠다.
문의 헤르만오디오 (010)4857-4371 가격 560만원 디스플레이 7인치 TFT LCD(1024×600) CPU 쿼드 코어 ARM Cortex A9 메인 메모리 DDR-1066 1기가 낸드 플래시 8기가 디지털 입력 AES/EBU×1(24비트/192kHz), Coaxial×1(24비트/192kHz), Optical×1(24비트/192kHz), USB B×1(32비트/768kHz, DSD512, MQA), USB A×3 디지털 출력 AES/EBU×1, Coaxial×1, Optical×1, USB×1, HDMI×1 아날로그 입력 RCA×1, Aux×1(3.5mm), Phono(MM) CD부 지원 헤드폰 출력 지원 네트워크 지원 전용 어플리케이션 지원 온라인 뮤직 서비스 Tidal, Tidal MQA, Deezer, Qobuz, Napster, Spotify Connect 튜너 FM, DAB+ 크기(WHD) 44×13×32.9cm 무게 13.2kg
<월간 오디오 2018년 7월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