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남
아직은 생소한 편이지만 이제 국내에서도 조금씩 입소문이 나기 시작한 모델 한 기종을 시청한다. 가장 흔한 출력관인 EL34를 푸시풀로 장착한 고급스러운 디자인의 진공관 인티앰프이다. 가격이 싸지만 만듦새는 당당하고 어느 고급품 못지않게 미려하다. 전면의 큼지막한 VU 미터에서 빈티지 진공관 앰프다운 품위가 느껴지며, 트랜스들의 위용도 당당하다.
오디오 제품에 대한 이해도가 없는 사람들은 오디오의 세계에서 종래의 시장 기준이 거의 파괴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대단히 놀랄 것이다. 처음에는 고장이 잦고 눈속임이 많은 전형적인 짝퉁 수준의 제품들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차츰 엔트리 제품에서도 품질 우선을 최선으로 하고, 어떤 경우에서는 하이엔드에 필적하는 수준이 되고 말았다. 특히 진공관 제품에서 그것이 두드러진다. 들을 때마다 귀를 의심케 하는 제품이 나타난다. 거의 10분의 1 가격으로도 종래 제품과 대등한 성능이 나온다면 종래 제품 시장은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 시장 거래의 기본이다. 그 실상들이 매년 어김없이 등장한다.
90년대에 시청기로 들어온 국내 제작의 국산 진공관 앰프를 하나 만났다. 그 엔지니어의 첫 제품이었다.
6V6을 출력관으로 사용했는데 알루미늄을 잘라서 섀시를 만들었고, 소출력이니 그만큼 사이즈도 작았다. 당시 적당한 서브가 하나 필요했던 참인데 소리도 괜찮고 가격도 헐해서 그대로 들어앉혔다. 좀 지내고 보니 트랜스가 울기 시작했다. 트랜스 커버를 벗기면 진동이 줄었는데 이런 건 고칠 방법이 없다. 트랜스를 바꿔야 하는데 쓸데없는 낭비가 될 것 같았다. 소리도 좀 듣다 보니 들뜨고 거칠었다. 첫 제품이라 잘 만들었을 텐데 하는 생각과 원망이 들었다. 제작자는 얼마 뒤 제작을 중단하고, 재고는 어느 숍에 절반 이하의 가격으로 나왔지만 팔리지 않았다. 어쩌지 못하고 녹이 슬어 가는 기기를 지금도 가지고 있다. 제작자는 그 시절 진공관 앰프를 만만히 보고 손대서 그런 패착을 한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진공관 제품을 보면 80-90년에 상당한 물량이 나왔지만 몇 기종을 제외하곤 제대로 된 물건이 없었다. 그 당시 제품들은 이 시청기보다도 가격은 서너 배 비싼 것이 태반이지만 지금 들어 보면 소리는 별로이니 제작 기법의 발전과 성능의 평준화에 새삼 감탄을 하게 된다. 지금은 어떤 저가품이라 할지라도 만듦새가 좋고, 트랜스가 운다든지 하는 트러블 따위는 찾아보기 힘들다. 디자인도 하이엔드와 저가품 차이도 별로 없어졌다.
제트 오디오는 2004년에 탄생한 진공관 전문 브랜드로, 여러 프로젝트로 이름을 올린 바 있다. 국내에 처음 들어오는 제품인 만큼 브랜드에 대한 홍보나 자료는 사실상 절대적으로 부족한 수준이다. 하지만 조금 더 좋은 소리, 좋은 디자인을 목표로 만들어진 제품이라는 것에는 확신을 가지게 한다. 확실히 첫 이미지부터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이력을 보면 십여 년 전부터 수준급의 진공관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고, 다인오디오, JBL, 탄노이 등의 스피커로 튜닝을 해 오면서 조금씩 개량을 거듭해 왔다는 설명이 이어진다.
시청기는 5극관인 EL34를 채널당 2알씩 사용했는데, 출력은 38W에 그친다. 출력 수치 대신 기기의 안정성과 소리의 질에 우선 점을 두었다는 방증인 셈이다. 본 기를 시청해 보니, 비발디의 사계 중 봄 첫 소절에서는 상쾌하며 훈기와 매끄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로시니의 윌리엄 텔 서곡에서 총 합주가 시작될 때의 해상도와 분해 능력에서 최상점을 줄 수 있다. 안네 소피 무터가 연주한 타이스의 명상에서 현 독주가 마치 달빛을 머금은 듯 은은하면서 매끈하고, 조지 윈스턴의 ‘September’에서는 피아노의 정결과 기분 좋은 저역 웅진이 가슴을 울렁거리게 한다. 마치 A급 싱글 앰프처럼 감미롭고 우아하다. 기대를 웃도는 보급형 명기가 등장한 듯하다.
수입원 제이원코리아 (02)706-5436 가격 170만원 사용 진공관 EL34×4, 12AX7×2, 12AU7×2 실효 출력 38W 주파수 응답 18Hz-30kHz 감도 200mV 출력 임피던스 4Ω, 8Ω 입력 임피던스 100㏀ 디스토션 0.8% S/N비 90dB 크기(WHD) 50×23×36cm 무게 18kg
<월간 오디오 2017년 10월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