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종학(Johnny Lee)
아침 저녁으로 제법 날씨가 쌀쌀해졌다. 조금 있으면 활짝 단풍이 피다가, 이윽고 낙엽이 되어 길 여기저기에 흩날릴 것이다. 그때쯤이 되면, 늘 반가운 겨울 손님이 온다. 그것은 루돌프 사슴일 수도 있고, 산타 할아버지일 수도 있지만, 역시 오디오 애호가에겐 진공관 앰프가 제격이다. 드디어 불 지피고, 온기를 느껴가며, 인간적인 훈훈함이 가득한 진공관의 매력에 빠져드는 시간이 온 것이다. 문득 창밖으로 눈이라도 온다면, 더욱 흥이 나지 않을까?
그런데 TRV-88SER이라는 모델명을 가진 본 기를 제조한 트라이오드라는 회사가 흥미롭다. 본사 홈페이지를 방문해보면, 트라이오드 옆에 영국제 스피커 제품들이 떡 하니 놓여 있다. 이게 과연 무슨 뜻일까? 아마도 이른바 브리티시 사운드라고 하는 이쪽 계통의 스피커와 매칭이 좋다는 의미일까? 그런데 이런 스피커들이 공통적으로 통 울림을 적절히 이용해서 독자적인 보이싱으로 사람의 마음을 끌 듯, 트라이오드의 제품들은 오로지 스펙과 계측에만 의존하지 않은, 더 음악적이고, 영혼이 담긴 소리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묘한 공통점을 느낀다. 이것은 다시 말해, 오디오를 하나의 악기로 생각하는 마음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강력한 주장을 담은 메이커도 좋다고 생각한다.
본 기는 모델명에서 알 수 있듯, KT88을 출력관으로 채용하고 있다. 사실 대표적인 5극관인 KT88은, 일명 황제의 관으로 알려질 정도로, 강력한 스피커 구동력과 뛰어난 다이내믹스를 자랑한다. 선이 굵고, 시원시원하며 또 호방하다. 그래서 상당히 많은 팬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동사의 제품은 88SE에서 다시 88SER 버전을 만들 정도로 인기가 높으며, 꾸준한 개량으로 상당한 신뢰감을 주고 있다.
본 기는 채널당 35W를 낸다. 이것은 단순히 출력의 양이 아닌, 퀄러티를 중심으로 제작했음을 뜻한다. 실제로 KT88을 푸시풀로 구성할 경우, 75W 정도는 무난하다. 그런데 그 절반 정도로 출력을 줄인 것은, 다시 말해 음의 순도나 퀄러티를 중요시한 설계가 이뤄진 것이다. 그래서 KT88에 간혹 지적되는 디테일 부족이나 투명도의 문제 등이 말끔히 개선되었다. 무엇보다 반응이 빠르고, 대역이 넓어서, 과연 현대적인 진공관 앰프의 장점이 뭔지 충분히 만끽하게 해준다. MM 타입의 카트리지를 쓸 수 있는 포노단까지 장착된 점은 아무리 칭찬해도 부족하지 않다. 높은 사용성과 퀄러티를 두루두루 갖춘, 상당히 모범적인 제품이라 하겠다.
수입원 다웅 (02)597-4100 가격 295만원 사용 진공관 KT88×4, 12AU7×2, 12AX7×1 실효 출력 35W(8Ω) 주파수 응답 10Hz-100kHz(-1, -4dB) S/N비 90dB 입력 감도 400mV, 2.5mV(포노) 입력 임피던스 100㏀, 47㏀(포노) 출력 임피던스 6Ω, 8Ω 크기(WHD) 34.5×18.5×32cm 무게 17kg
<월간 오디오 2017년 10월 호>