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종학(Johnny Lee)
매년 CES에 가보면, 정말로 경천동지할 만한 신기술이 속속 발표되어 가슴을 뛰게 한다. 올해만 해도 드론이니, 8K이니, 퀀텀닷이니 해서 잔뜩 숙제거리를 안겨준다. 한데 오디오 쪽을 돌아보면, 아직도 케케묵은 진공관이 현역으로 활동하는 것에 놀라게 된다. 만일 CES가 열리는 LVCC에 진공관 소재의 오디오를 전시해놨다면 황당한 표정을 짓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이런 진공관이 오디오 쪽에서는 오히려 최첨단으로 활약하기도 하니 말이다.
오디오계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가설이 있다. 어떤 컴포넌트건 진공관이 들어간 제품 하나만 넣으면 전체적으로 진공관 음이 배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결국 시스템 전체의 성격이 더 음악적이고, 감동적으로 변화한다는 뜻과 다름 아니다. 그런 면에서 까다로운 진공관 앰프라면 손사래를 칠 분들도, 본 기 정도면 한 번쯤 관심을 가져보면 좋지 않을까 싶다.
이번에 들은 D-3000이란 모델은 D-5000의 주니어 판이다. 때문에 진공관으로 구성한 아날로그단이 솔리드스테이트로 바뀌었지만, 5842라는 방열관을 투입한 것 자체가 전체적으로 음의 그레이드를 대폭 올렸다. 특히 DSD 파일의 재생이라는 미덕을 갖추고 있으므로, 고음질 파일에 관심 있는 분들에겐 아주 희소식이 될 것 같다. 덕분에 이번 특집에서도 국산 진공관 제품 중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전체적으로 음을 들어보면, 확실히 아날로그 느낌이 묻어난다. 뒤메이 & 조레스 콤비의 프랑크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A장조를 보자. 바이올린의 결이 더 풍부해지고 두께감이 더해진다. 그러면서 그 청량감이 한껏 살아나 가벼운 비브라토도 생동감 있게 들린다. 배후에 은은하게 깔리는 피아노에 대해선 두말하면 잔소리.
오스카 피터슨의 ‘You Look Good to Me’는 자주 듣는 트랙인데, 과연 어쿠스틱 피아노 트리오라는 느낌이 잘 드러난다. 베이스를 손가락으로 뜯을 때 흘러나오는 가벼운 신음 소리나 스네어를 브러시로 긁을 때의 수많은 결의 움직임, 피아노를 타건할 때의 강약의 변화 등이 골고루 살아 있다. 점차 열기가 고조되어 질주할 때의 에너지감이 특히 일품이어서 강력하게 듣는 이를 휘어잡는다.
그래서 레드 제플린의 ‘Baby, I'm Gonna Leave You’를 듣는다. 과연 진공관이 그냥 음색이 따스하고, 풍요롭기만 한 게 아니다. 이런 록에서 불을 뿜는 듯한 기타 애드리브나 보컬의 절규가 사실적으로 표현되어야 하는데, 그 점에서 더 리얼하게 다가온다. 전혀 가공의 음이 아닌, 마치 라이브에서 듣는 듯한 생생함.
물론 거기에는 DAC의 놀라운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본 기에는 듀얼 모노 방식으로 사브레32의 레퍼런스 칩이 투입되었고, PCM 신호를 실시간으로 DSD로 업컨버팅한다. 거기에 제로 피드백 설계에 니켈 트랜스를 직결 방식으로 채택하는 등, 분석적으로 따져볼 만한 내용이 풍부하다. 물론 중요한 것은 음. 여기서 깊은 만족감을 선사한다. 디지털로 아날로그의 음을 즐기고자 한다면, 본 기는 꽤 유용한 선택이 될 것 같다.
총판 오디오멘토스 (031)716-3311
가격 650만원 DAC 듀얼 모노 ES9018K2M SABRE32 레퍼런스 아날로그 출력 RCA×1, XLR×1
디지털 입력 AES/EBU×1, Coaxial×2, Optical×1, USB×1 워드 클록 입력×1, 출력×1
Monthly Audio
2015.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