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신우진
하프시코드는 물론 악기적인 한계가 있다는 사실은 글을 통해 알고 있지만, 막상 들어 보면 정말 좋은 소리인데 좀처럼 만족스러운 녹음이 없었다. 잘된 녹음이라고 해도 10분만 지나면 산만한 고음에 피로도가 쌓인다. 이것은 실내악 협주곡조차 그렇다. 하프시코드 음이 작지만 아주 존재감 있었던 실황과 달리 녹음해 놓으면 마치 드럼의 심벌처럼 장식적 요소가 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런 어려운 악기의 독주를 오디오가이가 도전해 LP로 찍어 냈다.
한국에 유학 와서 결혼하고 그냥 눌러앉아 버린 아렌트 흐로스펠트는 네덜란드 출신의 하프시코드 연주자로 우리에게는 TV 프로그램 이웃집 찰스에 나오면서 알려진 연주자이다. 이 음반에는 탄탄한 기본기가 매우 중립적이고 깔끔한 녹음으로 담겨 있으며, 이전에 들은 어떤 연주자보다 화려하고 깊이 있는 연주가 실려 있다. 녹음대로라면 세계 정상급 연주자와 겨룰 만하다. 하프시코드의 울림이 경쾌하고 때로는 차분하게 음과 음 사이를 연결해 내면서 세밀하게 녹음되어 있다. 타건 음으로 추정되는 저음 소리가 처음에 조금 거슬리기도 하지만 이 또한 오디오 마니아에게는 재미있는 쾌감이기도 하다.
하프시코드도 녹음하기 쉽지 않지만, 참 안타까운 것 중 하나가 국악 음반이다. 지난 거장들의 연주가 제대로 남아 있지가 않고, 20-30년 전 외판원이 팔던 테이프 전집의 조악한 녹음 상태가 오히려 TV 국악 프로그램 녹음보다 못한 것도 많았다. 얼마 전 그래서 황병준 엔지니어가 박현숙 연주의 김죽파 가야금 산조를 녹음했을 때, 오디오 리뷰할 당시 나는 이후로 줄 곳 이 음반을 꼭 들었었다. 그나마 몇 년 넘도록 품절 상태였다.
그러던 중 나온 조정아의 김죽파류 가야금 산조는 굉장한 호평을 받고 있다. SNS 오디오 친구들에 이 LP 인증 샷이 하루가 멀다 하고 올라왔다. 초판은 이미 품절이고 이번 것은 독일 커팅이 아닌 국내 마장뮤직앤픽처스의 래커 커팅으로 가야금의 농현을 더욱 자연스럽게 만들어 냈다. 그래서 그 표현력과 농현의 진한 울림이 살아난다. 스튜디오 녹음임에도 마치 대청마루의 연주를 건너 사랑채에 앉아 듣는 듯 공간의 깊이감이 살아난다. 이런 추세라면, 그리고 오디오가이 측이 밝힌 대로 스탬프 3장으로 한정 수량만 찍을 계획이라면 LP 구입을 서두르는 편이 나을 듯하다.
또 하나 이 LP에는 곡마다 벌어져 있는 공간 구별이 없이 쭉 이어져 있다. 그래. 산조는 이렇게 느린 다스름과 진양조부터 천천히 들으면서 빨라져야 제맛이지, 진양조는커녕 중모리도 건너뛰고 휘몰이만 듣는 통에, 이 LP로는 최소한 중모리부터는 듣겠구나 하고 생각이 들었다. 혹 구입하시면 꼭 처음부터 느리게 이어지는 그 여운과 다음 음의 타이밍의 절묘함을 느껴 보시기 부탁드린다. 이 LP에는 그 묘미가 제대로 실려 있다. 글 | 신우진
아렌트 흐로스펠트<Stylus Fantasticus>
아렌트 흐로스펠트(하프시코드)
AGLP 018
녹음 ★★★★★
연주 ★★★★☆
조정아 <김죽파류 가야금 산조>
조정아(가야금)
정준호(장구)
AGLP 012
녹음 ★★★★★
연주 ★★★★☆
<월간 오디오 2018년 8월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